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퍼스펙티브] AI 천하삼분지계…일본·동남아·아랍과 연대해야
지구촌 인공지능 대전, 한국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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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구글, 중국 바이두가 각각 미주·유럽, 중국 시장 지배
초거대 AI 파급력 막대, 한번 예속되면 헤어나기 어려워
한국에도 큰 기회…기술력 있으나 자본력·시장에선 한계
반도체·자동차·조선처럼 국가 전략산업으로 키워나가야
」
윤석열 대통령 ‘디지털 권리장전’
뉴욕대 총장 등 많은 연사가 대통령의 발표에 크게 공감을 표했다. 하지만 필자는 마음 한구석에 찜찜함이 남아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이상과 사상이 있어도 그것을 실현할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역사가 말해 주고 있다. 영국 권리장전이나 프랑스 혁명도 모두 힘이 받쳐주어 가능했다. 그 당시 자유와 평등은 힘 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었지, 일반 평민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윤 대통령이 발표한 디지털 기본권도 모든 사람에게 공평히 적용된다는 보장이 없다. 과거 힘 있는 사람에게 선별적으로 자유와 평등이 주어졌듯 미래 디지털 기본권도 마찬가지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어떻게 해야 10년, 20년 후에 디지털 자유를 향유하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디지털 시대의 특징 중 하나는 2등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2등은 설 자리가 없다. 구글은 아메리카와 유럽의 디지털 시장을 지배하고 있고, 바이두(百度)는 SNS 메신저 웨이신(微信)과 함께 중국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현재 디지털 세계는 미국의 구글과 중국의 바이두가 양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디지털 검색 시스템인 이들은 전자상거래 등 많은 분야를 지배하고 있다.
세계 3대 디지털 강국의 이점
이러한 와중에 예외가 있다. 러시아는 자국 검색 시스템 얀덱스(Yandex)를, 한국은 네이버를 주로 이용한다. 네이버는 라인(Line)을 앞세워 일본·동남아 SNS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일본 최대 포털사이트 야후재팬이 검색엔진은 구글, SNS 서비스는 라인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얀덱스는 자국에서만 사용되고 있지만, 네이버는 동남아까지 진출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은 미·중과 함께 자국을 넘어 외국 시장을 보유한 세계 3대 디지털 강국임을 알 수 있다.
챗GPT의 출현으로 많은 디지털 기업이 초거대 AI 언어모델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세계는 다시 AI에 의해 재편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구글이나 네이버 등 기존 검색 시장도 AI 시장에 흡수될 것이다. AI는 거의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이다. AI가 창작·작곡·미술·진단·법률 서비스에 진출한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모든 경제·문화 활동의 인프라가 될 초거대 AI는 국가의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만약 한국이 외국 AI를 사용하면 경제력은 물론 문화와 국방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 처음에는 외국 AI를 값싸게 이용할 수 있겠지만, 독점 체제가 완성되면 엄청난 이용료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한번 예속되면 영원히 헤어나기 어려운 상태가 될 수 있다.
10~20년 후 AI, 양강 체제 우려
지금 세계 디지털 시장은 급변하고 있다. 여러 나라에서 많은 AI 전문 기업이 초거대 AI 제품을 개발·발표하고 있다. 마치 인터넷 검색 엔진이 처음 나오던 30년 전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우후죽순 제품이 나오다가 점차 정리되어 독점 체제가 구축된다. 다른 제품과 달리 AI는 국가의 거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제품이다 보니, 각 국가와 기업은 사활을 걸고 경쟁하고 있다. 한번 경쟁에서 탈락하면 재기하기 어려운 특성 때문에 더욱 절박한 상황이다.
현재의 판세를 보면 10~20년 후 세계 AI 시장은 현재의 디지털 검색 시장처럼 양강 체제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은 확실히 미국권이 될 것이고, 중국 시장은 중국 회사가 지배할 것이다. 왜냐면 AI 회사가 현재의 검색엔진 시장을 그대로 이어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들 시장은 이미 검색엔진을 통해서 문화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소속이 불확실한 시장이 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동남아와 아랍권이다. 필자는 이 지점에 한국 AI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일본과 동남아의 디지털 시장은 네이버를 통해 한국 영향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일본·동남아와 AI 제3천하 구축
필자는 여기에서 미래 AI 세상을 셋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래 AI 세상에서 분명히 한국의 활동 공간이 존재한다. 우리가 즐겨 읽은 『삼국지』에는 조조·손권이 양분한 세상에서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에 따라 유비의 촉나라가 세워진다. AI도 천하삼분지계가 가능하다.
이미 한국 디지털 영향권에 있는 일본·동남아를 엮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들 나라도 지금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독자적으로 미·중에 대적할 수는 없으니 난감한 상태일 것이다. 이때 한국이 손을 내밀어 연대하는 것이다.
초거대 AI를 보유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첫째, 기술력이 있어야 한다. 한국은 세계 선두 AI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점에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둘째, 자본이 있어야 한다. AI 시스템을 구동시키는 그래픽 처리 장치(GPU)와 저장장치를 구축할 자본이 있어야 한다. 또 이러한 시스템을 운영할 전기료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기업들은 자본력에서 아슬아슬한 상태로 보인다. 셋째 조건으로는 기업을 지탱해줄 시장이 있어야 한다. 필자는 최소 5억 명 고객을 확보해야 미·중 기업들과 경쟁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한국 기업은 이 점에서 동남아 시장이라는 약간의 이점을 가지고 있다.
미·중 패권에 맞설 우리의 대응
이상의 분석을 보면 한국은 기술력을 제외한 나머지 두 가지 조건에서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중 외에는 충분한 자격을 갖춘 나라가 없어 보인다. 유럽 국가들은 이미 구글 영향권에 들어 있어 디지털 자립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본도 구글과 한국의 영향권에 있어 독자 개발보다 외국과의 연대가 더 효과적이라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
바로 여기에 한국의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일본과 동남아 국가들과 연대하여, 새로운 AI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절대 한국이 독식하겠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일본·베트남·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을 존중하며 공동 개발, 공동 서비스를 해야 한다. 이들 나라에 한국은 패권을 추구하는 나라가 아니라 친구가 될 수 있는 나라이다. 미·중 패권 앞에 한국의 제안은 반가운 일일 것이다. 여기에 미국에 경계심을 가진 아랍권이 참여한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AI 연대는 대강 다음과 같이 하면 될 것 같다. 누구나 참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오픈 AI 모델을 기본으로 사용한다. 여기에 나라별로 전문 분야를 분담하여 해당 분야 지식을 학습시키고 관리한다. 분산 AI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은 종합적인 지식을 담당하고, 일본은 의료 지식, 베트남은 역사 분야, 인도네시아는 문화 분야 등으로 분담할 수 있다. 계산과 저장을 위한 GPU와 메모리도 각국에 분산 설치한다.
‘AI 독립’ 향한 외교 지원 필수
AI 독립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비용이 더 들고 불편한 점도 있을 것이다. 우선 편리하기로는 다른 나라의 AI를 사용하면 된다. 그러나 그 길이 바로 예속의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그 길로 갈 수 없다. 이것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 AI를 국가 기간산업으로 지정하고 지원해야 한다. “잘 해봐라, 도와줄 테니” 이런 태도 가지고는 안 된다. 과거 40년 전에 조선·자동차 산업을 키우던 수준, 그리고 현재 반도체 수준으로 행정 재정 지원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과 연대할 수 있게 외교적 지원도 필요하다. AI는 어쩌면 반도체보다 더 중요한 산업이다. 기술·경제는 물론 문화·국방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디지털 권리장전도 AI가 타국에 예속되면 온전히 지켜질 수 없다. “힘이 있어야 자유를 지킬 수 있다”는 윤 대통령의 국방 강조 발언은 여기에도 적용된다.
이광형 KAIST 총장·리셋 코리아 4차산업혁명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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