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익의 Epi-Life] 웨딩국수가 있으면 웨딩떡도 있어야지요

서지영 2023. 10. 12.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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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결혼식 피로연 음식은 서양식 코스로 나옵니다. 스프와 찬 요리 다음에 스테이크가 메인 요리로 등장하고 마지막에 디저트를 냅니다. 이 결혼식 피로연 서양식 코스 요리에 한국 전통 혼례 음식이 꼭 끼여 있습니다. 국수입니다. 뷔페를 해도 국수가 있습니다.

결혼식에서 먹는 국수를 잔치국수라고 합니다. 국수의 가락이 길어서 국수를 먹으면 ‘길게 함께 잘살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결혼식에 국수를 먹었고, 그래서 잔치국수라는 말이 만들어졌습니다. 잔치국수는, 그러니까, 끊어서 먹으면 안 됩니다. 가위는 물론이고 치아로도 끊으면 안 됩니다. 끊지 않고 후루룩 먹어주어야 신혼부부가 오래오래 같이 잘산다고 합니다.

지난달에 결혼식에 갔습니다. 식탁에 코스 요리 메뉴가 예쁘게 올려져 있었습니다. 무슨 음식이 나오나 보는데, 웃음이 푹~ 터지고 말았습니다. 잔치국수는 없고 웨딩국수가 있었습니다. 영어로 ‘wedding noodle’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서양에서 결혼식을 상징하는 음식은 케이크입니다. 웨딩 케이크(wedding cake)라고 하지요. 결혼식을 끝내며 신혼부부가 칼을 같이 들고 케이크를 자릅니다.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이 케이크를 나누어 먹으며 신혼부부의 미래를 축복합니다.

잔치국수를 웨딩국수라고 ‘번역’한 분은 틀림없이 서양의 웨딩 케이크를 의식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잔치국수는 서민 음식입니다. 잔칫날에 먹는 음식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별로 특별나지 않은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결혼식에 먹는 국수인데, 그것도 서양식 코스 요리에 끼여 있는 국수인데, 품격이 느껴지는 이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을 것이라는 게 제 추측입니다.

제가 아주 어릴 때에 결혼식에 가서 먹었던 음식은, 그러니까 집 마당에서 결혼식을 하던 시절에 먹었던 음식은, 삶은 돼지고기에 잡채, 가오리무침, 부침개, 국수, 떡이었습니다.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하고 ‘회관’이라는 식당에서 피로연을 하던 시절에도 이 메뉴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뷔페가 유행할 때에도 ‘기본’은 유지되었습니다. 서양식 코스 요리는 ‘전통적인 결혼식 잔치 음식’을 확실히 밀어내었습니다.

결혼식에 가서 서양식 코스 요리를 먹으면서 관찰하는 게 있습니다. 떡이 나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밥은 담장을 넘지 않으나 떡은 담장을 넘습니다. 떡은 공동체 음식입니다. 잔치국수도 공동체 음식이기는 하나 떡만큼 그 의미가 강력하지는 않습니다.

마을 일을 벌일 때에 동네 어른들이 모여 떡부터 했습니다. 떡으로 마을 제사를 올리고 떡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집안에 일이 있어도 떡을 해서 돌렸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삼칠일 지나 시루떡 돌리고 백일이면 수수떡 돌리고 돌에는 백설기를 돌렸습니다. 이사를 와도 떡을 돌리고, 아이가 화장실에 빠져도 액을 푼다고 떡을 돌렸습니다. 떡은 가족끼리 먹는 밥과는 달리 공동체 구성원이 나누어 먹는 음식입니다.

한국 사회는 공동체가 깨졌습니다. 이사를 와도 떡 돌리는 이웃이 없습니다. 동제를 지내는 마을이 있기나 한지요. 산업화는 우리에게 싸늘한 도시를 안겨주고 공동체를 앗아갔습니다.

요즘 결혼식은 공동체 시대의 결혼식과는 다릅니다. 지연과 혈연의 공동체 사람들이 하객으로 참석하기는 하나 ‘산업사회에서의 인맥 관리 안에 드는 사람들’이 결혼식 피로연에 앉아 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객들이 서로 잘 모릅니다. 참 어색합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한국인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공동체 음식입니다. “우리 공동체잖아요. 편안하게 즐기세요”하고 말을 거는 음식이 자연스럽게, 무의식적으로, 피로연 식탁에 놓이게 마련입니다. 그 공동체 음식이 저는 떡이라고 생각하고 관찰을 합니다.

결혼식 피로연 서양식 코스 요리에 떡이 장식물처럼 올려져 있어도,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아도, 심지어 맛이 없어도, 떡이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피로연이 끝나고 혼주가 떡을 선물로 주는 일도 있는데, 그때에는 그 집안을 다시 봅니다. 이런 게 전통입니다.

그날 결혼식에서 국수는 먹었는데 떡은 못 먹었습니다. 웨딩국수가 있으면 웨딩떡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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