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비장애 모두 포용하는 춤… 한국과 호주 무용단의 3년 협업
추석 연휴 다음날인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SAC아트홀에는 특별한 공연이 올라갔다. 장애 및 비장애 무용수가 함께하는 호주와 한국의 무용단이 지난 3년간 협업한 결과물을 선보인 것이다. 20분짜리 프리뷰로 선보인 ‘카운터포이즈: 그럼에도, 춤’은 호주의 ‘레스트리스 댄스 시어터’(이하 레스트리스)와 한국의 ‘29동 댄스 시어터’(이하 29동)가 공동으로 창작하고 제작했다.
‘카운터포이즈: 그럼에도, 춤’의 출연진은 9명. 레스트리스에서 다운증후군 발달 장애인 3명과 비장애인 2명이 참여했고, 29동에서는 청각장애인 2명과 비장애인 2명이 참여했다. 장애와 언어 등 다양한 경계를 넘어 균형에 대한 통찰을 담은 이 작품은 아직 최종 완성본은 아니었지만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특히 국내에서 비장애인들만 출연하는 여느 무용 공연 못지 않은 에너지가 넘쳤다.
공연 이후에는 두 단체의 협업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티저 영상이 10분간 상영됐다. 그리고 두 단체의 무용수들과 예술감독 그리고 음악을 담당한 한국음악프로젝트(KMP) 연주자들, 통역사까지 참여한 아티스트 토크가 90분간 이어졌다. 토크가 유난히 긴 것은 영어통역, 수어통역, 문자통역, 시각장애인 관객을 위한 출연진의 ‘셀프 비주얼라이제이션’(자신의 이미지를 구체화하여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 등이 순차적으로 이뤄져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날 공연에 앞서 두 단체는 추석 연휴 내내 연습과 함께 댄스필름을 촬영하는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그리고 공연 다음날에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공연을 관람하고 워크숍까지 참여한 발달장애인 김현우 화가는 “무용수들이 밀고당기는 감각이 정말 멋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김 화가와 동행한 그의 모친도 “장애를 억지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공연의 완성도가 높은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카운터포이즈: 그럼에도, 춤’ 공연에는 남호주대 예술경영학과 이보람 교수의 역할이 컸다. 2018년 남호주대에서 교편을 잡은 이 교수는 대학이 있는 애들레이드에서 레스트리스를 비롯해 ‘투티 아츠’ ‘노 스트링스 어태치드 장애극단’ 등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장애예술 단체를 가깝게 접할 수 있었다. 호주는 오랫동안 장애인을 집단 수용하는 시설을 지원했지만 1980년대 말부터 인권운동과 함께 탈시설화가 추진됐다. 이에 따라 지역 사회로 유입된 장애인 대상의 예술 지원이 이뤄지면서 장애예술이 빠르게 발전하게 됐다.
이 교수는 “호주의 장애예술 단체를 만났을 때 장애인들이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고 예술가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모습에 깊은 감동을 느꼈다. 특히 이들 단체가 장애인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통해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매우 인상적이었다”면서 “제가 호주에서 얻은 배움을 한국에 계신 분들과 나누고 싶었다. 특히 한국과 호주의 장애예술가들이 소통할 수 있도록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2020년 4월 서울에서 레스트리스가 참여하는 장애예술 관련 심포지엄을 추진했다. 1991년 설립된 레스트리스는 장애인 및 비장애인 예술가들이 함께하는 단체로 문화 다양성 실천을 추구하고 있다. 뛰어난 수준의 작품으로 자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종종 초청받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2019년 서울거리예술축제와 올해 서울세계무용축제에 초청된 바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심포지엄은 취소되고 온라인으로 워크숍만 열리게 됐다. 당시 레스트리스의 한국측 상대로 김영찬-이선영 부부가 이끄는 29동이 낙점됐다. 그동안 장애인을 위한 움직임 워크숍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부부가 2017년 지금의 무용단을 만들었는데, 레스트리스의 2019년 한국 공연에 참여했던 청각 장애인 무용수 김민수가 단원으로 있는 것이 협업의 계기가 됐다.
두 단체의 진지한 협업을 온라인으로만 끝내기 아까웠던 이 교수는 동료인 루쓰 렌츨러 교수와 함께 통합연구 국제교류 플랫폼 ‘남호주대 커넥트 투 어빌리티스’를 만들어 적극적적인 지원에 나섰다. 여기에 호주외교통상부, 호한재단, 호주예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후원을 한 덕분에 3년간 두 단체의 협업이 진행될 수 있었다. 두 단체는 온라인을 통해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논의하고 안무와 연습을 각각 진행했다. 그리고 지난해 가을 29동이 호주를 방문해 레스트리스와 함께 리허설을 진행했다. 올해 서울에서의 프리뷰 공연까지 3년에 걸친 협업은 댄스필름과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내년에 공개될 예정이다.
29동의 이선영 예술감독은 “지난 3년의 협업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우리보다 앞서 장애예술을 발전시켜온 레스트리스와 작업하며 많은 공부가 됐으며 영감을 받았다”면서 “원래 ‘카운터포이즈: 그럼에도, 춤’은 60분으로 계획된 작품이다. 앞으로 이 작품을 완성해서 좀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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