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돈줄 끊겠다"→"계속 원조"…두쪽 난 EU, 말 바꿨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전쟁 국면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자금 지원을 놓고 유럽연합(EU) 고위 관계자들이 하루 간격으로 정반대 메시지를 내면서 내부 균열상을 드러냈다.
10일(현지시간)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조셉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위원장은 이날 “이스라엘은 자신을 방어할 권리가 있지만 이는 국제법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면서 “가자지구의 민간인들에게 물과 음식, 전기 공급 등을 막는 이스라엘의 일부 행태는 국제법에 위배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EU 27개국 외교장관 화상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하마스와 달리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테러리스트는 아니다”면서 “EU 회원국 중 압도적인 다수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한 협력과 자금 조달이 중단돼선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중요한 순간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한 EU의 중단을 지원하는 건 끔찍한 실수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 같은 발언은 하루 전날 “팔레스타인을 향한 EU의 모든 원조를 중단한다”는 올리버 바헬리 EU 집행위의 확대 정책 담당 집행위원의 성명과는 180도 다르다. EU의 개발·원조 정책을 담당하는 바헬리는 9일 X(옛 트위터)에 “팔레스타인의 최대 기부자로서 EU 집행위는 6억 9100만 유로(한화 약 9800억원)의 전체 개발 계획을 검토 중”이라면서 “EU의 모든 지원은 즉시 중단된다”고 밝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바헬리는 EU 외교장관 회의를 하루 앞두고 선제적으로 ‘지원 중단’을 발표해버렸다. 그는 헝가리의 극우 성향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지명한 인물이다. 이에 호세 마누엘 알바레스 스페인 외교장관은 EU 측에 “사전에 고지받은 바가 없다”고 항의했고, 카트린 콜로나 프랑스 외교장관은 비공개 장관 회의에서“일부의 부적절한 행동”을 지적했다고 한다. 결국 보렐 위원장이 나서서 “하마스는 비판하되,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원은 계속한다”는 EU의 공식 입장을 정리한 셈이다.
이번 일은 일견 개인의 돌출 행동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이스라엘 전쟁을 향한 EU 회원국 간 엇갈린 입장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고 폴리티코는 짚었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공 직후 독일·오스트리아는 일찌감치 “팔레스타인 관련한 양자 차원의 지원 중단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면 프랑스·스페인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계속돼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G7 성명 빠진 日 “중동국 겨냥 균형 외교”
유럽뿐 아니라 세계 각국은 ‘친이스라엘이냐, 친팔레스타인이냐’를 놓고 민감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전통 우방인 영·미는 국제 여론전에서 이스라엘 지원 사격에 나서고 있다. 이들 주도로 주요 7개국(G7) 가운데 5개국(영·미·프·독·이탈리아)은 9일 하마스의 침공을 비판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반면 같은 G7이지만 캐나다와 일본은 성명에 동참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일본 아사히 신문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도부 양측 모두와 전화 협의를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원유 수입의 90% 이상을 중동 지역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비판 성명에 동참한 G7 5개국과 달리 균형 외교를 모색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대외 정책에서 국제 인권 문제를 중시해 온 캐나다도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미 등에선 시민들도 ‘이스라엘 대 팔레스타인’ 두쪽으로 갈라져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영국 정부는 친팔레스타인 시위와 관련해 “하마스의 테러를 미화하는 의도로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드는 것은 범죄 행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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