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권깡’ 불법정치후원 구현모 전 KT 대표, 업무상횡령도 유죄

이병준 2023. 10. 11.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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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현모 전 KT 대표가 지난 5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회삿돈으로 여·야 국회의원 99명에게 쪼개기 후원을 하는 데 가담한 구현모 전 KT 대표에게 재차 유죄가 선고됐다.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김한철 판사)은 업무상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구 전 대표와 KT 전직 임원 7명에게 벌금 300만원을, 다른 전직 임원 두 명에겐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선고에 구 전 대표 등은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구 전 대표 등은 CR(대관) 부문 임직원의 부탁을 받고 KT 자금을 국회의원 정치자금으로 기부해 횡령했다. 회사 내 지위 등에 비춰 죄책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피해 금액이 대부분 회복됐고, 구 전 대표 등이 범행에 깊숙이 가담한 것은 아니라는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KT 대관 부문 전직 임원 A씨 등은 2014~2017년 업무추진비 등 예산으로 상품권을 사들인 뒤, 이를 3.5~4% 정도 싼값에 되팔아 현금화하는 소위 ‘상품권깡’ 방식으로 11억 5100만원을 조성했고, 이중 4억 3700만원을 19~20대 여야 국회의원 99명에게 불법 후원했다. 구 전 대표 등은 이 과정에서 불법 후원을 위해 자신과 가족 등의 명의를 빌려준 혐의를 받는다. 정치자금법상 한 사람 명의로 한 국회의원 후원회에 매년 기부할 수 있는 최대 한도는 500만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후원 목록엔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과 권영세 전 통일부 장관, 우상호·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이름을 올렸다.

구 전 대표는 국회의원 13명에게 1400만원을 송금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당초 구 전 대표를 정치자금법 위반 및 업무상 횡령 혐의에 대해 각각 벌금형 1000만원과 500만원에 약식기소했지만, 구 전 대표는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불법후원 미필적 인식…필요한 지출 아냐“


서울 종로구 KT광화문 사옥 모습. 연합뉴스

구 전 대표 등은 법정에서 범행 사실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자금 출처를 몰랐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KT 소유의 현금을 정치자금으로 기부하는 사실을 적어도 미필적으로 인식하고 용인한 상태로 자신 명의로 정치자금을 기부해 업무상 횡령에 가담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직위와 경력에 비춰, 구 전 대표 등은 대관 부문의 역할을 어느 정도 인식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은) 대관 부문 임직원들에게 상당한 금액의 현금을 받으면서도 출처를 묻거나, 적법한 절차를 거쳤는지에 대해 별다른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구 전 대표 등은 “회사를 위해서 한 일”이라고도 했지만, 이 역시 재판부는 배척했다. 재판부는 “KT가 국회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것이 회사 운영과정상 반드시 필요한 지출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정치자금을 송금하지 않을 경우 규제법안 처리 관련 회사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추측만으로 형사처벌을 감수하면서 정치자금을 후원하고 비용을 부담한다는 것은 합리적 판단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불법 후원은) 국회의원 개인의 이익이나 다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지사. 뉴스1


이밖에도 구 전 대표 등은 대관부문 임직원들이 상품권깡으로 불법 정치자금으로 쓰일 돈을 조성하면서 이미 업무상 횡령 범죄가 저질러진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자신들은 사후 가담한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재판부는 해당 자금이 기존엔 직원 격려금이나 경조사비 등 회사를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 점을 들어, 자금 조성 자체는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한편 구 전 대표는 정치자금법 혐의 사건 1심에서 지난 7월 벌금 700만원을, 다른 전직 임원들은 벌금 300~400만원을 선고받았다. 구 전 대표 등은 항소한 상태다. 불법 후원을 주도한 전 KT 대관부문 부서장 A씨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정치자금법 위반)과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업무상 횡령)형이 확정됐다. A씨와 함께 기소된 KT 법인도 대법원까지 가 벌금 1000만원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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