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남일 아니다…불도저에 뻥 뚫린 이스라엘 '스마트 펜스'
" “11억 달러(약 1조5000억원)짜리 펜스는 (하마스) 침입 저지에 아무것도 못했다.” "
1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이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경계에 설치된 장벽인 ‘아이언 월(iron wall)’에 대해 내린 평가다. 이 매체는 이스라엘이 장벽에 국경방어를 의존하는 바람에 다수의 이스라엘 시민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목숨을 잃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지난 7일 2000여 명의 하마스 무장대원들은 29곳의 경계 장벽을 뚫고 이스라엘에 침투해 아이들 수십명을 포함한 1000여명의 이스라엘인들을 살해했다. 이 장벽은 지난 2014년 ‘50일 전쟁’ 당시 하마스의 땅굴 침투에 놀란 이스라엘 정부가 3년 반 동안 14만t의 철을 쏟아부어 2021년 12월 완공한 것이다. 원격조종 카메라와 레이더 장치 각종 센서와 원격 기관총 등 첨단 장비를 갖춰 ‘스마트 펜스’로까지 불린 이 장벽은 그러나 하마스의 불도저에 맥없이 부서졌다.
‘철벽’으로 자부하던 이스라엘의 첨단 장벽은 어떻게 무너진 것일까. 가장 큰 문제로 꼽힌 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국경 방비를 아이언 월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이언 월을 믿은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접경지역 병력 상당수를 빼 또 다른 팔레스타인 거주지인 서안 지구 쪽으로 옮겼다.
이 틈을 타 하마스는 원격으로 조종한 드론 폭탄으로 스마트펜스를 통제하는 감시탑을 파괴했다. 군사·통신망이 마비되면서 이스라엘이 자랑했던 첨단 센서와 원격 기관총은 무용지물이 됐다. 이후 하마스 대원들은 행글라이더·패러글라이더를 타고 자유롭게 장벽을 넘었다. 장벽에 폭탄을 설치해 구멍을 뚫고, 불도저로 장벽을 밀어낸 뒤 대형 트럭까지 이동시켰다.
통신망이 마비되고, 병력도 적다 보니 이스라엘 지휘부는 해당 장벽이 뚫린 사실을 바로 알지 못했다. 미 싱크탱크 워싱턴 근동정책 연구소의 매튜 레빗 대테러 국장은 워싱턴포스트(WP)에 “(이스라엘) 스마트 펜스의 가장 큰 장점은 원격 감시와 경고체계인데 누가 접근하는지도 파악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불도저가 장벽에 그렇게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마이클 오한론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 연구원도 “이번 사건의 핵심은 (하마스가) 몇 주 전부터 수많은 장비를 장벽 인근에 눈에 띄지 않게 배치할 수 있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마스가 이번 작전에 쓸 자금을 암호화폐로 마련한 정황도 나오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스라엘 정부의 압수물 및 가상화폐 분석업체 보고서를 토대로 “하마스를 비롯해 팔레스타인이슬라믹지하드(PIJ), 헤즈볼라 등 무장정파가 최근 1년 새 암호화폐 계좌를 통해 거액의 자금을 모금했다”며 “하마스가 연계된 계좌로 4100만 달러(550억원) 어치 이상의 암호화폐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러한 하마스의 움직임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군도 유무인 경계 체제로 전방 철책을 스마트화하는 것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현재 휴전선에선 철책선에 설치된 감지기와 근거리 감시카메라를 통한 과학화 경계 시스템으로 경계가 이뤄지고 있다. 국방부는 최근 휴전선 철책에 인공지능(AI) 기반의 유·무인 복합체계로 경계 작전을 펼치는 방안을 국방혁신 4.0 기본계획에 담았다. 여기엔 AI와 드론, 로봇 등이 철책을 경계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아이언 월 붕괴를 계기로 군의 경계 체제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마스처럼 북한군 역시 드론 폭격을 통한 통신망 마비, 패러글라이드 침투, 기갑 중장비를 통한 펜스 돌파 등의 수법을 충분히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스마트 철책 시스템의 상당 부분은 이스라엘을 참조했는데, 반대로 하마스의 장벽 돌파 방식이야말로 전형적인 북한의 전술”이라며 “장사정포를 통한 대규모 공격으로 인해 한국은 더 큰 피해를 볼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양 위원은 “중요한 것은 방비가 뚫렸을 경우 신속하게 병력을 집중시겨 적의 움직임을 막는 것”이라며 “드론 등 현대화 무기를 신속히 도입하고, 기동성을 높이기 위해 군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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