어렸을 때 보고들은 기억이 쌓여 어른이 됩니다

박서진 2023. 10. 1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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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가을소풍, 아이들이 싸온 엄마표 도시락을 보며 든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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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진 기자]

높고 푸른 하늘, 솔솔 손짓하는 바람, 포근한 햇볕! 넉넉한 가을의 품이 두 팔 벌려 반겨주는 기분 좋은 계절입니다. '가을'하면 빼놓을 수 없는, 마치 고유명사 같은 행사가 있습니다. 바로, 가. 을. 소. 풍이지요.

어린이집 꼬맹이들과 함께 할 가을소풍장소 선택이 쉽지 않네요. 그동안 다녔던 곳이 좋을지, 새로운 곳이 나을지. 선생님들과 고민고민했습니다. 

그렇게 고민한 끝에 정한 우리의 가을소풍 행선지는 어디냐면요... 쉿! 비밀~ 
 
 그림자가 시간을 알려준대요! 해시계
ⓒ 박서진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아이들의 건강이 걱정되었지만, 다행히도 소풍 당일은 아이들이 온다는 소식이 하늘에 전해졌는지 날씨요정님이 반겨주었답니다. 따뜻한 가을볕과 높고 푸른 하늘은 친구들에게 멋진 추억을 선물해 주었어요. 
까치발 들면 손에 잡힐 것 같은 구름을 보고 꼬맹이가 말합니다. 
 
 포근한 날씨에 구름이 놀라 연기되어 사라져요
ⓒ 박서진
 
"원장님, 구름이 솜사탕 같아요." 
"어머나! ○○야 원장님도 방금 솜사탕 생각했는데... 우리 같은 생각했네, 찌찌뽕" 

꼬맹이는 눈을 맞추며 수줍은 듯 찡긋 웃어 보입니다. 책에서 보던 해시계도 직접 보았지요. 10월이라 적힌 곳을 찾아 "차렷" 자세를 하니 그림자가 숫자 11과 12 사이에 자리 잡습니다. "11시 30분 정도 되겠다"하는 해설가선생님의 말씀대로 시계가 11시 37분임을 알려줍니다. "우와! 신기하다." 

제일 큰 형님들은 해시계가 그저 신기한데, 어린 꼬맹이반 친구들은 갸우뚱! 도통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는 눈치입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선생님 모두 어쩔 줄을 몰랐지요.

"모르면 어때요!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감정은 오래오래 기억할 거예요."

웃으며 말하는 해설가 선생님의 말씀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른이 된 어느 날 마음속 깊이 꼭꼭 숨어있던 해시계를 찾을 테죠. '맞다! 예전 그때 그 시계. 찾았다'하고요. 

함께 걸으며 자라는 아이들

이날 평소엔 쉽게 접하기 어려운는 '용담'이란 이름의 꽃도 보았습니다. 울퉁불퉁 돌길도 걸어보았지요. 몸의 중심을 잘 잡고 천천히 걷는 꼬맹이들이 그저 기특합니다. 

드디어, 오늘의 하이라이트! 점심시간,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을 꺼내며 아이들이 신났습니다.  

"선생님, 엄마랑 저랑 같이 싼 거예요. 선생님도 맛보세요." 

김밥 하나를 입에 넣어주는 ○○의 마음씨가 뭉클한 감동을 줍니다. 

"친구들아, 나는 엄마랑 같이 주먹밥 만들었다~?"

공룡을 좋아하는 ○○도시락엔 공룡이 있네요. 
 
 공룡이 먹기전에 내가 먼저 냠냠 꿀꺽!
ⓒ 박서진
 
이런저런 정성 가득 담긴 도시락을 보니 제 초등학교 때가 기억났습니다. 오 남매 뒷바라지에 집안일에 쉴틈 없는 엄마의 바지런함을 무색하게 했던, 넉넉하지 못한 살림은 소풍 때마다 제 애간장을 녹였습니다.

계란옷 입힌 소시지 반찬이 귀하던 시절, 엄마는 생활비가 여의치 못할 때면 김밥 대신 밥과 반찬이 담긴 도시락을 싸줘도 되겠냐고 하셨습니다. 

제 바로 위 언니는 아무렇지 않은지 그럴 때마다 상관없다고 밥과 반찬도 좋다고 했지만, 저는 친구들 앞에서 밥과 반찬이 담긴 도시락을 내놓을 용기가 없었어요. '엄마가 정말 김밥 안 싸주면 어떡하지?' 속으로 안절부절 조마조마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엄마는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소시지, 단무지, 계란, 시금치가 들어간 김밥을 꼭 싸주셨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소풍엔 김밥이지!" 김밥 싸는 엄마 옆에 앉아서 넙죽넙죽 받아먹던 '김밥꽁지'는, 곤하게 자던 동생이 벌떡 일어날 만큼 꿀맛이었습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또 졸라매어야 했던 그 시절! 엄마는 제대로 된 옷 한 벌, 화장품, 신발 하나 없었는데.. 야속하게도 다 자란 지금에서야 그게 보입니다. 

한편, 요즘 어린이집에서는 맞벌이하는 부모님들을 위해 소풍 갈 때면 도시락을 따로 준비해 주는 곳들도 있습니다. 저는 '엄마표 도시락'의 정성과 추억을 우리 꼬맹이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도시락 싸기가 너무 힘들다는 어머니들의 글을 보면 그 마음을 알 수 있어 어린이집에서 준비할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지만, 그래도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은 젖 먹던 힘을 부르는 거름이 되어준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님들! 우리 조금만 더 고생해요~" 

저는 크게 소리칩니다. 파란 하늘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에 "원장님, 오늘 재밌었어요" 하며 제 손을 꼭 잡아주는 꼬맹이의 고백이 달콤합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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