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도 없는 시골 동네...엄마의 '빵 셔틀'(?)
"엄마 마트 가면 안돼요?"...읍내 편의점 군것질 위한 읍소 작전
아직도 버스가 다니지 않는 시골 마을이 있다. 우리집이 바로 그곳이다. 군내버스도 다니지 않는 동네. 그런 곳의 아이들은 어떻게 살까? 읍에 나가고 싶어도 혼자서는 갈 수 없다. 택시를 부르거나 엄마를 졸라야 한다.
주말이면 아이들의 심심한 입은 엄마를 부른다.
“엄마, 마트에 가면 안돼요?”
“엄마, 저녁하기 귀찮잖아요. 그냥 우리가 컵라면 사서 먹으면 안될까요?”
“귀찮은 건 저녁이 아니고 너희들을 몽땅 데리고 마트에 가는 거야.”
“주말에는 엄마도 좀 쉬자.”
기분 따라 달라지는 엄마의 답에 아이들은 목 놓아 엄마를 부른다. 나른한 오후를 즐기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너나없이 한마디씩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에이스 과자 사올께요. 거기다 커피 찍어드시는거 좋아하잖아요. 커피도 타 드릴께요.”
“시장도 우리가 봐 올께요. 우유도 필요하잖아요.”
귀찮은 엄마를 구원하듯 때마침 들어오는 아빠. 요구사항이 아빠에게로 옮아간다.
“아빠, 오늘 한가하세요?”
“마트 털로 가요. 아빠가 좋아하는 과자 사 드릴게요. 네!”
과자라는 유혹에 아빠는 더 이상 아빠가 아니다. 그저 아이들의 꿰임에 넘어가는 문제아(?)가 되고 만다.
“그래! 가자! 마트나 털로 가자.”
갑자기 왕따가 된 엄마는 구겨진 얼굴을 하고 차에 올랐다. 신이 난 아이들의 틈 속에서 아빠라는 작자는 마누라의 기분 따윈 아랑곳 하지 않는 그저 과자를 먹을 생각에 행복한 딱 큰아들 수준이다.
도시 아이들과 달리 대형 마트나 백화점 쇼핑을 자주 할수 없는 형편이니 읍내의 마트는 행복충전소나 다름없다. 그것도 엄마 아빠를 졸라야만 갈수 있는 곳이니 얼마나 애달픈 곳인가 말이다.
"어기껏해야 과자 몇 개에 음료수, 컵라면으로도 기분 좋은 군것질 장소다.
봉지 봉지에 사온 간식거리들은 거실을 풍성하게 한다. 서로 나눠주고 나눠먹고, 불량식품(?)을 먹으면서도 이렇게 행복한 아이들이다. 아빠에게 밀린 엄마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우리집 제일 큰 언니가 사온 에이스 비스켓에 봉지커피를 끓여 놓은 엄마도 잠시 행복하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거대하지 않아도 된다. 행복은 그저 작은 마트에서 간식을 사먹는 사소함 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군내 버스가 안다녀도 집 바로 앞에 편의점이 없어도 괜찮다.
우리에겐 함께 할수 있는 가족이 있으니 정말 괜찮다. 나른하고 심심한 주말 오후를 풍성하게 하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배부르게 먹고 난 아이들은 엄마를 위로한다.
“엄마, 오늘 저녁은 땡이에요. 푹 쉬세요.”
“그깟 컵라면으로 저녁이 되겠어? 나중에 배고프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 8시를 넘기면서 아이들은 또 졸라대기 시작한다.
“배고파요. 엄마. 먹을 거 없어요?”
그러면 그렇지.
“족발 시켜먹자.”
늦저녁 엄마와 아빠는 주문해 놓은 족발을 가지러 읍으로 달려야 한다.
전성옥
1971년 전북 고창 출생. 현재는 전남 영광에서 9명의 자녀를 양육하는 '아동청소년 그룹홈' 가정의 엄마다. 여섯 살 연하 남편 김양근과 농사를 지으며 단란한 가정을 이끌고 있다. 김양근은 청소년기 부모를 잃고 세 여동생과 영광의 한 보육시설에서 성장했는데 그가 20대때 이 시설에 봉사자로 서울에서 자주 내려왔던 '회사원 누나' 전성옥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이들의 얘기는 2017년 KBS TV '인간극장'에 소개되기도 했다.
전성옥 부부는 대학생 아들 태찬(19), 고교 2년생 딸 태희(17) 등 1남 1녀를 두었다. 이 자녀들이 어렸을 때 부부는 서울에서 낙향을 결심했다. 전성옥은 "어려운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주고 싶다"는 남편을 뜻에 동의해 영광에 내려와 그룹홈을 열었다. 이때 셋째 김태호(11)를 입양했다.
그 후 여섯 명의 딸 김초록(가명 · 19 · 대학생) 한가은(가명 · 이하 가명 · 18 · 특수학교 학생) 김현지(14 · 중학교 2년) 오소영(13 · 중학교 1년) 유민지(12 · 초교 6년) 장해지(9 · 초교 3년) 등과 함께 '다둥이 가정'을 꾸렸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전성옥은 귀농 후에도 문학반 수업을 들을 만큼 문학적 자질이 뛰어나다. 아이들과 함께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가장 즐겁게 생각한다. '사랑한다는 걸 잊지마'는 혈연 중심의 가족구성원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는 연재 칼럼이다.
전성옥(수필가) jsok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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