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폭력' 벗어나려하자... 6살 딸까지 이용한 남편

조영준 2023. 10. 1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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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 314]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셰이다>

[조영준 기자]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셰이다>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의 상영작 가운데 하나인 <성스러운 거미>는 16명의 여성을 살해하며 자신의 범죄를 언론에 직접 제보한 이란 최악의 연쇄 살인마인 일명 '거미'를 끝까지 추적하는 여성 저널리스트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었다. 이 영화의 주연을 맡으며 이란 내 뿌리 깊은 여성 혐오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은 배우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Zar Amir Ebrahimi). 그녀는 올해도 영화 <셰이다>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으며 이란 사회에 만연해 있는 젠더 폭력에 대해 말한다. 이번 작품의 경우에는 실제적인 사건을 베이스로 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가 자신의 모국인 이란 내 젠더 폭력의 피해자이며 증언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극의 사실감을 더욱 극대화시킨다.

영화는 호주에서 살고 있는 이란 여성 셰이다(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 분)와 6살 딸 모나(셀리나 자헤드니아 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남편 호세인(모진 아리아 분)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셰이다는 이혼 후 새 출발을 원하고 있다. 문제는 남편이 딸 모나를 주기적으로 만날 수 있게 하라는 법원의 통보다. 어쩔 수 없이 그와 계속해서 만남을 이어가야 하는 셰이다는 다시 가정을 회복해 이란으로 돌아가자고 강요하는 남편의 요구에도 이를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리고 마주하게 되는 것은 또 한 번의 폭력, 그렇게도 벗어나고자 했던 남편의 민낯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어린 딸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셰이다>는 누라 니아사리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남편의 학대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원하는 여성의 모습을 통해 한 인간의 존재를 억압하고 파괴하는 가부장적 규범과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마음을 그려내고 있다. 이는 한 어머니의 이야기이자 한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02.
"외모는 바꿀 수 있겠지만 그런다고 진짜 네가 변하는 것은 아니야. 너는 결국 다시 돌아가게 될 거야."

학대를 일삼는 남편과 고국에서의 제한된 미래,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지속적인 폭력, 그리고 피해자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관료주의 등 이 영화 <셰이다>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고전적인 플롯들이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영화들을 통해 이와 유사한 환경에 놓인 여성들의 서사를 마주해 왔고, 그때마다 슬퍼하고 분노했지만 여전히 이 문제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특히 극 중 호세인과 같은 남성의 캐릭터는 영화의 시작점에서부터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추측이 가능할 정도다. 물리적인 폭력과 협박, 전통적 시스템과 규범을 이용한 억압, 심지어는 스스로가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져야 한다는 식의 변호는 상대적으로 권력을 갖지 못한 대상을 무력화하는 데 종종 사용되어 왔던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 <셰이다>가 차용하고 있는 구조 역시 그동안 빼앗겨 왔던 자신의 권리나 의사를 더 이상 포기할 의사가 없거나 새로운 기회를 향해 도약하고자 하는 이들이 그 과정에서 어떠한 물리적 어려움과 심리적 좌절을 겪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데 적합하다.

03.
일방적인 폭력을 당하고 있는 셰이다의 삶을 지지하는 것은 두 가지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딸 모나와 두 모녀를 받아준 비밀 여성 보호소의 존재다. 먼저 모나의 존재는 셰이다로 하여금 행동하게 하는 근원이자 동력이다. 딸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여전히 폭력 아래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이 부분은 엄마라는 존재의 보편적 특성으로부터 기인한다. 조이스(레아 퍼셀 분)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보호소는 조금 다르다. 셰이다가 여러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최소한의 권리를 계속해서 주장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에 해당된다. 이 공간으로부터 그녀는 바로 설 수 있게 되며, 조이스의 보호 아래에서 작은 연대와 새로운 가족을 경험하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보호소에 머물고 있는 각국의 다른 인물들로부터 가끔은 차별적인 시선과 대우를 받게 되기도 하지만, 적어도 자신만큼은 이 커뮤니티를 하나로 통합하고자 하는 셰이다의 노력은 의미를 갖는다. 특히 다음으로 보호소에 들어오게 되는 나라(이브 모레 분)와의 내러티브는 셰이다의 문제가 그녀 하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임과 동시에 같은 상황에 놓인 이들끼리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강조해 낸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셰이다>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4.
이 영화의 일부는 누라 니아사리 감독의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고 알려져 있다. 겨우 5살일 때 극 중에서 등장하는 피난처와 같은 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보낸 기억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일까? 보호소에서 머물고 있던 셰이다가 이란의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와 통화를 하는 장면에는 슬픔과 두려움이 함께 공존한다. 세상에 완벽한 인생은 없다고, 남편 호세인이 더 이상 폭력을 저지르지 않고 정신을 차리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다시 생각하라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그녀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세상에서 제일 가깝다고 생각했던 존재마저 자신의 상태보다는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먼저 신경 쓸 때 가장 큰 아픔을 느끼게 되었으리라.

이런 바탕 위에서 호세인의 집착과 폭력은 점차 더 수위를 높여간다. 일단 가족을 재결합시키고 이란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최우선인 그는 보수적인 관습으로 인해 장학금이 취소된 아내를 장래에는 전적으로 지지하겠다는 말과 같은 지키지 못할 약속들을 섣불리 꺼내놓는다. 하지만 그의 그런 말들이 허상과도 같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의 손아귀에 쥐어진 채 폭력으로 점철된 시간을 보낸 바 있었던 그녀가 훨씬 더 잘 알고 있다.

06.
셰이다만큼이나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은 딸 모나다. 두 사람의 상황, 남편에 의해 지속적으로 촉발되는 불안함 속에서 아이는 어느 쪽의 편도 들지 못한 채 점점 더 표류하게 된다. 미래를 자신의 쪽으로 움직이려는 각각의 부모 앞에서 눈치만 봐야 하는 상황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심지어는 거짓말을 종용당하며 정신적 가혹 행위에 노출된다. 심지어 아빠는 엄마를 감시하기 위한 용도로 딸을 이용하기도 한다.

양쪽으로부터 가해지는 압력 속에서 그녀는 결국 설 자리를 잃고 마는데,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새해 파티 장면에서 아빠를 마주한 그녀의 공포스러운 표정은 그래서 꽤 길고 짙은 여운을 남긴다. 어쩌면 이 영화는 셰이다로 시작한 시선이 모나로 이양되는 내러티브로만 바라보더라도 셰이다만을 바라보던 때와는 다른 이야기를 획득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불화 가정에서 겪게 되는 아동의 어려움까지를 직접적인 소재의 범주로 잡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재적인 연결성이 이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셈이다.

07.
영화의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본다. 셰이다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남편 호세인이 딸 모나를 납치해 이란으로 돌아갈 경우를 대비하여 딸에게 공항에서 취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숙지시키고자 한다. 마치 실제로 누군가의 위급한 상황을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신이다.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거나 다큐멘터리의 속성을 안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가 아닐까. 미 선댄스 영화제의 관객들이 왜 이 작품에 월드시네마 극영화 부문의 관객상을 주고자 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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