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 다신 안가" 가이드에 욕설 들은 노인, 中SNS 난리 [영상]

최승표 2023. 10. 12.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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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3일 중국 SNS에 한국에 관광 온 중국인 단체가 쇼핑 강매 문제로 가이드와 실랑이하는 고발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에 삽입된 자막은 '중국 노인 막 대하는 한국 가이드'라는 뜻이다. 사진 더우인(틱톡) 영상 캡처

" 부산 여행 중에 인삼 매장에서 가이드가 부추겨 일행 13명이 모두 3만7000대만달러(약 154만원)어치나 인삼을 샀습니다. 이어 방문한 간장 약(헛개나무 건강식품) 판매점에서는 실랑이를 벌이다가 가이드가 제시한 목표치인 15병(약 112만원)을 샀습니다. 일행이 나가지 못하게 직원이 문을 막고 있기도 했습니다. "
" 여행 계약서에 쇼핑 의무가 없다고 명확히 쓰여 있는데, 가이드에게 쇼핑을 강요당했습니다. 가이드가 쇼핑 할당량을 채워야 한다며 협박했습니다. 일흔 살 노인에게 험한 욕을 하다니, 다시는 한국에 안 갈 겁니다. "
처음 인용한 사례는 8월 20일 대만의 주요 방송사 TVBS가 부산을 다녀온 대만 여행객의 제보를 받아 보도한 내용이다. 다음 사례는 한국을 다녀간 중국인이 직접 촬영한 영상을 9월 13일 중국 SNS ‘더우인(‘틱톡’의 중국 국내용 버전. 해외에선 볼 수 없음)’에 올린 내용으로, 중앙일보가 단독 입수했다. 한류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한국 관광의 이미지도 상승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저가 덤핑 관광’의 부끄러운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대만의 주요 방송사 TVBS는 지난 8월 부산을 찾은 관광객 13명이 인삼과 헛개나무 판매점에서 가이드로부터 쇼핑 강매를 당한 사례를 보도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한국, 영원히 안녕이다”


중국 SNS 더우인 영상을 보면 가이드와 관광객이 쇼핑 문제로 갈등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중국 교포로 추정되는 한국 가이드가 “쇼핑을 하지 않을 거면 차에서 내리라”고 몰아세운다. 관광객이 “꼭 쇼핑을 해야 하느냐”고 묻자 가이드는 “쇼핑 투어를 왔으면 쇼핑을 하는 게 당연하다”며 다그친다. 실랑이가 이어지자 가이드는 한국어로 욕설을 내뱉기도 한다. 영상 말미 자신을 70세라 밝힌 중국인은 “한국 가이드 수준이 이렇게 떨어지는 줄 몰랐다”며 “영원히 안녕이다. 한국”이라고 말한다.

방한 외국인이 쇼핑 강매로 갈등을 빚는 건, 솔직히 이례적인 사건이 아니다. 왜 그럴까. 외국인 덤핑 관광이 진행되는 방식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외국인 단체 관광객은 항공료 정도의 비용만 지불하고 한국으로 패키지여행을 온다. 한국에 오면 서울·부산·제주 어디를 가든 무료 관광지 중심으로 주마간산식 여행을 하고, 쇼핑센터와 면세점을 수차례 방문한다. 여행사와 가이드는 면세점과 쇼핑센터가 고객 구매액에 따라 주는 수수료로 적자를 메운다. 여행 계약서에는 쇼핑 의무가 없다고 하지만, 가이드의 집요한 강요가 이어지는 이유다.

저가 덤핑 관광은 특히 중국 단체관광 사이에서 횡행한다. 국내 여행사 간 과열 경쟁이 가장 큰 원인이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적자를 보는 ‘마이너스 투어’ 정도가 아니라 중국 여행사에 여행객 1인당 웃돈을 주고 단체를 사오는 ‘인두세’까지 기승을 부렸다.


무료 관광지만 맴도는 유커


중국 단체관광은 8월 10일 재개됐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로 중국 정부가 ‘한한령(限韓令)’을 내린 지 6년 5개월 만이다. 국내 관광업계도 기대가 컸다. 유커(游客·중국인 관광객)가 쏟아져 들어올 것이란 보도가 잇달았고, 관광업계도 준비에 착수했다. 한국여행업협회(KATA)가 9월 7일 중국인 전담 한국 여행사와 함께 결의 대회를 열기도 했다. ‘인두세 지급, 과열된 덤핑 경쟁, 마이너스 투어비, 쇼핑 강매’를 탈피하자는 취지였다.
한국여행업협회(KATA)는 지난 9월 7일 회원 여행사와 함께 방한 중국 관광 건전화를 위한 결의대회를 열었다. 그만큼 방한 중국 관광시장이 문제가 많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진 KATA
그러나 현실 인식은 안일했다. KATA 오창희 회장은 “과거와 달리 쇼핑 수수료를 받아도 여행사가 적자를 메울 수 없을 만큼 관광 시장이 달라졌다”며 “과거 같은 악습이 많이 개선됐다”고 말했다. 여러 곳의 중국 전담 여행사를 확인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한국 상황이 중국 여행사의 터무니 없는 가격 요구를 받아줄 상황이 아니라고 답했다.
신재민 기자
그렇다면 SNS에 올라온 영상이 이례적인 것일까. 중국 충칭(重慶)의 중견 여행사 ‘충칭중국청년여행서비스’의 서울 4박5일 여행 상품을 보자. 항공료를 포함한 1인 경비가 2580위안(약 47만원)으로, 4박 모두 인천에 있는 비즈니스급 호텔에서 묵는다. 유료 관광지 방문은 경복궁(10인 이상 외국인 단체 어른 1명 2400원)뿐이고, 청계천·전쟁기념관·북촌한옥마을·월미도 같은 무료 관광지만 방문한다. 대신 면세점과 인삼·헛개나무 같은 쇼핑센터는 8번 이상 방문한다. 중국 최대 여행사 ‘시트립’의 일정표도 비슷하다.

관광통역안내사(가이드) C씨는 “중국 여행사가 이 가격에 상품을 판다는 건 이런 상품을 받아주는 한국 여행사가 많다는 뜻”이라며 “중국인 단체 관광은 이미 쇼핑으로 도배된 덤핑 상품이 판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은 나 몰라라… 홍보 이벤트만 열중하는 정부


문체부는 9월 ‘중국인의 K-관광을 전면 업그레이드하겠다’고 발표했다. 저가 관광 예방, 무자격 관광통역안내사 단속, 중국전담여행사 업무 실태 점검 같은 내용이 포함됐다. 그렇다면 현재 문체부는 덤핑 관광의 실태를 파악했을까. 문체부 박종택 관광정책국장은 “해당 영상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덤핑 관광에 대한 우려는 인식하고 있다”며 “불공정 관광을 상시 감시할 수 있는 신고센터 설립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방문의해 사업의 대표적인 이벤트는 방한 외래객을 대상으로 한 쇼핑 이벤트 ‘코리아 그랜드 세일’이다. 올해 1월 행사 당시 서울 명동 거리의 모습. 연합뉴스
그러나 정부의 관광정책이 홍보용 이벤트에 쏠렸다는 지적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9월 5일 문체부가 발표한 2024년 관광 분야 예산안을 보면, ‘2024 한국방문의해 사업’ 증액이 가장 눈에 띈다. 올해 100억원에서 2024년 177억5200만원으로, 관광 분야 예산 중 가장 큰 비율로 예산이 뛰었다. 한류 관광 활성화 예산도 30억원 늘렸다. 한국방문의해 핵심 사업이 ‘코리아 그랜드 세일’이다. 다시 말해 쇼핑 관광 활성화다. 외래 관광객 여행 상품에 쇼핑이 지나치게 많아 문제인 지금, 정부는 쇼핑 관광을 더 키우겠다는 입장이다.

관광 현장은 정부가 홍보용 이벤트에만 매달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단속에 나서길 주문한다. 관광통역안내사 C씨는 “중국인 덤핑 관광 단체는 자격증 없는 중국 교포가 안내를 맡고 한국인 관광통역안내사를 ‘시팅 가이드(Sitting Guide)’로 데리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며 “베트남 단체 관광도 베트남 불법 체류자를 가이드로 쓰는 경우가 흔하다”고 말했다.

시팅 가이드는 이름 그대로 ‘앉아 있는’ 유자격 가이드를 말한다. 관광진흥법에 따라 외국 단체 관광객은 반드시 자격증이 있는 관광통역안내사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이때 여행사가 쓰는 꼼수가 시팅 가이드다. 쇼핑 실적이 중요한 여행사는 쇼핑 유도 기술이 능한 현지인 가이드에 안내를 맡기고, 시팅 가이드를 단속 대비용으로 데리고만 다닌다. 드라이빙 가이드도 불법이 많다. 최근 구인·구직 사이트에 외국인 개별여행객을 상대하는 ‘드라이빙 가이드’ 채용 공고가 속속 올라오는데, 개인 차량으로 가이드가 운전까지 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 행위다.

한양대 이훈 관광학부 교수는 “큰 사고가 터지기 전에 중국 관광 시장의 문제를 정부가 정확히 파악하고 데이터도 확보해야 한다”며 “중국 소비자가 양질의 상품을 선택하도록 기준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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