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임산부까지 대거 강제북송"…대응 못한 尹정부
북한 국경 봉쇄 해제한 뒤 첫 '대규모 북송'
"尹정부 치욕의 날" 여야, 한목소리로 질책
중국이 항저우 아시안게임 폐막 직후 재중 탈북민 600여명을 북송한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정부의 안일한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북한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걸어 잠근 국경을 다시 개방한 뒤 수백명 단위 대규모 송환이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인권'을 기치로 내건 윤석열 정부가 이 같은 정보를 제때 파악하지 못한 데다, 북송을 저지하기 위한 대응에 나서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베드로 북한정의연대 대표는 12일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코로나19 확산 기간 불법체류자로 체포·수감돼 있던 탈북민 600여명이 트럭에 실려 북송됐다"며 "북송이 이뤄진 지역은 랴오닝성 단둥부터 지린성 훈춘·도문·남평·장백까지 5곳"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일부 지역에선 북한 보위부가 직접 중국으로 와 호송에 관여하거나 작전을 지휘했다"고 덧붙였다.
정 대표는 북송 시점을 '지난 9일 오후 8시 이후'로 특정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폐막 바로 다음날이다. 당시 변방대 감옥에 수감돼 있던 한 탈북민은 중국인 남편에게 북송당할 것 같다는 소식을 급히 전하면서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으니 아이들을 부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특히 이번 송환 대상에는 임산부를 비롯한 여성과 아동, 심지어는 신생아까지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국군포로 가족까지 북송 리스트에 올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2020년 1월부터 3년 넘게 국경을 봉쇄했던 북한 당국은 올해 여름부터 국경을 점진적으로 개방했으며, 지난 8월 말 해외 체류 주민들의 귀국을 처음으로 공식 승인한 바 있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은 당시 지식인과 유학생, 공관 직원 등 당국 입장에서 탈북을 막아야 할 대상부터 먼저 송환한 것"이라며 "그 시점부터 아시안게임 개막 직전까지 암암리에 북송이 이뤄졌고, 아시안게임이 폐막하자 아예 대규모로 일시 북송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보 당국도 이런 내용을 부정하지 않고 있다. 정보 관계자는 "탈북민 단체나 선교 활동가 측에서 공개한 내용을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 중이며 현재로선 공식적인 확인이 불가하다"고 말했다.
'북송 사태' 파악 못한 통일부…"尹정부 치욕의 날"
전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통일부 대상 국정감사에선 통일부를 겨냥한 여야 의원들의 질타가 잇따랐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통일부가 '강제북송을 반대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한 점을 지적하며 "주장이나 (물밑) 협상만 해봤자 소용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한·미·일 관계는 좋아졌을지 몰라도, 그에 따라 중국과의 관계가 계속 멀어지면서 발생한 문제일 수 있다"며 현 정부가 대중 관계에 소홀했던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정부가 북송 사실을 파악했는지' 묻는 말에 "통일부에선 항저우 아시안게임 직후 이런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고 답하면서 비판을 자초했다. 김 장관은 통일부 취임 이후부터 윤석열 정부의 대북 기조에 맞춰 '북한인권 증진'에 매진하는 행보를 이어 왔지만, 정작 대규모 북송 사태를 예견하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북한인권을 중시해온 윤석열 정부에게 치욕의 날"이라고 질책했다.
인권단체와 탈북민 구출 활동을 전개해온 비정부기구(NGO) 사이에선 통일부와 국가정보원 간 '정보 공유'가 제때 이뤄지지 않은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통일부는 최근 정보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정보분석국'을 신설했으며, 국정원에서 3급 간부를 파견받은 바 있다. 그러나 김 장관은 "언론 보도를 통해 북송 소식을 인지했다"고 밝혔고, 재중 탈북민 사안에 관여하는 통일부와 외교부, 국정원 가운데 어느 부처도 사실관계 여부와 대응책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중국 정부는 탈북민이 북한에 보내질 경우 극형에 처해질 가능성을 알면서도,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기념일에 맞춰 선물 보내듯이 탈북민 600여명을 송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가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머뭇거리는 사이 헌법상 우리 국민에 해당하는 탈북민은 처형을 면치 못할 것"이라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한편, 통일부는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그에 따른 대책을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대규모 북송 정황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정부 차원의 항의 성명 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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