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의 승리요, 몰상식의 참패다

안홍기 2023. 10. 1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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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구도는 윤 대통령 작품... 총선도 이런 구도?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안홍기 기자]

 김태우 국민의힘 강서구청장 후보와 김선동 서울시당위원장이 11일 저녁 서울 강서구 마곡동 김 후보 캠프사무실에서 개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상식의 승리요, 몰상식의 패배다. 이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의 결과가 그렇다. 

우선, 유죄 판결 확정으로 구청장직을 상실한 사람이 그 구청장을 다시 뽑는 선거에 후보로 나왔다는 것 자체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런 몰상식 선거판을 만든 이는 누구인가. 윤석열 대통령이다.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가 선거에 나설 수 있었던 건 8.15 특별사면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유죄를 확정한 지 석 달도 안 됐는데, 대통령이 고유권한으로 죄를 없애줬다. 

특별사면과 보궐선거 출마는 별개 사안이라고? 대통령이 누군가를 사면하고 싶어도 사법부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사면권을 행사하는 게 일반적인 관례였지만 윤 대통령은 그걸 깼다. '선거 전 사면'은 '강서구청장 후보는 김태우'라는 명확한 메시지다. 그 점에서 김태우 후보는 윤 대통령이 출마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28일 후보 출정식에서 한 말도 이를 방증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오죽 신임했으면 특별사면에 복권까지 싹 시켰겠나."

대통령이 신임하는 사람이 보궐선거에서 승리해 구청장 자리를 되찾았다면, 사법부의 판결도 '없던 일'로 만드는 게 대통령에게는 가능한 일이란 걸 보여줬을 것이다. 김 후보가 승리했다면,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사회의 기초 상식 같은 건 소용이 없고 '대통령의 권능'만 빛나는 세상이 될 뻔 했다. 그래서 이번 선거 결과는 상식의 승리요, 몰상식의 패배다. 

지지율 따윈 관심 없는 소신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긴급 경제·안보 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보궐선거는 끝났지만, 그래도 궁금한 점은 남는다. '이길 수 있다'는 확신도 없이 추진했다기엔 너무 많은 것이 걸려 있는 선거였기 때문이다. 일단 반년 뒤 있을 총선에 작용할 민심을 가늠하는 선거였다. 또 총선 전망이 어두워지는 순간, 대통령만 바라보던 단일대오는 무너지고, 각자도생의 '공천 분쟁'이 벌어지는 것은 집권 여당의 숙명이다. 

여론이 여당에 유리하다고 잘못 파악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1982년 민주정의당으로부터 41년, 1990년 3당 합당의 민주자유당으로부터 33년이 넘는 역사가 있는 국민의힘이 여론 지형을 잘못 읽어 '반드시 실패할 계획'을 짰다고 생각하긴 어렵다. 

오히려 여론 따위는 안중에도 없기 때문일 수 있다. 임기 초에만 대통령실 출근길에 기자와 문답을 했던 윤 대통령은 지난해 7월 4일 지지율 하락에 대한 질문을 받고 "선거 때 선거운동을 하면서도 지지율은 별로 유념치 않았다.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답했다. 또 "제가 하는 일은 국민을 위해 하는 일이니 오로지 국민만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그 마음만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번 선출된 대통령이 5년 동안 자신의 신념대로 묵묵히 밀고 나가면 성과가 나오고, 당장은 아니더라도 역사에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럴듯하고 소신 있어 보인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에는 부합하지 않는 얘기다. 선출직 공무원은 보장된 임기동안 마음대로 하라고 뽑아주는 것은 아니다. 정책을 시행해 성과를 만들기 위해 설명·설득하면서 지지를 모으는 것이 선출된 공무원의 본분이다. 여론에 반하는 길을 가는 경우라도 정당한 이유를 밝히고 이해를 구하는 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게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출된 공무원의 직무 태도다. 

윤 대통령이 상식을 저버린 지는 오래다. 일부 국민을 세금 도둑으로 몰거나 반국가 세력이라고까지 매도하는 일은 상식적이지 않다. 정부를 맡은 지 1년이 넘은 대통령이 전 정부 책임론을 제기하는 것도 이상하다. 고속도로 건설 계획이 갑자기 대통령의 처가 땅 쪽으로 변경된 것도 상식적이지 않다.

수해 실종자 수색에 나선 군인이 순직한 사건을  수사하다가 무리한 수색의 단초가 사단장의 잘못된 지시에 있다는 혐의를 잡고 경찰에 이첩하였는데, 이를 항명 혐의로 몰아간 것은 몰상식의 극을 달린다. 심지어는 인사청문회장을 맘대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은 장관 후보자까지 나왔지만 현재까지 지명 철회 조치가 없다. 

국정에 상식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반년 뒤의 국회의원 총선거 역시 상식 대 몰상식의 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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