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받아 마땅한 학생에게 상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준만 기자]
▲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무턱대고 칭찬하는 게 능사는 아니지 않겠는가ㅣ |
ⓒ 픽사베이 |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어떤 책의 제목이었다고 하는데 이제 이 말을 모르는 대한민국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칭찬받을 일을 했다면 응당 칭찬해줘야 한다. 칭찬에 인색할 필요는, 당연히 없다.
문제는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는데 칭찬하는 경우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바람직한 행동을 칭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 방법은 바로 상(賞)을 주는 것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상을 줄 때, 그 학생이 상을 받을 만한 행위를 했는지를 잘 살펴서 상을 주리라 생각할 듯하다. 마땅히 그러해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상당히 많다.
대학 입시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수상실적이 전형 요소에 포함돼 있었던 시절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한다. 그 시절에는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고등학교가 어떻게 하면 가급적 많은 학생들에게 상을 줄 수 있을지 고민했으리라 생각한다. 상이 가을날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처럼 학생들의 머리 위로 흩뿌려지던 시절이었다.
대입 전형에서 수상실적이 제외된 요즘, 고등학교에서 상은 현격하게 줄었다. 교육 활동 계획 단계에서부터 수상 계획을 포함하지 않는다. 상을 주게 되면 그 활동에서 보여준 학생의 특기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의 개수와 종류가 대폭 줄어든 지금, 내 생각에 가장 문제가 되는 상은 '모범학생 표창'이다. 지역마다 학교마다 다를 테지만, 내가 근무했던 지역의 모든 고등학교에서는 1년에 두 번 모범학생을 표창했다. 5월과 10월에. 선행 부문, 봉사 부문, 효행 부문으로 나눠 표창했다.
그런데 각 부문별로 각 학급에서 1명씩 대상자를 추천하게 돼 있는 게 문제였다. 각 학급에서 모범학생을 추천했을 때, 상을 받지 못한 경우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니 만약 30학급 규모의 학교라면 매번 90명의 모범학생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1년이면 180명의 모범학생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학급에는 모범적인 학생이 많고 또 다른 학급에는 모범적인 학생이 없을 수도 있을 텐데, 이런 상황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일률적으로 각 학급에서 부문별 1명씩을 추천하게 돼 있는 시스템도 큰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또 선행이나 봉사 부문 모범학생은 학급에서 추천할 수도 있겠지만, 효행 부문 모범학생을 학급에서 어떻게 추천한단 말인가. 그러나 어쨌든 내가 교직에 들어온 1989년부터 퇴직한 2023년까지 매해 빠짐없이 모범학생을 선발하여 표창했다.
내가 담임을 맡았을 때, 어떻게 모범학생을 추천했는지 고백하겠다. 모든 교사가 나처럼 모범학생을 추천하지는 않았을 테니, 교육계 전체를 이상하게 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 어딘가에 모범학생을 제대로 추천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교사들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 내가 어떻게 모범학생을 추천했는지 말하겠다고 해놓고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나는 이렇게 했다. 5월에는 반장, 부반장, 서기를 추천했다. 10월에는 학급 투표를 통해 대상자를 선정해 추천했다. 물론 학기초에 학급회의에서 모범학생을 어떻게 추천할지 학생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학생들의 양해를 얻고 나서 추천했다. 그러나 그렇게 추천된 학생들이 모범학생에 딱 들어맞는 학생들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근무한 지역에 있는 고등학교에서의 모범학생 추천 실태는 대략 나의 방식과 대동소이했다.
이렇게 각 부문의 모범학생 추천 대상자가 선정되면 업무 담당 교사가 보내준 양식을 채워 제출해야 한다. 그 양식에는 추천 사유를 간단하게 적는 난이 있다. 정말로 간단하게 적어도 된다. 예를 들어 이렇다. '청소 시간에 자신의 청소 구역이 아닌 곳도 청소함', '보이는 대로 쓰레기를 줍는 등 봉사정신이 투철함', '웃어른에 대한 예의가 바르고 효를 실천함' 등등. 이런 상황이니 어떤 교사가 자신이 작성한 모범학생 추천서를 갈무리해 두고 인적사항만 바꿔 가며 몇 년째 우려먹는 것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이렇듯 유명무실한 모범학생 표창 제도를 없애자고 몇 번이나 업무 담당 부장 교사에게 건의했었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대개는 상을 안 주는 것보다 주는 것이 훨씬 낫지 않으냐고 했다. 또 있는 제도를 없애는 건 매우 힘든 일이고 그에 따르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학생들도 모범학생 표창을 받으면 대부분 매우 좋아했다.
그렇다고 담임교사가 추천만 하면, 아무런 검증도 하지 않고 상을 주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뚜렷한 선행, 봉사, 효행 실적이 없는 학생들을 의례적으로 표창하는 모범학생 표창 제도는 없애는 편이 훨씬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또 대입 전형에서 수상실적이 제외된 요즘, 모범학생 표창의 쓸모는 찾아보기 힘들다. 표창장을 받는 학생들이 잠깐 동안 좋아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쓸모에 해당할 듯하다. 아주 가끔이긴 하나, '내가 이 표창장을 왜 받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쑥스러워하는 학생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 둔다.
그러면 왜 별다른 효용 가치가 없는 모범학생 표창 제도를 없애지 않는 걸까? 여러 가지 까닭이 있을 수 있겠으나, 가장 큰 이유는 학교에서 관행을 잘 없애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 근무하는 동안 어떤 일을 추진하려고 할 때 '작년에 어떻게 했는지 알아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대개 이런 분위기이다 보니, 계속 추진해 오던 일을 웬만해서는 없애지 못한다.
동료 교사들에게 모범학생 표창에 대해 물으면, 열에 아홉은 아무런 생각이 없다고 답한다. 때가 되면 업무 담당자가 대상자를 추천하라고 하니 추천하고, 표창장을 만들어 보내 주니 학생들에게 전달해 준다고 한다. 별 영양가가 없는 모범학생 표창 제도를 없애면 어떻겠냐고 물으면, 대부분이 그래도 별 문제없다고 답한다. 그래서 의견을 모아 모범학생 표창 제도를 없애자는 건의를 하자고 하면, 대부분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하면서 슬그머니 빠진다.
모범학생 표창 문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이런 현상이 벌어지다 보니, 이어져 내려오는 관행을 없애기가 매우 힘들다. 학교 현장은 혁신 마인드가 뿌리내리기 쉽지 않은 토양인 것이다.
학교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수업'에 관해 생각해 보아도 그렇다. 내가 교직에 입문한 1989년과 교직을 그만둔 2023년의 수업 풍경이 의미 있게 달라졌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물론 우리나라 모든 고등학교의 사정을 다 알지는 못하므로, 이 이야기는 내가 근무한 지역의 고등학교에 국한한 이야기이긴 하다.
학교 현장을 떠난 지금, 후배 교사들의 안타까운 죽음 소식이 들려오고 그에 따른 전국 교사들의 검은 파도 집회 소식이 들려온다. 미비한 제도를 정비하여 교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해야 함은 너무도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아울러 학교에서도, 교사들도 혁신 마인드를 발휘하여 불필요한 관행과 제도를 과감하게 없애 교사들이 학생들을 온 힘으로, 온몸으로 '가르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야 한다. 별로 잘한 일도 없는데 칭찬을 반복하면 고래도 춤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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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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