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온 ‘21세기 룻’ 보듬으며 ‘열방교회’로 자리매김… 이주민 집사 20여명 선교 후방기지 역할
창립 70년을 맞는 부산시 범일교회에는 집사 직분을 받은 다문화 성도들이 20명이 넘는다.
낯선 땅에서 집사로 세워져 한몫을 담당하기까지 교회의 사랑과 돌봄을 받은 다문화 성도들은 자녀들까지 100여 명 이상 출석한다.
이들은 교회 곳곳에서 성도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며 주어진 직분대로 또는 봉사자로 헌신하고 있다.
지난 1월 발표된 정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다문화가정은 38만 5000가구에 달한다. 부산에는 2만 7000여명의 다문화 가구가 산다. 이들을 품어 안을 사회적 안전장치가 미비한 상황에서 다문화가족을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인 범일교회 최재훈(60·사진) 목사를 찾았다.
범일교회가 다문화 사역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10년 어느 날 밤늦게 걸려 온 교회 집사의 전화 한 통이었다. 부산 동구청 복지과 과장이던 그는 남편한테 쫓겨나 갓난아이를 들쳐 업고 김해공항에서 어찌할 바 모르는 다문화 여성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담임목사한테 SOS를 요청했다. 최 목사는 그때부터 다문화가정을 교회가 돌보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한국 국적도 없고,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수도 없는 젊은 이방인이 최 목사에게는 현대판 룻으로 다가왔다. 고향을 떠난 룻이 자신에겐 이방 땅에서 정착이 필요했듯이 다문화가정 구성원들에게도 안전히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보아스와 같은 역할을 교회가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첫 다문화사역은 룻과 같았던 여성에게 방 한 칸을 얻어주고 주민등록증이 나오는 방법을 찾는 일이었다.
그랬던 시작이 13년 만에 이들을 지원하는 여러 사역으로 늘어났다. 교회에는 다문화 성도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다. 다문화가정이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잘 살 수 있도록 지원하다 보니 순차적으로 사역들이 생겨나게 됐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학업 성취도가 낮다보니 청년들이 수업을 해 주다가 생겨난 ‘토요학교’, 초중고 과정의 ‘검정고시반’, ‘청소년상담복지센터’ 등이 그것이다.
최 목사는 “처음엔 한글부터 가르쳐야 했지요. 그렇게 시작한 것이 검정고시반까지 이어졌어요. 초중고를 거쳐 대학을 졸업한 성도들도 있죠. 또 다문화가정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맞닥뜨리는 문제들이 있거든요. 그런 문제들을 상담하다 보니 국가 기관과 함께 청소년상담센터까지 개소하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십여 년 이상 해 온 다문화 사역의 결실은 교회가 다문화가족을 친근하게 받아들이고 이들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문화’다. 범일교회 안에서는 ‘다문화’라는 말을 굳이 구별해 사용하지 않을 정도가 됐다. 다문화가정 성도들이 많아지다 보니 ‘다문화’라는 특수성이 드러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하나의 문화로 모두 받아들이게 됐다.
다문화 성도들로 구성된 ‘12여전도회’가 주일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날에는 베트남 요리, 태국 요리 등 다문화 식단의 음식이 준비된다. 매년 성탄절에는 다문화성도가 주축이 돼 150~200명의 다문화가정 초청잔치를 연다. 나라별로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어서 이들 중 일부는 ‘새신자’로 정착한다. 무엇보다 이들은 함께 본국에 선교를 나가고 같은 나라 사람을 전도하는 선교 일꾼들로 성장했다.
교회 안에서 기존 성도와 다문화 성도가 함께 어울릴 수 있었던 데에는 처음부터 다문화 사역팀이나 부서를 따로 운영하지 않은 이유가 크다. 예배를 분리해서 드리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최 목사는 다문화 성도들이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더라도 함께 예배를 드리도록 했다. 설교의 10%만 알아듣더라도, 나머지 90%는 성령께서 도와주시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최 목사는 “예수님, 하나님만 알아들어도 되니 함께 예배를 드리자고 했어요. 처음엔 이분들도 힘들어했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예수님을 영접하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성가대에 서기도 하고, 여선교회에 속해 사역하기도 하죠. 본인 고향에 선교를 나갔다가 두 달씩 머물면서 고향에 복음을 전하고 오기도 하고요”라며 뿌듯해 했다.
올해 70년을 맞은 전통교회가 13년 전 처음 다문화가족을 교인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교회 내에는 보이지 않는 반발도 있었다. 다문화가정에는 부부갈등, 고부갈등, 자녀갈등 등 복합적인 문제가 있기때문에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주로 교회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목사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교회가 되는 것을 가장 큰 가치로 삼았다. 교회 근처 초등학교에는 이미 다문화가정 학생이 50%가 넘을 정도로 지역 사회에 다문화가정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마지막 보루로 교회를 찾아온 이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성도들에게 복음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고,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도전을 끊임없이 줬습니다. 이방인을 받아들여야 하는 충격은 생각보다 매우 커서 아픔이 있기도 했지만, 그런 과정들을 거쳐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려 했지요. 이런 진정성을 다문화 성도들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가족이 될 수 있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범일교회에 다문화 사역의 계기가 됐던 젊은 여성과 갓난아이는 현재 교회의 든든한 일꾼이 됐다. 룻과 같았던 여성은 검정고시를 치르고 대학까지 나와 유치원 교사가 됐고, 갓난아이는 중학생이 됐다. 갈 곳 없이 공항에 버려진 모자는 십여 년 만에 한국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됐다. 헌신 된 교인들과 기도하는 동역자, 봉사하는 성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 목사는 “예수님이 한국에 오시면 교회에 그리스도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 품기를 부탁하지 않겠어요? 올해 전도위원장으로 섬기고 있는 집사님은 십여 년 이상 다문화 성도들의 친정엄마가 돼주셨어요. 누가 아프다면 달려가서 간호해주고, 다른 집에서 전화 오면 또 달려가고 그러셨지요. 이분의 헌신에 감동을 받아 헌신한 분들도 여럿 계세요. 그런 분들이 계셨기에 다문화 성도들이 우리 교회의 가족이 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부산=이동희 객원기자 jonggy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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