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의 죽음, 대통령의 거센 말은 쓸모없었다 [김용균재단이 바라본 세상]
[김건수]
▲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8회 국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2023.2.21 |
ⓒ 대통령실 제공 |
지난 2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 참석해 건설노조를 향한 대대적 수사를 주문하며 이렇게 말했다.
"폭력과 불법을 보고도 방치한다면 국가라고 할 수 없다".
이처럼 과거 노태우 정권을 연상하도록 하는 '윤석열식 범죄와의 전쟁'은 200여 일 동안의 건설현장 특별수사기간이 마무리 되며 끝이 났다. 최근의 언행을 보면 윤석열 대통령의 전쟁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어제는 범죄세력, 오늘은 공산전체주의 운운하며 이른바 '반국가세력'을 향해 끊임없는 선전포고를 날리는 윤석열 대통령은 이 모든 일이 국가와 시민의 안전을 위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우리는 '불법'과 '폭력'으로부터 시민들을 지켜주는 국가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의심의 여지도 없이 '아니오'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지난날 대낮의 거리에서 시민들을 향한 무자비한 흉기 난동을 겪었다. 그 때 법과 정의, 강력한 사법권력의 힘을 강조하던 윤석열 대통령의 거센 말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법과 정의를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수사로 외쳤을 뿐, 시민들이 겪는 일상적인 폭력과 불법에는 무관심했다.
정작 시민들이 겪는 일상적인 폭력과 불법은 따로 있다. 지난 9월 24일, '직장갑질 119'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직장인 1천 명에게 임금체불 경험을 물어보니 무려 43.7%가 임금체불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이런 비슷한 통계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도대체 노동현장에서 시민들이 겪는 불법이 얼마나 많은지 '00노동현장 불법'에 키워드만 바꾸어 검색해보니 이런 기사들이 나왔다. 지난해 정보경제연맹이 국민입법센터에 의뢰한 설문에 따르면 국내 소프트웨어 프리랜서 개발자들의 78.8%가 불법파견을 경험했다고 하고, 지하철 5060 청소노동자 3명 중 1명이 성추행을 비롯한 성범죄 피해 경험이 있다는 기사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 택시 완전월급제 이행과 회사의 임금체불 등에 항의하며 분신한 뒤 숨진 택시기사 방영환씨가 생전 1인시위를 하던 모습. |
ⓒ 공공운수노조 해고자복직특별위원회 |
"폭력과 불법을 보고도 방치한다면 국가라고 할 수 없다"던 윤석열 대통령에게 지난주 분신 끝에 숨을 거둔 택시노동자의 삶을 한번 보여주고 싶다. 지난 6일 분신 11일차 결국 숨을 거둔 택시노동자 방영환의 삶은 그야말로 폭력과 불법의 온상이었다. 2019년 택시현장의 부조리를 몸소 겪으며 동료들과 노동조합을 설립했지만, 자신을 포함해 일부는 해고되고, 일부는 강제로 전근되며 노동조합이 와해되었다. 방영환 자신은 2022년 대법원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받아 회사로 복직했지만, 돌아온 것은 홀로 남은 그를 쫓아내기 위한 사측의 계속된 폭력과 불법적 근로계약 체결 강요였다.
이 죽음의 책임자는 택시사업주 뿐만이 아니다. 서울시와 고용노동부, 경찰과 검찰도 이 죽음의 공모자들이다. 2020년 택시노동자들을 과로과속 노동으로 내모는 사납금제가 폐지되고, 2021년 서울시는 첫 번째로 택시완전월급제 시행의무가 있는 지자체로 정해졌다. 그러나 법과 현실은 정반대였다. 택시사업주들은 사납금제의 이름만 바꾸어 여전히 택시노동자들에게 할당액을 지정해 지급하도록 했고, 택시완전월급제를 악용해 소정근로시간을 적게 산정해 터무니없이 적은 임금을 지급했다.
방영환의 경우 택시사업주는 그의 하루 소정근로시간을 3시간 30분으로 산정해, 주 40시간이 넘도록 일한 그에게 한 달 100만원의 임금을 지급했다. 그마저도 사납금을 채우지 못했다면서 7월부터는 급여를 지급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분신 당일까지 227일 동안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온 그는, 그동안 1인 시위 도중 사업주에게 온갖 폭력을 당하면서도 최저임금, 체불임금 진정을 넣고 폭력행위 신고를 하며 버텨왔다. 그러나 서울시, 고용노동부, 경찰 그 어느 기관도 택시사업주의 불법행위를 처벌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이 죽음은 택시사업주와 서울시, 고용노동부, 경찰이 공모한 사회적 타살이자 국가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단순히 관리감독 책임주체들의 무능으로 인한 문제가 아니라, 명확한 책임을 부정하면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을 짚자면, 서울시에서 관리감독해야 하는 완전월급제 시행여부는 강행법률에 근거한다. 강행법률이란, 위반이 적발되면 반드시 처벌해야 하는 법적 장치이다. 그러나 완전월급제가 시행되고 있지 않다는 227일 동안 이어진 호소와 고발에도 택시사업주는 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때론 쇠꼬챙이로, 때론 주먹으로 택시노동자를 폭행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공산전체주의세력과 맞서 싸우겠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공산전체주의세력은 인권과 진보운동가로 위장해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정말이지 의문인 것은, "약자와의 동행"을 하겠다던 오세훈은 방영환이 죽어갈 때 어디에 있었으며, "노사법치주의 확립" 운운한 한동훈과 이정식 장관은 어디에 있었으며, 윤희근 경찰청장은 불법집회에는 엄단을 내리면서, 사업주가 1인 시위하는 노동자를 향해 쇠꼬챙이를 휘두를 때 어디에 있었는지 묻고 싶다.
▲ 승강장에 줄지어 서있는 택시 |
ⓒ 연합뉴스 |
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법을 지키지 않아 사람이 죽었다. 검사 대통령 시대에 벌어질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것이 아니라면 검사 대통령을 위장한 기득권 대통령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달 남짓 뒤면 전태일 열사의 기일이다. 그가 남긴 말,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를 오늘날에도 외쳐야 하는 게 노동자의 현실이다. 지금이라도 서울시와 고용노동부는 방영환의 죽음이 불러낸 자신들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고 방영환 열사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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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번 글은 김용균재단 회원이자, 청년학생노동운동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김건수 님이 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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