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독·미 "北비핵화 의심"…文정부, 이 내용 빼고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 당시 통일부 장ㆍ차관이 해외 출장 결과를 국민에 알리며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대한 각국의 의구심 표출 등 정부의 대북 정책과 방향이 다른 내용은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북 관계 개선에 함몰돼 국내 여론을 사실상 호도하려 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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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김정은 진정성에 의문"
11일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실이 통일부로부터 제출받은 '장·차관 해외 출장 내역 및 보고서'에 따르면 문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은 4차례, 차관은 6차례에 걸쳐 미국, 독일, 일본 등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그런데 통일부가 보도자료, 기자회견, 국회 보고 등을 통해 공개한 내용과 달리 내부용 출장 보고서에는 이들이 만난 각국 인사들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 및 문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사실상 의문을 제기한 대목이 다수 포함됐다.
일례로 2018년 10월 천해성 당시 차관이 독일을 방문한 뒤 작성한 출장 결과 보고서에는 "독일 측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의도와 진정성에 의문을 표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같은 해 3월 문재인 정부 대북 특사단은 평양에서 김정은을 만나고 돌아온 뒤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및 북ㆍ미 정상회담이 열린 뒤였는데도 독일 측은 여전히 의구심을 표한 것이다.
"미국, 비핵화 의지 의구심"
다음 달인 2018년 11월 조명균 당시 통일부 장관은 미국을 찾았고,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 국무장관 등을 면담했다. 이후 작성한 출장 보고서에는 "미국 현지에는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 등에 대한 우려도 존재하는 상황"이라며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가 없고, 북ㆍ미 고위급 대화도 지연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미국 측은 남북 협력의 필요성은 인정하나, 북한 비핵화 진전 속도와 긴밀하게 조율하면서 추진될 필요가 있다"며 미국이 사실상 남북 관계의 ‘과속’을 경계한 사실을 확인했다.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까지 대북 제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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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불평등 우려 표명도
2019년 10월 서호 당시 통일부 차관의 독일 출장 보고서에는 "독일 측은 북한의 인권 유린과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현재 시행 중인 대북 제재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언급했다"고 돼 있다. 또한 "독일 측은 스포츠 분야 외 남북 합의 이행이 잘 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질의했다"고도 돼있다.
문 정부는 2018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이후 대북 제재 완화를 대놓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10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프랑스를 방문해 직접 “제재 완화를 통한 비핵화 촉진”을 주장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제재 유지 입장을 고수했다. 프랑스뿐 아니라 독일 역시 사실상 같은 입장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문 정부는 이후에도 제재 관련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北 엄포 그대로 전달
통일부는 북한의 전형적인 벼랑 끝 전술인 "연말 시한" 설정을 근거로 오히려 미국의 대북 관여를 설득하려 하기도 했다. 2019년 11월 김연철 당시 장관은 미국을 찾아 "북한이 연말 협상 시한을 정해 놓은 현 시점에서 북한 체제 특성을 감안할 때 (연말) 시한까지 진전이 없을 경우 북한 신년사 등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북ㆍ미 협상의 조속한 재개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김정은은 같은 해 2월 하노이 북ㆍ미 정상회담이 '노 딜'로 끝난 뒤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라고 말했는데, 데드라인을 그어놓고 협상의 우위를 점하려는 북한의 협박술을 미국 측에 그대로 전달한 셈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에 미국 측은 "미국 정부와 의회는 북한이 제기한 연말 시한에 구애 받지 않겠다는 입장"이라며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대해 의구심도 확산된다"며 김 전 장관의 의견을 사실상 반박했다.
막판엔 종전선언 세일즈
2021년 9~10월 출장에선 이인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벨기에·스웨덴·독일 등 유럽 국가를 돌며 '종전선언' 설득전에 나섰다. 다만 출장 보고서에 담긴 상대국 반응은 "유럽연합(EU) 측이 종전선언에 관심을 표했다"는 대목 뿐이었다. 유럽의 ‘지지’를 얻지는 못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막판에 추진했던 종전선언은 한반도 현실과 동떨어진 채 한ㆍ미 동맹의 틈새만 벌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 정부는 종전선언과 관련해 "미국과 빈틈 없는 공조가 이뤄지고 있고 문안도 합의했다"고 했지만 미국 측은 "대북 외교에 전념한다"며 거리를 뒀다.
이와 관련, 태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당시 국제사회도 의문시하는 북한 비핵화 의지를 주장하며 국민을 오도했다"며 "이는 대북 정책에 있어 중대한 실책이며, 한국의 외교적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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