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하마구치 류스케 "관객과 좀 다른 방식으로 소통해보고 싶었다"

조영준 2023. 10. 1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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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th BIFF] 부산국제영화제 행사 스페셜 토크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X 하마구치 류스케

[조영준 기자]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스페셜 토크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마구치 류스케, 남다은' 행사가 10일 저녁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 중극장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부상 중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를 상영한 직후 이루어졌다.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중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90분이 넘는 스페셜 토크를 통해 영화에 담긴 의미와 촬영 방식 등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도쿄와 가깝지만 아직 개발이 진행되지 않은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코로나 위기가 끝나가자 마을에 글램핑 야영장을 건설하겠다는 주민 설명회가 열리고, 이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의견이 이어지자 회사 측이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한 묘수를 고안해 낸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음악을 맡았던 이시바시 에이코 음악 감독의 요청으로 라이브 퍼포먼스용 영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연히 극영화로 발전된 작품. 제8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도 공식 초청되었다.

스페셜 토크의 진행은 남다은 영화평론가가 맡았다. 두 사람의 심도 깊은 대화가 인상 깊었던 '스페셜 토크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마구치 류스케, 남다은' 행사 내용을 요약하여 전달한다.

"나를 새로운 곳으로 이끌어줄 수 있겠다 생각에 수락"
 
 [28th BIFF] 부산국제영화제 행사 '스페셜 토크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X 하마구치 류스케, 남다은'
ⓒ 부산국제영화제
- 이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를 만들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 영화의 출발은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도 음악을 담당했던, 이번 작품에서는 작곡가로 참여하고 있는 이시바시 에이코씨 본인의 공연에 쓰는 라이브 퍼포먼스용 영상 제작 제안을 받았던 것입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함께했던 작업이 저로서는 무척 만족스러웠고 훌륭한 뮤지션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의뢰를 받았을 때 영광이었습니다. 더구나 그 의뢰를 받았던 타이밍이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의 개봉이 끝난 뒤였고 저도 개봉을 마치고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하지 못했던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라이브용 영상을 찍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는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만 '이 작업은 나를 새로운 곳으로 이끌어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수락을 했습니다."

- 이번 작품의 첫출발이 라이브 퍼포먼스용 영상 제작이라고 하셨는데요. 그 과정에 대해서도 조금 더 자세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원래 이 작품은 영화로서 극장 개봉을 목적으로 하거나 그럴 만한 예정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로지 라이브 퍼포먼스용 영상 제작을 위한 목적으로만 찍기 시작했던 작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촬영을 하다 보니 배우들이 너무나도 매력적이었습니다. 특히 배우들의 목소리가 너무 좋다고 느껴졌고 이 배우들의 목소리를 관객들에게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촬영이 끝난 뒤에 의뢰를 해주셨던 이시바씨께 이 작업을 하나의 극장용 영화로서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하나의 극장용 영화로서 완성시키는 것을 허락받았습니다. 대신 라이브 퍼포먼스용 영상은 'Gift'라는 타이틀로 별도 제작을 했습니다."

- 영화 속 장소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도쿄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고 들었는데요. 어떤 점에 매료되어서 이 장소를 선택하셨는지요?
"이 작업은 정말로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이시바씨의 음악에 잘 어울리는 장소를 찾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등장하는 곳은 도쿄에서 실제로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인데요. 그곳에 이시바 씨의 음악 스튜디오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곳에 가서 느꼈던 점은 대부분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자연의 풍경 자체보다는 실제로 그곳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이 주변 환경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죠. 저는 기본적으로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연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분들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분들이 했던 말들은 구체적으로 이 영화 속에 대사로도 투영되어 있습니다."

- 감독님의 작품에서는 대화, 대사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번 작품은 전작들과 달리 침묵에 더 닿아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번 영화를 촬영하면서, 또 연기 연출을 하시면서 전작들과 다른 느낌이 있으셨을까요?
"그동안의 연출 방식과 차이는 있습니다. 그런데 대사가 있는 장면에 대해서는 그동안 해온 것과 차이는 없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방법이라고 하면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리딩을 거듭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반복 연습에 의해서 평소 같으면 절대로 입밖에 내지 않을 것 같은 말들도 입 속의 근육 차원으로 익숙해짐으로써 배우들이 대사를 바로 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 작품에서는 연기나 행동에서도 반복해서 숙달할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배우들이 신체적으로 느끼는 정보량이라는 것은 카메라 뒤에 있는 저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많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배우가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걸 목격하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제가 특별한 지시를 하지 않아도 '아 이 인물이라면 이렇게 움직이겠구나' 하는 순간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됩니다. 그 상태까지 이르게 되면 저희 스태프들은 집중력을 배우가 최대한 높일 수 있을 타이밍에 카메라를 돌릴 수 있을까 없을까 그것을 맞추기만 하면 됩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도 했던 연출은 그런 방식이었습니다."

- 극 중 설명회 장면을 떠올리면 전문 배우들 뿐만 아니라 비전문 배우들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요. 이 장면을 찍을 때 어떻게 준비하셨고, 배우들 배치하는 일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극 중 설명회 장면에 관해서 말씀드리면 그 장면 속에 지역 주민분들이 있었습니다. 엑스트라로서 그 장면에 출연했던 거죠. 보조 출연자 분들을 도쿄에서 불러서 하게 되면 아무래도 분위기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 지역 분들에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 장면에서 대사가 있는 배우들 중에도 배우로서의 경험이 많았던 분, 또 적었던 분들이 함께 섞여 있었습니다. 경험치나 경력의 차이가 나는 배우들을 한 장면에서 섞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이런 방식으로 촬영을 해보니 굉장히 좋았습니다. 서로 자극을 주고받기도 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모습도 볼 수 있었죠. 현장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또 한 번 이런 방식으로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28th BIFF] 부산국제영화제 행사 '스페셜 토크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X 하마구치 류스케, 남다은'
ⓒ 부산국제영화제
- 이 영화가 현실의 다양한 문제를 아우르고 있는 것과 별개로 그런 현실이 설득되지 않는 지대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쩐지 음산하고 무섭다는 생각까지 드는데요. 어떤 장면에서는 유령이나 정령과 같은 주인 없는 시선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영화를 내내 부유하는 시각과 시점에 대한 설명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 작품은 처음 기획 단계부터 영화의 성립 조건이 달랐기 때문에 그런 출발점이 달랐던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음악용으로 라이브 영상을 찍는다는 것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평소에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 중에 하나인 누구의 시점인지 잘 알 수 없는 지점의 문제를 이번 작품에서는 애초에 카메라의 시점으로 드러내고자 의도했습니다. 카메라가 누군가의 시선, 누군가의 시점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카메라는 카메라로써 그저 촬영행위를 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동안에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분명히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숏을 종종 사용했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카메라가 대상을 찍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고 싶다고 느꼈습니다. 평소에 그런 촬영 방식이 일반적으로 기피되는 이유는 그렇게 되면 관객들이 영화를 믿지 못하게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계속 만들어 가면서 관객의 힘을 조금 더 빌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관객과 좀 다른 방식으로 소통을 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거죠."

- 이번 작품 속에는 단절의 장면이 여럿 포착됩니다. 누군가의 시선인가 싶었던 장면이 끊기기도 하고, 특히 음악이 갑자기 툭, 하고 끊어지기도 하죠. 흐름과 단절에 관련해서 편집을 하실 때 어떤 생각들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음악과 관련해서 말씀을 드리는 게 조금 더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음악 감독님께서 만들어주셨던 메인 테마곡은 정말 아름다운 곡이었습니다. 촬영을 끝내고 편집이 된 상태로 보여드렸고 거기에 맞춰서 음악을 만들어 주셨는데 영상과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객들을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감정적인 고양 상태로 이끌어주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관객들과 조금은 더 냉정한 관계로, 조금 더 거리가 있는 상태에 영화를 위치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제가 선택했던 방법이 음악의 아름다움을 어느 정도 들려드리고 난 다음에 난폭하게 중단하고 뚝 끊어버리는 방식이었던 거죠. 하지만 지금 이 음악이 끊긴다고 해도 이어지는 소리들이 계속 존재합니다. 환경음과 실제 현장에 존재하는 소리들입니다. 음악이 끊겼을 때 오히려 지속되는 영상과 음향이 훨씬 더 생생하게 다가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큰 충격 뒤에 더 선명해지는 현실감 같은 것이랄까요? 그런 부분들이 유효하게 받아들여지면 좋겠습니다."

- 도시의 인간의 동선을 촬영하는 일과 자연 안의 인물의 동선을 찍는 일은 다를 수밖에 없을 텐데요. 이 작품 속의 자연과 인물, 그리고 카메라의 관계라고 할까요? 이런 부분에 대해 촬영 감독님과는 어떤 말씀을 나누셨을까요?
"촬영 감독님과 주로 나눈 대화는 렌즈를 무엇을 사용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영화에서는 40mm 렌즈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이 렌즈는 인간의 실제 시각적인 부분과 상당히 가까운, 닮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특별한 영상 효과를 노렸다기보다는 우리가 실제로 바라보고 있는 자연을 그대로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촬영 감독님과 이야기했던 것은 인물과 함께 자연을 담는다는 원칙입니다. 인물과 함께 자연을 담지 않으면 자연이 얼만큼의 사이즈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인물과 자연을 함께 담으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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