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취향을 가진 7인이 추천한 가을 작품들

전혜진 2023. 10. 1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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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가을은 쓸쓸함을, 지독한 고독을, 어쩌면 풍요와 환희를 선사하는 계절이겠지요. 지금, 특별한 취향을 가진 7인이 추천한 작품들이 펼쳐집니다.
「 WHITE PILLOW 」
Kang Dong Ho, 2021

이 그림은 사무실 내 자리 옆에 걸려 있었다. 작가는 인터넷을 떠도는 주인 없는 사진을 수집해 자르고 삭제하는 편집을 거친 후, 캔버스에 아크릴로 구현한다. 정교하게 설계된 스케치 위에 물감을 수없이 칠하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쌓인 텍스처의 시간들은, 잊고 지낸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득하다. 작가가 이 사물을 처음 봤을 때 느꼈을 무수하고 어둑한 감정이 한눈에 들어왔다. 계절이 지나도록 오래 바라보고 싶다.

by 김수현휘슬갤러리 서울 부디렉터이자 큐레이터. 작가들과 전시를 만들고 작품으로 소통한다.

「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
Lee Sung Bok, 2008

프롤레타리아 시인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의 미모에 반해 그의 시를 읽고, 다다이스트처럼 시를 지으며 한껏 시에 취해 있던 나는, 어느덧 시를 잊고 살았다. 냉소적인 계절이 다시 찾아온 요즘, 다시 시를 꺼낸다. 돌처럼 잠을 깬다. 곳곳에 이성복 시인이 적어둔 생의 추레함과 슬픔, 고통까지 함께 일깨운다. 작업 중 이미지 생성 AI 미드저니에 적절한 키워드를 넣다가 문득 옛 단어들이 그리워지고 그래서 다시 시를 읽겠다고 생각하다니. 아이러니하게도 시대는 연결된다.

「 인제 자작나무 숲 」
Goldberg, 2023

어릴 때부터 11월을 좋아했다. 이 시기만의 ‘으실으실’한 날씨가 좋아서. 어른이 된 지금도 머릿속에 찬 공기가 도는 느낌이면, 어김없이 강원도 인제의 자작나무 숲을 생각한다. 11월의 숲은 그림처럼 바라만 봐도 충분하다.

「 TAXI 」
Saul Leiter, 1957

사울 레이터의 사진들은 지나치게 낭만적이다. 최근 OTT 시리즈 작업을 하며 그의 사진집을 다시 뒤적여 본다. 수많은 이미지의 폭격 속에서, 전시장에서 마주하는 그의 사진들은 내가 몰랐던 지난 이야기를 옆에서 재잘재잘 들려주는 듯하다. 아직도 야행성인 나는 밤이 유독 길어지는 가을이 되면 순간의 이미지들을 붙들고 밤새 좋아 어쩔 줄 몰라 한다.

by 조상경 영화의상 감독. 〈올드보이〉〈아가씨〉〈밀정〉〈신과 함께〉 등 영화는 물론, 최근 〈환혼〉 〈오징어 게임〉 등 다수의 시리즈에서 의상을 디렉팅했다.

「 가을이 오면 」
Lee Moon Sae, 1987

이문세의 노래를 좋아한다. 그중 특히 4집. 제목에서부터 두말할 것 없이, 가을 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려지는 곡이다. 구구절절 설명 대신 가사 한 줄로 곡에 대한 추억과 애정을 표현해 본다. ‘길을 걸으면 불러보던 그 옛 노래는 아직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하네.’

「 AUTUMN LEAVES 」
Bill Evans Trio, 1987

재즈 스탠더드로 통하는 ‘Autumn Leaves’에는 수많은 버전이 있지만,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번스 트리오의 버전이 가장 좋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늘어지는 리듬에 생기를 불어넣고, 가을 빛깔 중 가장 빛나는 순간들을 꾹꾹 눌러 담았달까.

「 CELLO SONATA IN G MINOR, OP. 19 」
Sergei Rachmaninoff,1901

나는 피아노를 전공했다. 미국에서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공부하다, 어깨 부상으로 전공을 음악행정으로 바꿔 공연업에 뛰어들었다. 진짜 연주하고 싶은 악기는 첼로였다. 늘 가슴 뛰게 하는 거장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첼로 곡을, 마침 아르카디 볼로도스가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했다. 내가 직접 연주할 수도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후 더 사랑하게 된 곡. 이번 가을, 마침 라흐마니노프 곡으로 반 클라이번 우승을 거머쥔 선우예권이 새 음반에 3악장을 수록했다. 운명적이다.

by 박현진 클래식, 재즈, 팝음악 공연기획사 마스트미디어의 클래식사업부 이사.

「 CINEMA 」
Renaud Capuçon, 2018

가을이 오면 유독 비올라 음반만 찾아 듣는다. 르노 카푸숑의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 바이올린 음역대에서 비올라 음색이 들려 새로웠던 기억이 또렷하다.〈Cinema〉 음반의 첫 곡 ‘Cinema Paradiso’는 그 기억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시네마 천국〉 〈미션〉 〈아웃 오브 아프리카〉 〈쉰들러 리스트〉 〈바그다드 카페〉 등 고전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향수에 함께 젖게 될 것.

「 슬픈 카페의 노래 」
Carson McCullers, 2005

내 그림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지만,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담은 그림과 글을 좋아한다. 카슨 매컬러스의 책은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칠 법한 풍경과 사람, 관계를 섬세하게 그렸다. ‘이상하고 기인한 사람도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의 불을 지를 수 있다. 선한 사람이 폭력적이면서도 천한 사랑을 자극할 수 있고, 의미 없는 말만 지껄이는 미치광이도 누군가의 영혼 속에 부드럽고 순수한 목가를 깨울지도 모른다.’ 옮긴이의 표현처럼, 책으로 우리는 우리 삶의 비가와 연가, 송가를 느낄 수 있다.

「 CINEMA PARADISO 」
Giuseppe Tornatore, 1988

그리움이 짙어지는 계절. 삶의 어려움 앞에서 좋은 어른이 그리울 때, 유독 아버지가 그리울 때 보는 영화. 영사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 주인공 토토는 마치 작업실 그림 앞에 서서 언제 끝날지도 모를 시간을 반복하는 내 삶을 대변하는 것 같다.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일을 사랑하렴. 네가 어릴 때 영사실을 사랑했듯이.” 마을을 떠나는 청년 토토에게 알프레도 할아버지가 한 조언도 내게 말하는 것 같다.

by 한진자신에게 찾아온 기억 속 풍경들을 오래도록 바라보면서 반복적으로 그려내는 회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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