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한 가난? '현피' 떠보면 달라진다는 언니 [변방에서 안방으로 : 일하는 사람책]

최문희 2023. 10. 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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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생애사 최현숙,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일하는 사람의 기록을 담은 책을 소개한다. 송곳이 되어 준 작가의 경험과 필자의 지금을 들여다보아 변방에서 안방으로 자리를 넓혀 먹고사는 오늘의 온도를 1℃ 올리고자 한다. <기자말>

[최문희, 고정미 기자]

싸움에서 용감하게 활약하여 공을 세운 이야기들 천지였다. 이른바 무용담을 말하는 주변 사람들. 부모님이든 이웃 어르신이든 상급자든, '그리하여 오늘날 내가 떳떳하게 살아간다' 하고 털어놓는 인생 드라마를 듣다보면 기가 빨렸다. 딴생각할 재간도 없는 목석같은 성향 탓에 타인의 굿판 같은 이야기를 묵묵히 듣다가 시시때때로 궁금해졌다. '외로웠던 걸까?, '얼마의 시간을 참은 말일까?' 피로가 몰려오면서도, 상대의 감정이 읽힐 땐 조심히 묵독했다.

자랑을 남에게 말하는 습관은 의외로 보편적이다. 나 역시 자랑하려고 입에 침도 안 바른 채 떠벌리느라 에너지를 쏟았던 전적이 있다. 듣는 사람은 더 애를 먹었을 거다. 세대를 막론하고 입에서 전해지는 구술(口述)- 수시로 주고받는 '나(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생명수 같은 존재여서 그것을 빼놓고선 못 산다. 자랑뿐 아니라 사연, 세상의 모든 풍문을 포함해서. 가난하든 부자든 간에 말이다.

누군가는 이를 'TMI(Too Much Information)'라고 한다. 특히 나이 든 사람이 회고담을 늘어놓으면 또 '라떼는(나 때는)'이라며 도리질할 때가 많다. 그건 쓰잘데기 없다며 금융 뉴스와 같은 자본의 관점에서 유용한 입담에만 귀 기울이는 세태가 낯설지 않다. 사실 그 핫한 주제를 지나치거나 관심을 기울이는 모든 사람들 역시, 세대를 막론하고 엇비슷하게 살아간다.

다른 듯 비슷하게 생겨먹은 우리는 사회 구성원으로 손금처럼 연결됐기에, 그 보잘것없는 이야기 안에서 예기치 않게 누군가를 살리는 실마리를 얻기도 한다. 어떤 이야기든 결핍이 자리해 그것을 함께 직시하고 타인의 빈 곳을 채우고 싶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드시 채우지 않아도 좋다. 시시콜콜한 나의 하루, 일 년, 십 년의 연대기가 모이면 꽤 근사한 역사가 되어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 준다. 그것은 쓰고 맵고 달지만, 맛이 있다. 이런 믿음은 구술생애사 최현숙이 쓴 책들을 읽으며 세워진 것이다.

'노인들'이 아닌, 이름 석 자를 가진 사람에 관한 구술
 
ⓒ 고정미
 
구술생애사를 이야기할 때 늘 선두에 놓이곤 하는 최현숙 작가를 알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영등포 뒷골목 이른바, 가난한 '안동네'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왕초와 용가리>(2016)를 보고 홈리스에 관심이 싹트면서다(나의 인생 영화 원탑이다!).

감독은 가난을 전형적으로 그려내지 않았다. 쪽방촌에서도 새어 나오는 흥과 울음, 웃음을 유쾌하고 찐하게 포착했다. 헌데, 홈리스의 말을 글로 옮겨온 최현숙 작가는 더욱 그랬다.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이 쓴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2021)에는 그가 만난 홈리스, 이석기 화자의 입말이 등장한다.

"나 혼자 딱 요만큼이면 된다."

63세 나이로 난생처음 얻은 1.5평 방 한 칸. 여기 만족하며 떳떳해하는 화자의 강직함을 문장으로 옮긴 작가의 태도와 시선에 눈길이 갔다. 최현숙은 기록 너머 '사람'을 보고 있었고, 그게 그이의 책을 더 찾아보게 만들었다.

뒤늦게 구술생애사 혹은 인터뷰계에서 바이블로 통하는 <할배의 탄생>(2016) 그리고 <할매의 탄생>(2019), <억척의 기원>(2019), <작별 일기>(2019),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2023) 등을 읽어 나갔다. 이 책들은 다른 듯 비슷비슷한 주변 사람들 삶의 조각을 꿰맞춘 듯 면밀한 기록이었다. 
 
 책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 후마니타스
 
단일한 세대로만 보였던 노인들의 생김새와 욕망이 그이의 책을 읽으면서 구체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럴 만한 이유와 곡절로 넘쳐나는' 윗세대의 사정을 납득하게 되었다. 언젠가는 나 역시 윗세대가 될 테고.

구술생애사 최현숙이 구술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가난하다. 경제적으로는 빈곤할지 몰라도, 살아온 생애의 서사는 빈곤하지 않다. 작가는 '잘나고 빽 있는' 사람들만이 역사에 기록되는 관습에 맞서 노숙자, 여성 노인, 심지어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는) 극우 어르신 등 '밀려난 사람들'의 생애와 말을 기록해 책이라는 든든한 빽을 화자와 함께 만들어 간다.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것을 말함으로써 화자는 묵혀두었던 자신을 들여다보고, 청자 또한 자기 삶을 돌볼 기회를 만든다.

십 년간 진보 정치에 몸담았다가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이수해 2008년부터 돌봄 노동을 하며 개인의 역사를 기록해온 작가. 이번에 그는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도둑X, 미친X 등 타인을 향한 혐오가, 실은 나도 그와 같은 욕을 들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두려움에서 기인한다는 걸 그는 자기 생애를 통해 낱낱이 드러낸다. 혐오하기보다 해명의 기회를 나누고자, 철저히 '나를 해부하는 글쓰기'를 감행한다.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는 구술생애사 최현숙이 자신의 시절을 구술한 곡진한 생애 기록이다.

연민이 아닌 호기심으로 시작한 글쓰기의 힘

액취증과 도벽으로 수치심과 욕망의 터널을 굽이굽이 통과했다는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에게서 나는 어떤 악취에도 돌려 피하거나 쳐다보거나 표정을 바꾸지 않는" 감수성을 자신의 상처로부터 얻을 수 있었다고. 하여 "타인과 사회에서 스스로를 소외시키지 않는" 지혜를 자기가 흘려 보낸 세월로부터 기꺼이 터득했다고.

하지만 그는 화해나 용서라는, 어쩌면 모호할 여지가 있는 긍정의 단어를 어지간하면 책에 잘 쓰지 않는다.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이자 작가의 태도이다. 이는 상처를 쉽게 봉합하려는 성급함을 멀리하고, 개개인의 삶에 천착해 온전히 기록하고자 하는 구술생애사 직업적 자세이기도 할 것이다.
 
 책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 문학동네
 
3부로 이뤄진 책의 갈피를 살펴보면 1부는 자신의 유년과 청년시절을 비롯해 징글징글하게 얽혔으나 애증하는 가족과 직면해온 과정을 다룬다. 2부에선 "늙어가는 몸의 쾌와 불쾌 사이"를 돌아봄으로써 오랜 세월을 지탱한 몸과 정신의 늙음을 우리 사회가 '노쇠'라고 함부로 지칭한 건 아닌지 살펴본다(한편 그는 치매라는 단어가 '어리석다'라는 의미의 한자어로 이뤄져 있음을 꼬집고, 되도록 알츠하이머라는 단어를 쓰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작별 일기> 등).

3부에선 홈리스 현장에서 살며 싸우며 선의로 건넨 일말의 행동이 홈리스에게 어떤 모멸감을 줄 수 있는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공부의 기록을 보여 준다(<그여자가방에 들어가신다> '영주와 나' 편에서 해당 이야기를 더 자세히 접할 수 있다). 자신의 구술 작업이, 누군가에 대한 선의나 이타심에서 비롯됐을 거라는 편견 또한 명랑하게 깨부순다.

"내 삶의 원동력 중 하나는 호기심이다. 구술생애사 작업뿐 아니라 다양한 소수자들에 대한 관심의 시작은 연민이니 연대니 이전에 우선 호기심이다. 알고 싶은 거고, 이해하고 싶은 거고, 내 고정관념을 깨고 싶은 거고, 좋으면 배워서 따라 하거나 널리 알리고 싶은 거다. 정치·사회·문화·섹슈얼리티·젠더 등 내가 가졌거나 가지고 있는 다양한 정체성들에 대한 고민도, 시작은 호기심인 경우가 많다."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중에서

만나면 말문이 트이고, 이야기를 주절주절 읊어대는 노인들에게 연민보단 호기심이 발동해 생애구술 작업을 하고, 소설가로서 글쓰기도 해온 작가(<황 노인 실종사건>). 악착같이 남편과 자신들을 위해(혹 나 자신을 위해) 돈을 번 어머니의 심부름을 하다가 도둑질을 시작하고, 새벽 내내 헤매다 또 다른 도둑질에 골몰했다던 청년 시절 그의 회고는 어쩌면 금기어, 다른 말로 판도라의 상자 같은 것이었을 테다.

그가 숨 한번 크게 내쉬어 뚜껑을 열어 기록했을 불안의 나날을 마주 읽으며 나도 떠올랐다. 아버지의 지갑에 손을 댄 후 동네 어귀를 서성이며 불안해했던 어린 시절의 한 조각. 모범생과 얌전한 여자아이, 책임감 큰 첫딸이라는 이미지에 한없이 순응하다 가족의 기대와 점점 어긋났던 내 학창 시절. 독립해 비로소 자아를 찾은 것 같다가도 비루한 글쓰기에 시달리며 줄담배를 태우곤 했던 이십 대 시절. 궁핍한 가족의 생활과 나의 대학 생활이 공존할 수 없음을 회피했던 진창의 기억 들까지 말이다.

사회적이며 계급적인 개인의 상처, 우리는 감추지 않는다

지독하게 미웠거나 덮으려 했던 나의 지난 시절을 들추어 몰랐던 나의 "긍과 부"를 알게 하는 힘. 고백하건대 한동안 그의 문장에 펀치를 맞은 것처럼 얼어붙었다가, 수첩을 꺼내어 나의 문장을 몇 번 끄적인 일이 여럿이었다. 독자에게 자신의 시절을 돌아보게 함으로써 '나라는 삶의 여정'을 살피게 하는 필력은 쉬이 얻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상처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젠더적이고 계급적인 것"이라고 했던 그의 말을 이정표 삼아 나와의 거리두기를 시작하게 해준 작가는 몹시 이상하고 아름답고 힘이 세다. 선생 같기도 언니 같기도, 한편으론 '밥은 잘 먹고 다니는감?' 고르게 안부를 챙기는 마을 어른 같기도 하다. 질투는 나의 힘이 아닌 '호기심은 나의 힘'으로 베테랑 구술 작업을 해온 그의 영향으로 삶을 돌아거보나 쓰고자 하는 어른 세대, 청년 세대는 앞으로도 더 많아질 것이다.

삶의 밑천을 해명하는 글쓰기의 주인공이 바로 당신도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주는 사람. 대다수 베이비부머 세대 여성들이 포진한 요양보호사 업계에서 일하면서, 식모 노동 처우를 경험하고 돌아온 밤중에 통곡했음을 시원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 그 와중에도 친해진 가난한 노인들과 구술 생애 작업을 통해 숨은 삶을 들려주는 사람.

"쓰이지 않아 시간의 기억 속에 매장된 죽어버린 말들을, 그 여자들의 말라버린 혀로 휘젓게 하라." 자신의 첫 책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 초입에 이같이 밝히며 사적인 삶들이 '가장 센 정치적 삶'이 될 수 있음을 자명하게 고해온 사람. 가난이라는 나의 현실을, 너의 치부와 혐오를, 남몰래 나눈 다정함을 소문으로 두지 않고 이야기로 뜨끈하게 발라내는 최현숙은 우리에게 묻는다.

"가난은 사람을 흉측하게 '보이게' 만든다. 이 정리에 머물지 말자. 흉측하다는 문구에 그 표현에 대한 내 심리적 정상성을 계속 더 붙들고 노려보자. 나는 왜 내면이 아닌 외양의 어떠함을 놓고 감히 흉측하다는 혐오의 표현을 사용하는가."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중에서

"상대가 천박해서 불편하다면 내 소갈머리를 살펴야 한다."
-<할배의 탄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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