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선 시간이 남긴 보물… 유산 따라 과거로 ‘시간여행’

남호철 2023. 10. 11.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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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화도시’ 충남 논산시 강경읍
금강에 맞닿아 있는 충남 논산시 옛 강경포구 일대가 아침노을에 붉게 물들어 있다. 가운데 봉긋 솟은 옥녀봉 앞에 강경산소금문학관이 조성돼 있고, 그 오른쪽에 강경갑문이 자리하고 있다.


충남 논산시 강경은 금강 하류에 발달한 하항도시(河港都市)로, 내륙교통이 발달하기 전 물자가 유통되는 요충지였다. 서해를 향해 흐르는 금강과 닿아 있어 수운 교통이 큰 역할을 했다. 어선과 상선의 내왕이 그치지 않아 평양·대구와 함께 조선의 3대 시장에 꼽히며 엄청난 영화를 누렸다.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졌던 영광은 경부선 축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 발전과 철도·도로 교통의 발달로 인해 빛을 잃어갔다. 하지만 풍요로웠던 과거를 증명하는 유산은 여전히 강경을 지키고 있다.

강경에서 한 곳만 가야 한다면 옥녀봉이 꼽힌다. 해발 44m로 높지 않지만 아름다운 조망이 펼쳐지고, 강경의 성쇠가 압축돼 있다. 금강의 물줄기에서, 옥녀봉 주변 곳곳에 남겨진 시대의 흔적에서 강경의 역사와 문화, 산업과 종교사를 볼 수 있다.

옥녀봉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다. 봉수대 옆에는 300년 가까이 된 느티나무가 나란히 서 있다. 이곳에서 금강을 내려다보는 전망이 빼어나다. 특히 강 건너 서쪽 부여로 지는 저녁노을이 장관이어서 ‘낙조 맛집’으로 유명하다. 옥녀봉은 매년 새해 해맞이 행사가 열리는 일출 명소이기도 하다.

옥녀봉 기슭에는 강경이 고향인 박범신 작가의 작품 ‘소금’에 나오는 집과 한국침례회 최초의 예배당 건물이자 한국침례회가 태동한 지병석 집사의 초가집이 있다. 예배당은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지어진 ㄱ자형 교회다. 인근엔 ‘구 조선식산은행 강경지점 관사(옥녀봉 예술촌)’도 있다. 예배당과 예술촌은 현재 공사 중이다.

박범신 작가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소금문학관 내부.


정상에서 금강 쪽으로 내려서면 강경북옥공원에 2021년 12월 27일 개관한 강경산소금문학관이 자리한다. 이곳은 박범신 작가가 2011년 내려온 뒤 쓴 장편 소설 ‘소금’의 모티브가 된 곳이다. 연면적 933m²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지어져 박 작가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지하 1층은 강경의 역사·문화 전시공간, 지상 1층은 박범신 작가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됐다. 지상 2층에는 논산 지역 작가를 위한 전시공간과 체험 공방 등이 갖춰졌다.

강경 한복판까지 배가 드나들 수 있게 해 준 강경갑문.


인근 금강과 강경천이 만나는 곳엔 일제강점기 때인 1924년에 만들어진 갑문(閘門)이 있다. 강경갑문은 3중문 구조로, 제1문과 제2문은 같은 기단부에 인접해 설치됐고, 제3문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잡았다. 당시 갑문은 강경과 인천에만 있었다.

갑문을 통해 강경읍내 한복판까지 해산물을 실은 배가 들어왔다. 주변으로 젓갈시장이 형성됐다. 1990년 금강하굿둑이 생기고 물길이 막히면서 배가 들어오지 못하게 됐고 갑문은 기능을 상실했다.

강경읍내에는 타임머신 여행지라고 부를 만큼 근대 건물이 많다. 강경이 번창하던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대거 몰려오면서 근대화된 상점들이 많이 생겨났고 은행까지 개설됐다. 1911년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와 함께 수탈의 첨병 역할을 하던 조선식산은행 강경지점이 생겼다. 군산·함흥·원산 등의 개항장보다도 10여 년 이른 시기이다.

강경역사관으로 꾸며진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


1905년 한호농공은행으로 시작해 일제강점기에 조선식산은행으로, 광복 후 한일은행으로, 다시 충청은행으로 바뀌었다.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은 1913년에 건축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의 쇠락과 함께 개인 젓갈창고로 전락한 은행 건물을 논산시가 매입해 강경역사관으로 꾸몄다.

그 뒤편에는 개화기 시대 모습을 한 ‘강경구락부’가 조성됐다.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시간을 100년 전쯤으로 되돌려 놓는다. 현재 커피숍과 호텔, 식당 등이 영업 중이다.

가까운 곳에 구 강경노동조합(강경역사문화연구소)이 자리한다. 1925년 건축된 일본 목조건축 양식 건물로 건축 당시 2층 건물이었으나 현재 1층만 남아 있다.

이어 ‘강경 구(舊) 연수당 건재한약방’으로 간다. 1923년에 세워진 ‘남일당한약방’은 한옥 상가 구조로 이뤄져 있다. 1층에는 상업시설을, 2층에는 주택시설을 두었다. 경성 이외 지역에 한약방 중 가장 큰 곳으로 꼽혔다. 한약방 인근에 1924년 최초로 신사참배를 거부한 강경성결교회도 있다. 이밖에 강경공립상업학교(현 강경상업고등학교) 관사, 강경공립보통학교(현 강경중앙초등학교) 강당 등도 일제강점기 때의 건축물이다.

경성 이외 지역에서 최대 규모였던 구 연수당 건재한약방.

여행메모
조선시대 강경천 아치형 석교 미내다리
칼칼한 맛과 감칠맛의 복요리 ‘별미’

강경은 논산천안고속도로 연무나들목에서 가깝다. 가는 길에 미내다리에 들러볼 수 있다. 강경천 둑을 따라가면 채운면 삼거리에 있다. 조선 영조 때 건설된 아치형의 석교로 충청과 호남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옥녀봉 '소금집'과 '소금문학관' 인근에 각각 무료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강경은 복요리가 유명하다. 생복어를 취급하거나 밀복어 한 마리가 통째로 뚝배기에 나오는 식당도 있다. 고추장의 칼칼한 맛이 시원하고 감칠맛이 좋으며 복어껍질 특유의 쫄깃한 식감이 별미다.

강경 황산대교와 돌산 사이에는 사계 김장생이 학문을 강학하던 임이정과 송시열이 후학을 가르치던 팔괘정, 그리고 죽림서원이 있다. 강경 '문화의 거리'로 불린다.

논산은 기호학파의 본산이다. 논산시 노성면에는 윤증 선생이 살던 명재고택이 있고, 연산면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돈암서원이 있다. 출렁다리가 있는 탑정호는 늦가을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올라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논산=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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