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인디게임 개발을 위한 5계명 [쿠키칼럼]
[쿠키칼럼-이유원]
인디게임 개발은 매력적인 일이다. 팀이든, 결과물이든, 브랜드든, 그 무엇이든 내 손에 의해 무에서 유로 창조된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다년간 신생 인디게임 팀과 개발자들을 위한 멘토링과 컨설팅을 진행해오면서(내 코가 석 자지만) 비슷한 문제와 해결책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이에 첫 인디게임 프로젝트 개발에 있어 명심해야 할 5계명을 정리해봤다. 비단 인디게임 개발뿐만 아니라 다른 갖가지 종류의 창작, 예술, 사업 등의 프로젝트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1. 빠른 출시 경험하기
가장 중요한 것은 출시다. 특히 빠른 출시는 더욱 중요하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출시되지 못하는 인디게임들이 정말 많다. 개발비 부족, 팀 해체 등 다양한 이유도 있지만, 내가 본 가장 많은 이유는 ‘흐지부지돼서’였다. 정말로, 그냥 단순히 열정이 식었거나, 결정 책임자가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열심히 만든 훌륭한 게임들이 출시를 하지 못하고 기간만 늘어지다가 사라졌다. 물론 그 기초에는 서로 다른 금전적, 인적, 조직적 이유가 있었겠으나, 출시 계획이 늘어지는 것은 다시금 이 이유들을 강화하는 또 다른 큰 이유가 된다.
부실한 프로젝트와 팀에서만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뛰어난 프로젝트이고 뛰어난 팀일수록 빠른 출시가 더욱 중요하다. 출시 준비 과정에 펀딩, 지원 사업, 팬덤 형성, 언론 노출, 수상 등으로 여러 가지 변수가 끼어들 가능성이 있고, 팀 내에서도 자신의 프로덕트에 대해 아쉬움이 남아 덜 치밀한 방법으로 공수를 투입하여 예정보다 프로젝트가 비대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초기의 계획을 고수하는 것이 나았다. 첫 번째 프로젝트에서 반드시 막대한 성공을 거둬야 할 이유도 없고, 지식재산권(IP)와 팬덤, 노하우를 바탕으로 두 번째 이후의 프로젝트들을 그 이상으로 성공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 비대해진 프로젝트를 연약한 조직으로 지탱하려는 것은 예기치 못한 문제들을 발생하게 하고, 대처도 어렵게 하였다.
프로젝트의 종기와 목표를 러프하게 라도 미리 잡고 확실하게 팀 내에 공유된 상태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명확하고 필수적인 종기이자 목표 중 하나는 바로 ‘출시 버튼 누르기’이다. 제작부터 출시까지의 전 과정을 총체적으로 경험하고, 그 이후 나타나는 현상들을 지켜보는 것은 살면서 좀처럼 배울 수 없는 엄청난 경험 자산이 되어준다. 내 작품이 세상에 선보여졌다는 것만으로도 다음 창작에 있어서 큰 동기 부여 요인이 되며, 자신의 일에 책임감을 갖게 해준다.
우리 팀에서도 신규 팀원들에겐 그게 아무리 작은 것이더라도 빠른 시일내에 직접 출시 버튼을 누르게 하는 문화가 있다. 신입이 출시 버튼을 진짜 눌러도 되나 당황하는 사이에, 나를 닮아 그런 것인지 다른 팀원들도 다들 장난기가 많아 ‘이것 때문에 회사가 망하면 네 책임이다’ ‘문제가 생기면 전사 야근을 하면 되니 괜찮다’ 등의 압박을 준다. 물론 대부분 문제가 없다(작은 태스크들이기 때문에). 그러나 그 신입 팀원은 자신의 손을 거쳐 직접 출시된 프로덕트에 대해선 유독 관심을 갖고 책임감을 갖게 된다. 좋은 피드백을 받게 되면, 그에게도 좋은 동기 부여가 된다. 개개인이 회사의 일을 대신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작품을 창작한다는 회사 목표와도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나도 무척 좋아하는 문화다.
2. 좋은 팀 만들기
마음이 맞고 열정적이고 똑똑한 팀원들로 팀을 꾸려야 한다. 대학교, 학원, 동아리 등에서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하게 되면, 처음에는 대부분 각자 가지고 있는 비전이 비슷해보이나, 사실 들여다보면 제각각 다르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게임회사 취업을 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냥 취미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생계가 달린 프로젝트일 수도 있고…
프로젝트가 난항을 겪을 때도 이런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지만, 역시나 잘 될 때도 도드라지기 마련이다. 첫 프로젝트의 담당자들이 바뀌게 되면 진행 속도에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될 뿐만 아니라 프로젝트의 정체성과 내용도 크게 흔들릴 여지가 있다.
이게 무서운 이유는 프로젝트 폐기의 주된 원인이어서기도 하지만, 손을 댈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개발비를 펀딩해오거나 아무리 좋은 팀원이 들어와도, 의도를 잊어버린 채 표류한 기획, 너무 많은 이들의 손길을 거쳐간 개발과 리소스, 또 너무 시간이 많이 흘러버린 콘셉트와 트렌드가 발목을 붙잡는다. 마치 밀린 방학숙제를 하는 것처럼, 그 누구도 출시까지 즐겁게 일하기 어려워진다.
첫 프로젝트 이후에도 이는 계속 신경 써야 하는 문제다. 인력이 부족한 소규모 인디게임 팀들이 금전적인 이유로 인턴, 외주업체, 프리랜서, 국가일자리지원사업 지원자 등 다양한 경로에서 자신의 팀에 필요한 롤을 채우곤 한다. 하지만 인디게임 제작이란 것은 그 매출 규모와 제작 팀 규모가 작아보일 수는 있어도, 본질적으로는 적은 수의 천재 예술가들의 협업이다. 비전문적이거나, 동기가 적거나, 단순히 시키는 일을 받아서 할 것을 기대한 팀원은 만족스럽게 일할 수도 없고 전체적인 프로젝트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특히 막 태어난 팀은 각 팀원들이 부족한 부분을 자연스럽게 메꾸고 자신의 롤 외적인 부분까지 신경을 써줄 열성적인 매니저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이 가운데에 다른 정도의 오너십을 가진 팀원이 끼어있다면 일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불화가 발생하기 쉽다.
지스타에 찾아온 어느 어머님께서 아들이 공부를 잘 하는데 게임 개발을 하고 싶다고, 입시 기준이 높은 학교에 보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냐고 질문하신 적이 있다. 나는 게임 개발 분야든 아니든, 책임감 있고 똑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면 꼭 보내시라고 답해드렸다. 나 역시도 팀 빌딩 과정에서 주변의 능력 있고 열정 있는 사람들과 친구들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3. 자신 있게 만들기
게임의 내용이든, 개발 환경이든, 혹은 겨냥한 콘셉트, 트렌드, 개그 코드, 어쨌든 그 무엇이든 자신이 자신 있어 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세상에 없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니까,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해도 나만은 예뻐해 줄 자신이 있어야 한다.
이는 당부이면서 선제 조건이기도 하다. 내 게임에 자신을 가지고 비판과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노하우를 쌓는 것도 중요하고, 그 정도의 자신을 가지지 못하는 프로젝트라면 출시 직전까지도 고난을 겪게 될 운명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자신의 선택을 의심하고, 팀원들과 같은 논의를 반복하고, 계획도 늘어지게 될 것이다. 출시 마지막 전날까지 기획을 바꾸고 싶어질 것이고, 출시 때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낼 것이고, 출시 후에는 후련하긴 하겠지만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처음의 의도와 다르게 금전적인 결과에만 집착할 수도 있다.
4. 수익화는 단순하게
원래 비즈니스 모델(BM) 설계는 어려운 것이며, 욕심을 부리면 한도 끝도 없다. 배워야할 것은 산더미이고, 마케팅과 퍼블리싱, 외부 업체와의 협업까지 고려하자면 더욱 방대한 세상이다. 처음부터 잘하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일반적이고, 무엇보다 본인이 가장 그 메커니즘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수익화 모델을 선택해야 한다.
어차피 치밀한 데이터 분석 방식이 없는 상태에선 아무리 복잡한 비즈니스 모델과 플로우를 설계한들 검증할 수도 없고, 또 첫 프로젝트에서 체계화된 유지 보수와 긴 시간의 라이브 서비스를 기대할 수도 없기 때문에 무용지물이다.
자신이 익숙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것에 추가로, 사용자 데이터 집계에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선택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품이 덜 드는 한도 내에서). 단순히 이용자 수나 리텐션, 광고 클릭율 등만 볼 수 있어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게임 회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데이터임은 분명하나, 첫 프로젝트에선 그 데이터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으며, 추세를 확인하고 노하우를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꼈다.
5. 유저와 소통하기
우리는 이 일을 왜 할까? 우리가 만든 모든 것들이 노력에 비례해 값이 매겨지더라도, 그 결과물이 쓰레기통에 들어간다면 아무도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가 인디게임을 만드는 것은 개인의 성취와 자아 실현에도 맞닿아 있다.
내가 힘들게 출시한 게임을 재밌게 플레이하고 피드백하는 유저를 보는 것은 내가 낳은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와 오늘 선생님에게 칭찬받은 이야기를 조잘조잘 떠드는 것을 보는 것과 같지 않을까 싶다. 유저와의 소통은 강한 동기 부여 요인이고, 그 어떤 전문가보다 냉철한 시각으로 게임 피드백을 도와 노하우를 길러주고, 무엇보다 소규모 팀이 살아남기 위한 강력한 무기인 IP와 브랜딩을 견인해줄 팬덤이 되어준다.
나 역시도 하루가 멀다 하고 유저들과 티격태격하다가도, 때로는 문제를 같이 해결하기 위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바리바리 싸온 선물에 헤벌쭉 웃기도 한다. 지난 8월 열린 부산인디커넥트(BIC)에서도 멀리까지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팬 분들 덕분에 다른 대표님들 앞에서 어깨가 좀 으쓱했달까.
벌써 어느덧 5-6년차가 된 나도 그런데, 첫 프로젝트는 그 즐거움과 경험의 색다름이 오죽할까. 나도 초등학교 5학년 때 올린 플래시 게임들에 달린 댓글들이 아니었다면 더 발전하지도, 더 열심히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유저와 소통할 창구를 모색해야 한다.
이유원
1995년생. 초등학생 때부터 독학으로 인디게임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던 아이는 어느새 3년차 게임회사 대표가 되었다. 성균관대학교 글로벌리더학부를 졸업하고, '아류로 성공하느니 오리지널로 망하자'는 회사의 모토를 받들어 올해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자퇴했다. 게임 기획자로서 '허언증 소개팅!' '중고로운 평화나라' '서울 2033' 등 기존에 없던 소재와 규칙의 게임을 만드는 것을 즐긴다. NDC, G-STAR, 한국콘텐츠진흥원,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 지역 고등학교 등 다양한 곳에서 인디게임 기획과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장르에 대해 강연해왔다.
yuwon@banjihaga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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