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등급으로 넓혀 경쟁 완화? 결국 수능이 이겼다

서부원 2023. 10. 11. 14:4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직 고등학교 교사가 본 '2028학년도 대입 제도 개편 시안'... 이건 명백한 퇴행

[서부원 기자]

▲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세부 내용 설명하는 이주호 부총리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 발표에 참석해 세부 내용를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0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온 '2028학년도 대입 제도 개편 시안'이 발표됐다. 교육부는 공청회 등을 거쳐 올해 안에 확정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머지않아 수능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 거라며 호언장담해왔는데, 하루아침에 아이들 앞에서 데면데면한 처지가 됐다.

2025학년도 전면 시행을 앞둔 고교학점제와 수능은 병존할 수 없는 대입 체제여서, 어차피 둘 중 하나는 힘을 잃게 될 터였다. 동료 교사들 사이에 내기하듯 설왕설래가 이어졌고, 대개 '대세'는 꺾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곧, 고교학점제가 어떻게든 정착되리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끝내 수능이 이겼다. 교육부가 '구관이 명관'임을 자인한 꼴이 됐다. 수능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된 학생부종합전형은 적수가 되지 못했다. 급속한 사회 환경의 변화와 개인별 다양한 적성과 진로를 고려한다는 고교학점제의 취지도 조만간 껍데기만 남게 될 듯하다.

당장 내신 등급이 9등급에서 5등급으로 바뀌면서 내신의 변별력은 사실상 사라졌다. 1등급이 상위 10%로, 2등급은 34%까지 등급 구간이 넓어졌다. 기존의 9등급제에서 2등급인 상위 11%를 수시전형으로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에 원서라도 낼 수 있는 기준이었으니, 바뀐 기준으로 치면 1등급이 하한선이 될 전망이다.

교육부는 9등급 상대평가가 반 친구들끼리 과도한 경쟁을 조장하고 사교육 의존도를 심화시킨다는 이유를 댔다. 등급 구간이 넓어져 경쟁이 완화되면 미래사회에 필요한 협업 능력과 공동체 의식이 기를 수 있다는 기대도 비쳤다. 현실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외면하고 싶은 건지 그저 황당할 따름이다.

상상 그 이상인 아이들과 학부모의 '대응'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들.
ⓒ 연합뉴스
어릴 적부터 대입을 결승선 삼아 달려온 아이들과 학부모의 '효율적 대응'은 뭘 상상하는 상상 그 이상이다. 내신이 변별력을 잃었다고 확신이 서는 순간, 더는 교내 시험 등에 연연하지 않는다. 각자 치밀한 계산에 따라 '적정 수준'만 맞춰놓고 수능에 다 걸기 할 공산이 크다.

단언컨대, 절대평가로의 획기적 전환 없이 등급 구간을 살짝 넓힌다고 해서 과도한 경쟁이 해소될 가능성은 없다. 이번 시안이 발표된 직후 동료 교사들은 내신의 변별력을 대체하기 위한 '또 다른 기준'이 제시될 거라고 확언했다. 어찌 됐건 당분간은 수능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아이들의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을 측정할 수 있는 논, 서술형 평가 도입을 위해 교사들의 역량 강화를 지원한다는 대책도 흰소리로 여기는 분위기다. 학교별 논, 서술형 평가가 겉도는 건 교사들의 역량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당장 학생 수가 너무 많아 채점조차 버거워서다.

주당 2시간 수업 교과라면, 수업 시수를 고려해 보통 9개 반을 맡게 된다. 한 반 학생 수가 30명 안팎이니, 얼추 270명 정도다. 한두 문항도 아닐 텐데, 평가 기준에 따른 채점은 고사하고 이들의 논, 서술형 답안을 대강 훑어보는 데만도 몇 날 며칠이 걸릴지 알 수 없다.

하여 '울며 겨자 먹기'로 다섯 개 중에 하나를 고르라며 아이들을 다그치는 거다. 선다형 문항을 출제하고 싶은 교사는 없다. 그런 평가 방식을 두고 주저 없이 반교육적이라고 단언하는 교사들이 태반이다. 솔직히,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를 흉내라도 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관건은 학급 당 학생 수를 줄이는 데 있다. 역량 강화 연수한답시고 그러잖아도 바쁜 교사들 오라 가라 하지 말고, 교육 예산을 확충하는 게 근본적인 해법이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인해 저절로 해결될 것처럼 말하지만, 그럴 거면 이번 대입 제도 개편도 그때 하자고 해야 옳다.

탐구 영역 개편 방안이 학교에 몰고 올 파장

누가 뭐래도, 이번 시안의 핵심 내용은 수능에서 선택과목을 배제하겠다는 거다. 절대평가인 영어와 한국사를 제외하고, 세분화한 선택과목을 통합해 평가하겠다는 취지다. 국어 영역의 경우, 기존의 양자택일하던 '화법과 작문', '언어와 매체'가 공통과목으로 편입될 예정이다.

수학 영역도 기존의 '확률과 통계'와 '미적분', '기하'에서 택일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미적분Ⅰ'과 '확률과 통계'를 공통과목과 함께 치르게 된다. 대신 고난도의 '미적분Ⅱ'와 '기하'는 별도로 '심화 수학' 영역을 도입하는 방안에 제시됐다. 이는 이공계열 학과의 경우, 필수 응시 영역으로 지정될 수도 있다.

탐구 영역의 개편 방안은 학교에 더욱더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문, 이과 구분 없이 17개 과목 중에 최대 2개를 선택하는 기존의 방식을 폐지하고, '통합 사회'와 '통합 과학' 영역을 신설해 함께 응시하도록 했다. 다양한 사회, 과학 교과의 핵심 내용을 '융합적으로' 평가하겠다는 발상이다.

이는 국어, 수학 영역과 마찬가지로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표준점수 확보에 유리한 과목으로의 쏠림 현상은 점점 더 극심해지는 양상이다. 일례로, 지난해 8개 과학 탐구 과목 중에 '물리Ⅱ'를 응시한 경우는 전체 수험생의 0.6%에 불과했다.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는 수능조차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의 전형 비중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이 '구관'인 수능에 자리를 내준 것도 불공정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학생부종합전형은 여전히 '부모 찬스'가 만연한 제도라는 불신이 팽배하다.

'통합 사회'와 '통합 과학' 영역의 신설은 세부 교과별로 따로 배우되 시험은 통합해서 치른다는 취지인데,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교육과정조차 시험에 철저히 종속된 현실에서 모든 수업의 '경계'가 허물어질 게 불 보듯 환하다. 고유한 교과별 성취기준이 유명무실화된다는 이야기다.

시나브로 '통합 사회'와 '통합 과학' 기출 문제집이 교과서를 대체하게 될 것이고, 문항별 출제 빈도에 따라 교과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 교과 융합형 문항의 특성상 기존 수능의 선다형 방식이라면, 출제 오류가 빈발할지도 모른다. 급기야 교과를 통폐합하자는 주장마저 대두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현행 수능과 비교해 학습량은 거의 동일하다"고 강조했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주장이다. 9개의 사회 교과와 8개의 과학 교과를 모두 공부해야 한다는 건 수험생에게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난이도를 조정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껍데기만 남은 고교학점제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2022년 11월 17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한 수험생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 이희훈
 
백 보 양보해서, 이번 시안은 수능 체제는 그대로 두고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그럴듯하게 덧씌운 전형적인 견강부회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대입 제도는 입시 현실과 교육의 이상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명백한 퇴행이라는 비판에 대한 해명인 셈이다.

그는 또 대입 제도의 '공정'과 '안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 말인즉슨, 수능 위주의 대입 제도를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동시에 고교학점제는 우리 교육 현실에서 시기상조라는 인식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스스로 적성과 진로를 고려해 과목을 선택하도록 한 고교학점제는 그렇게 껍데기만 남았다.

이번 개편안을 통해 윤석열 정부의 교육개혁의 퇴행성을 엿보게 된다. 학벌 구조의 모순을 혁파할 대안도 없을뿐더러 미래사회 우리 교육의 지표와 나아가야 할 방향도 보이지 않는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