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전쟁의 시대가 돌아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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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태어난 나는 전쟁을 직접 겪어본 적이 없다.
해묵은 갈등을 고려할 때 이 전쟁이 얼마나 길어질지, 또 얼마나 끔찍할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서 전쟁이 동시에 전개되는 데 대해 일각에선 미국의 영향력 약화를 이유로 꼽는다.
고도성장이 끝나고 각 국가와 집단이 각자도생의 길을 걷기 시작한 지금, 겪어보지 못한 '전쟁의 시대'가 돌아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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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태어난 나는 전쟁을 직접 겪어본 적이 없다. 가장 처음 목격한 전쟁은 이라크가 탱크를 앞세워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이었는데, 고교생 때 TV 화면을 통해서였다. 피부로 느껴지는 전쟁은 지금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전쟁이 불러온 물가 상승이 실생활에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외신을 통해 전쟁을 접하고 있지만 그 참상을 안다고 할 수 없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됐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대원들은 국경의 장벽을 넘어 이스라엘 땅에 침투했다. 이들은 축제장 등지에서 민간인을 마구 학살하고 인질로 끌고 갔다. 9·11 테러에 버금가는 충격에 빠진 이스라엘은 보복에 나섰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여러 세대에 영향을 미칠 복수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해묵은 갈등을 고려할 때 이 전쟁이 얼마나 길어질지, 또 얼마나 끔찍할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지구상에서 두 개의 큰 전쟁이 동시에 펼쳐지는 광경은 낯설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전쟁에 덜 익숙해서일 것이다. 20세기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전쟁은 생경하지 않은 일이었다. 한반도만 하더라도 러일전쟁, 태평양전쟁, 한국전쟁 등 숱한 전쟁을 겪었다. 이후 꽤 오랜 기간 평화의 시간이 찾아왔다. 인간의 폭력성이 어떻게 감소했는지를 다룬 책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쓴 캐나다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설명처럼 우리는 20세기 후반과 이번 세기 첫 20년간 역사상 가장 평화롭게 살았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서 전쟁이 동시에 전개되는 데 대해 일각에선 미국의 영향력 약화를 이유로 꼽는다. 미국이 지배적인 강대국 지위를 점차 포기하면서 힘의 공백이 생겼고 러시아와 하마스 같은 세력이 모험을 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대만을 통일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임기 때부터 시작된 미국의 고립주의로 세계가 다극화하는 가운데 갈등이 전쟁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타당한 견해지만 더 근원적인 배경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계에 이른 성장’이다. 평화로웠던 20세기 후반은 세계가 고도성장한 시기였다. 농업기술 혁신에 따른 식량의 대량 생산은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를 가능하게 했다. 유례없이 폭증한 인구를 기반으로 시장경제와 세계화가 작동하면서 생산과 소비가 크게 늘었다. 잉여 물자와 일자리가 충분히 공급되면서 갈등이 분쟁이나 전쟁으로 번지는 일도 줄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선진국에서부터 인구가 감소하고 새로운 성장을 일으킬 혁신을 찾아보기 어렵다. 생산과 소비가 줄어 성장률이 낮아지니 일자리가 줄어든다. 각 나라와 집단은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된다. 여러 나라에서 포퓰리즘 색채가 강한 극우가 득세하는 것도 이런 맥락 안에 있다. 트럼프의 고립주의, 바이든의 미국 우선주의는 ‘저성장’으로 추세가 반전한 상황에서 성장의 남은 단물을 미국이 독식하겠다는 뜻이다.
나누어 가질 자원이 부족해지면 갈등이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수면 아래에 있던 갈등이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커진다. 한계에 이른 성장은 전쟁의 필요조건을 만들고 있다. 여기에 기후변화가 또 다른 필요조건으로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이상기후가 일으키는 홍수와 가뭄은 가난한 나라를 더욱 가난하게 만든다.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되지 않은 비참함은 어떤 집단의 가슴에 전쟁의 씨앗이 될 분노를 심어줄 것이다.
고도성장이 끝나고 각 국가와 집단이 각자도생의 길을 걷기 시작한 지금, 겪어보지 못한 ‘전쟁의 시대’가 돌아올지 모른다.
권기석 국제부장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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