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의 직설] 해병대 훈련이 그렇게 욕먹을 일인가?…미국 여자대학팀은 지금도 캠프 입소한다
아시안 게임이 끝난 뒤 엉뚱한 소란이 일어났다. 선수들의 체력과 정신력을 높이기 위한 해병대 극기 훈련, 새벽 훈련, 와이파이 사용 제한 등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즐기며 운동하려는” 요즘 세대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꼰대”들의 낡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그런 비속어까지 사용하며 비난할 대상은 욕설을 퍼붓고 폭력을 휘두르는 훈련이다. 해병대 극기 훈련, 새벽 훈련, 와이파이 사용 제한은 그런 대상이 아니다. 그렇게 마구 비난 받아서 안 된다.
요즘 세대의 선수는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싶지 않은가? 강한 체력과 정신력을 갖추지 않고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가?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어도 스포츠가 존재하는 한 강한 체력과 정신력 없이 챔피언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진리다.
미국에서도 해병대 훈련을 한다
미국은 세계에서 스포츠가 가장 발달한 나라다. 선수들의 자유와 인권을 가장 존중하는 나라로 꼽힌다. 어느 곳보다 즐기면서 운동하는 것을 더 강조한다. 그런 나라에서도 해병대 극기 훈련과 새벽 훈련을 하며 와이파이 사용을 제한한다. 선수들의 강한 체력과 정신력을 길러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다. 즐김은 내가 하는 운동에 대한 강한 노력과 열정, 애정,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다. 스포츠의 정도를 교육하기 위해서다. 그런 방식들이 결코 문제되지 않는다. 방식의 차이에 대한 이견이 있으나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서 최고의 선수들을 만들고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워가는 팀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여자 농구는 세계에서 절대 지존이다. 올림픽 8번 우승에다 세계선수권대회 11번 우승을 한 나라다. 그런 미국에서 코네티컷 대학 여자팀은 절대 지존으로 꼽힌다. NCAA(미국대학스포츠협회) 선수권대회에서 11번 우승을 했다. 미국에는 1,300개의 4년제 대학 여자농구 팀이 있다. 그 가운데 1부에만 348개 팀이 있다. 이들은 지역 리그를 마친 뒤 최종 64개 팀이 매년 챔피언을 놓고 토너먼트를 벌인다. 한 번 우승하는 것은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만큼 어렵다고 한다.
지노 오리에마(70) 코네티컷 대 감독은 39년 동안 11번 전국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지역 리그에서 29번 우승했다. 30승, 40승을 거두면서 무패를 기록한 시즌만도 6번. 명예의 전당 헌액을 비롯해 각종 코치 상을 50 차례 받았다. 미국 대표 팀 감독으로 올림픽 2회, 세계선수권 2회 우승을 일구었다.
1985년 그가 부임하기 전 15년 동안 코네티컷 대는 진 경기보다 이긴 경기가 많은 시즌은 단 한 번뿐일 정도로 약체였다. 그런 팀을 맡아 1,180승을 거두었다. 패한 것은 156번에 지나지 않는다. 승률 88.3%. 미국 농구에서 남녀 통틀어 최고 승률이다. 그가 만든 업적들은 미국 농구에서 전무후무한 대기록이다.
오리에마 감독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 그의 신화는 강력한 훈련과 엄격한 선수 관리로 이룩되었다. 그러면서 어떤 시비와 잡음도 일으키지 않았다. 39년 동안 지켜온 그의 철칙은 누구도 함부로 따라 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누구도 함부로 깎아내리지 않는다. 너무나 당연한 원칙이기 때문이다.
올해 WNBA 최고 선수로 뽑힌 브리아나 스튜어트는 코네티컷 대학 4년 동안 미국 선수권 대회를 4연패했다. 그 때 함께 뛴 선수들은 2014년 해병대 교관들을 초청해 2주 동안 체력 훈련을 했다. 매일 새벽 6시부터. 시즌을 위한 공식 연습 기간이 아니었다. 자발적인 훈련이었다. 그 선수들은 4연속 우승하면서 151 경기에서 146승을 거두었다. 두 시즌 40 경기와 36 경기를 모두 이겼다. 주전 3명이 WNBA 드래프트에서 1,2,3순위로 뽑혔다. 모두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해병대 교관들과 새벽 훈련을 하면서 얻은 결과였다.
코네티컷 뿐만이 아니다. 선수권을 두 번 제패한 베일러 대학 여자 농구팀도 지난 8월 해병대 교관들을 초청해 2박3일 동안 합숙훈련을 했다. 감독은 “해병대를 초빙한 목표는 선수들이 올바른 규율과 정신 상태를 갖추면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라며 “연결, 소통, 협력, 경쟁, 헌신 등 해병대의 많은 가치들이 우리의 가치와 일치한다. 이번 주말의 해병대 훈련이 2023-24 시즌 준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리에마 감독의 훈련은 강도가 높다 못해 가혹하기로 유명하다. 그는 그런 훈련에서의 성실성이 경기에서의 출전 시간을 보장한다고 말한다. 팀의 최고 선수라도 시합 전 훈련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실제 경기에서 가차 없이 벤치에 앉혀 버린다.
한 기자는 “연습할 때 보면 안다. 오리에마는 연습 때 극한 상황으로 선수들을 몰아넣는다. 선수들이 ‘이제 됐다. 충분하다’라고 안주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들은 고교를 졸업할 때 최고의 선수였으나 엄격한 감독에 닦달당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모든 연습에서 극한의 순간까지 자신을 밀어붙이지 않고서는 팀의 일원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리에마 선수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자신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최고의 선수가 되려는 ‘헝그리 정신’을 가진 것”이라고 적었다.
오리에마는 “미국 최고 선수라면 연습 때도 매일 미국에서 최고의 선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 선수들이 해병대 교관을 초청해 새벽 체력훈련을 스스로 하는 것이다.
소셜미디어 사용도 못하게 한다
다른 기자는 “오리에마가 ‘왕조’를 세운 데는 백만 가지의 이유가 있다”며 특히 다음에 주목했다: “오리에마는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의 문신이 내 보이지 않도록 하며 머리나 팔에 밴드도 착용하지 못하도록 한다. 선수들 유니폼에는 등 번호 이외에 이름조차 없도록 한다. 5개월 동안의 시즌 중에는 일체 소셜미디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팀의 식사시간이나 이동 버스 안에서는 휴대폰 사용도 금지한다. 손톱에 광택제 바르는 것도 금지한다...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일들을 ‘쩨쩨하거나 불필요한 것’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들은 빈틈없이 잘 짜인 팀을 만드는 문화를 창조한다.”
WNBA에 뛰었던 한 선수는 코네티컷 4년 내내 손목의 문신을 테이프로 가린 채 경기를 했다. 그 문신은 사고로 숨진 동생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오리에마는 그런 사정도 용납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그렇게 하다간 난리가 날지 모른다. 고교 선수들도 화장을 하고 경기에 나서는 판인데 휴대폰이나 소셜미디어 금지라니...선수촌에서 와이파이 제한한다고 당장 반대가 쏟아지지 않는가.
그러나 개인의 자유를 마음껏 보장한다는 미국에서, 그것도 39년 동안 전혀 변하지 않은 오리에마의 원칙이다. 한국이라면 “꼰대 중의 꼰대”라고 갖은 욕을 다 먹을 것이다. 그런 엄한 통제를 계속 유지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선수들의 경쟁력을 갖추게 하면서 학생 됨을 결코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대학 스포츠의 정도라는 것이다.
코네티컷 선수들 대부분은 미국 고교 랭킹 1-10위에 든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선수들. 그들도 오리에마의 강도 높은 훈련과 엄격한 통제에 적응하는 것이 무척 힘들다는 것을 다 안다. 수백 개 대학의 스카웃 제의를 뿌리친 최고의 선수들은 한결같이 “나를 더 몰아붙이는 감독을 원한다”며 코네티컷을 선택한다. 더 나은 선수가 되고, WNBA에 가기 위해서다. 물론 불평은 있다. 그러니 해마다 1-2명씩은 “맞지 않는다”며 전학을 한다. 그러나 어떤 선수도 그런 원칙을 비난한 적이 없다.
WNBA 피닉스 머큐리에서 뛰는 다이내나 토라지는 5개 올림픽 금메달, 3개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가진 41세의 현역. 미국 역사상 최고의 슈팅 가드로 꼽힌다. 그녀는 “오리에마 감독은 대학 4년 내내 나를 몰아붙였다. 지금 되돌아봤을 때 그는 단순히 농구 뿐 아니라 나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만약 내가 오리에마 감독 밑에서 농구를 하지 않았다면 그저 그런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가 나를 특별한 사람이 되도록 밀어붙였다고 진정으로 믿는다. 나는 평생 그에게 감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1부 리그에서 경쟁한다는 것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여자 팀에서 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만큼 경쟁의 치열함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고교 농구 선수 41만 여명 가운데 348개 1부 리그 대학에서 뛰는 선수는 5천여 명(1.2%)밖에 되지 않는다. 그 가운데 WNBA에 뽑히는 선수는 해마다 겨우 36명. 대학 졸업생의 0.9%만이 뽑힌다. 여자 고교 농구선수가 대학을 거쳐 WNBA 신인이 될 경쟁률은 3,086대 1이다.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다.
현재 WNBA 선수 144명 선수들 가운데 코네티컷 출신들이 16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다들 극한 훈련과 지나치다 할 정도의 엄격한 통제를 이겨냈기 때문이다. 다른 대학 선수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해마다 뛰어난 대학 졸업생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프로 선수들도 강도 높은 훈련을 하지 않고서 오래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누구는 그럴지 모른다. “코네티컷은 대학 스포츠가 아니냐. 한국 선수들은 프로도 많으니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들 중에는 중고생도 대학생도 많다. 세계 어느 나라의 프로 선수도 높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스스로 맹훈련하고 자기 통제를 하지 않는 선수는 없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해병대 극기 훈련이나 새벽 훈련, 와이파이 통제가 결코 시대에 뒤떨어진 짓이 아님을 미국의 대학 여자농구 팀이 실증해 오고 있음을 알 필요가 있다.
참고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에릭 텐 하흐 맨유 감독도 올 시즌을 앞두고 영국 특수 부대인 SAS 부대에 입소, 1주일간 훈련을 받은 적이 있다.
◆'손태규의 직설' 필자인 손 교수는 현재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로 재직중이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스포츠, 특히 미국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많다. 앞으로 매주 마이데일리를 통해 해박한 지식을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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