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전초전' 강서구청장 보선, 민주당 진교훈 크게 이겼다
10ㆍ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했다. 12일 오전 0시 10분 현재 75.48% 개표가 진행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진교훈 민주당 후보가 58.9%를 득표해 37.2%에 그친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를 누르고 당선이 확실시된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당시 2.61%포인트 차로 승리하며 12년 만에 민주당으로부터 강서구청장을 되찾아왔던 국민의힘은 이번 선거에선 두 자릿수 득표율 차이로 참패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명분, 인물, 전술 등 모든 면에서 여권이 완패한 선거”라고 입을 모았다.
이번 선거 투표율은 48.7%로 집계됐다. 앞서 사전투표율은 22.64%를 기록, 역대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를 통틀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보궐선거로선 이례적으로 높은 사전 투표율을 기록하면서 최종 투표율이 50%를 넘을 거란 전망도 있었으나, 본 투표율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오면서 이를 넘지 못했다. 다만 평일에 치러진 기초단체장 보궐선거라는 점에서 높은 투표율이라는 평가다. 본 투표가 공휴일로 지정된 지난해 6·1 지방선거 강서구청장 선거 투표율은 51.7%였다.
압승을 예상한 듯 이재명 대표를 제외한 대부분의 민주당 지도부는 투표 종료 전부터 일제히 진 후보 선거 사무실을 찾아 축제 분위를 방불케 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철규 사무총장이 잠시 김 후보 사무실을 방문한 것을 제외하곤 주요 당직자 대부분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당선이 확실시되자 진 후보는 당선 소감을 통해 “강서구민 여러분께서 새로운 강서의 미래와 발전을 위해 저를 선택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낮은 자세로 구민들을 섬기는 구청장이 되겠다”고 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 위대한 승리이자 국정 실패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라며 “민주당의 승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의 각성과 민생 회복을 명하는 국민의 매서운 회초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로지 국리민복만을 위해 경쟁하는, 진정한 의미의 정치가 복원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국민께서 기대 속에 내일을 준비하실 수 있도록 희망의 불씨를 키워가겠다”며 “두려운 마음으로, 위대한 국민과 강서구민 여러분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바친다”고 덧붙였다.
김 후보도 입장 발표를 통해“강서구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더욱 겸손하게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강서구민 여러분의 엄중한 선택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더 고개를 숙이고 더 겸손한 자세로 국민 여러분께 먼저 다가가는 국민의힘이 되겠다”며 “국민의힘에 보낸 따끔한 질책을 무겁게 받아들여 개혁 과제를 신속히 이행하고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했다.
이번 선거는 내년 총선을 6개월 앞둔 시점, 그것도 총선 승부를 좌우할 서울 지역에서 열렸다는 점에서 '총선 전초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여야가 당력을 총동원하며 맞붙었지만 최종 결과는 민주당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게다가 민주당은 최근 이 대표가 구속 심사를 받는 등 전반적으로 위기 국면이었다. 강서구가 민주당 텃밭이었다는 점을 재확인한 이번 선거 결과를 바탕으로 민주당은 내년 총선 때까지 정국 주도권을 쥐고 대여 강경 기조를 이어갈 공산이 크다. 반면 국민의힘은 지도부 책임론이 불거지며 총선 정국을 누가 이끌지를 두고 자중지란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 기조 변화를 요구하는 여권 내 목소리도 한층 커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승패를 가른 주요 요인으로는 우선 국민의힘의 '김태우 재공천'이 꼽힌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선거 특징은 민주당이 특별히 잘한 점이 보이지 않은데도 야당이 압승을 거뒀다는 것”이라며 “보궐선거의 책임이 있는 사람이 재출마했다는 점이 유권자 판단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보궐선거는 지난 5월 김 후보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대법원의 유죄 확정판결을 받아 구청장직을 상실하며 열리게 됐다.
특히 김 후보가 지난 8월 광복절 특사를 통해 피선거권을 회복하면서 야당이 주장한 ‘정권 심판론’이 한층 공고해지는 효과가 나타났다는 지적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가 김 후보의 재출마 길을 터줬다는 것이다. 이에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의 무도한 폭주와 퇴행을 경고해 달라”(이재명 대표)며 선거전 내내 ‘정권 심판론’을 집요하게 강조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강서 개발론’을 내세우며 정권 심판론을 불식시키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 과정에서 법원의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 기각은 여당에 악재가 됐다. 장기화된 '이재명 사법리스크'로 느슨했던 민주당 지지층이 강하게 결집하는 반전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구속을 전제로 ‘야당 심판론’을 제기했던 국민의힘은 부랴부랴 선거전 중반 ‘힘 있는 여당 후보’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선거 전략을 수정해야 했다. 배철호 리얼미터 수석전문위원은 “이 대표의 구속 및 이로 인한 파급효과 등 불확실한 외생변수에 의존한 것이 여권의 큰 패착”이라고 꼬집었다.
선거 과정에서 김 후보가 보궐선거 비용 40억원에 대해 “애교로 봐달라”고 하거나, “재개발 시 이해충돌 방지를 위해 앞으로도 강서구에 집을 보유하지 않겠다”라는 등 당 지도부와 조율되지 않은 돌발 메시지도 악영향이 적지 않았다. 기초단체장 보궐선거인데도 불구하고 김기현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상주하듯 연일 지원 유세에 나섰고, 전국의 당협위원장 및 시ㆍ도의원까지 총출동하는 등 여당 스스로 선거판을 키운 바람에 패배로 인한 후폭풍이 커졌다는 지적도 있다.
김기정·김준영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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