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대부' 해부하던 영화광 봉준호…극장의 의미를 묻다
학생운동 끝난 90년대초 1세대 시네필 등장
그 시절 시네마 향수, 보편적 공감 이끌어
1993년을 혹자는 낭만적인 시대였다고 떠올린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도 유튜브도 없던 시절, 영화는 그 시절 낭만을 가장 잘 대변한다. 당시에는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없었고, 극장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일은 낭만 그 자체였다. 고소한 팝콘 냄새, 매표소에서 상영 시간표를 확인하고 끊는 영화표, 입장할 때 표를 확인하는 검표원, 모두 그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영화 티켓과 팸플릿을 파일에 붙여 모으고 서로의 감상을 주고받는 일도 흔했다. 지금처럼 사화관계망서비스(SNS)가 발달하지도 않아 영화를 본 친구들의 감상평의 영향력이 꽤 컸다. 휴대전화로 티켓을 예매하고 팝콘까지 구매 가능한 지금과 다른 풍경이다.
이달 27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감독 이혁래, 이하 '노란문')가 올해 제28회 부산영화제 '와이드 앵글 -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섹션에 초청돼 부산에서 먼저 공개됐다. '노란문 영화연구소' 멤버들이 공식 상영에 참석해 객석에서 영화를 관람했다.
'노란문'은 영화가 미치도록 좋았던 시네필이 모인 '노란문 영화연구소' 이야기를 그린다. 1993년 영화를 사랑하는 연세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서울의 시네필들이 모인다. 영화 '기생충'(2019)으로 전 세계를 뒤흔든 봉준호 감독은 당시 명화 비디오 라이브러리를 관리하던 청년이었다. 1990년대 초 시네필의 공동체였던 노란문 영화 연구소 회원들이 30년 만에 떠올리는 영화광 시대와 청년 봉준호의 첫 단편영화를 둘러싼 기억을 따라간다.
우연히 출발했다. '노란문'은 봉준호 감독이 노란문 멤버들에게 30주년 행사를 하자고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봉 감독은 작은 만남의 자리를 갖자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보이나, 이야기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봉준호 감독을 본격 하대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자"는 말로 번졌다.
30년이 지난 현재, 노란문 멤버들은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내가 얼마나 영화를 사랑했는지, 영화에 미쳤었는지 떠올리는 얼굴만은 같다. 봉준호 감독도 마찬가지다. 당시를 떠올리며 여러 이야기를 하는 얼굴은 마치 그 시절 영화광 청년으로 돌아간 듯하다.
당시 봉준호 감독은 영화 '대부'(1973)를 한 장면, 한 장면 돌려보며 영화를 공부했다. 명장면 콘티를 그리는 등 장면을 해부하며 매료됐다. 봉 감독은 "우리가 시네필 첫 세대"라며 "그때만큼 영화에 미쳐있었던 시간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90년대 초, 학생 운동이 끝나고 예술혼의 새 출구를 찾으려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임이 급증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한국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봉준호 감독의 미공개 첫 연출작인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 '루킹 포 파라다이스'도 일부 공개된다. 아르바이트해 마련한 캠코더 카메라를 제 몸처럼 들고 다니던 봉준호는 고릴라 인형을 주인공으로 단편을 만들었다. 빌런이 등장하고, 이야기도 귀엽지만 복기할수록 씁쓸해진다. 지하라는 공간과 보이지 않는 수직 계급, 발버둥 쳐도 벗어나지 못하는 암울한 사회 등, 그의 영화 세계관에 한결같이 그려지는 메시지도 여전하다.
'루킹 포 파라다이스'는 당시 '노란문' 송년회에서 조촐한 상영회를 갖고 공개됐다. 봉준호는 당시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구석에서 영화를 봤다"고 떠올렸다. 배우 우현, 안내상과 최종태 감독은 '루킹 포 파라다이스'를 관람한 첫 관객이기도 하다. 당시 제작비 일부를 댔다는 우현은 "이후 영화 '살인의 추억'(2003)을 보고 놀라 '그때 제작비 전액을 댈 걸 후회했다"고 말해 웃음을 준다.
'노란문'은 OTT 콘텐츠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대 극장이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 영화라는 매체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역설한다. 시네필 1세대의 열정을 통해 진한 향수도 불러일으킨다. 이는 영화와 사랑에 빠진 순간, 강하게 매료된 시기가 모두에게 있기에 더욱 아련하다. 봉준호와 영화 동지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노란문'은 결국 나의 이야기로 치환되며 공감하게 한다.
이혁래 감독은 "시네필, 덕후는 모두 외롭다. 주변인들에게 이해받지 못하지만, 어느 순간 나와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 서로를 이해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노란문)는 30년 전 그 경험을 했다.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갖고 좋아하는 무언가를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에 대한 경험은 지금 젊은 세대도 하고 있다. 그것의 가치가 스스로 인식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를 모두에게 일깨우고 싶다"고 말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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