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학교에서 두 통의 메일이 왔다
[김보민 기자]
▲ 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가자 지구에서 불길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
ⓒ 연합뉴스 |
내용인즉슨, 지난 주말 사이 일어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정당의 충돌에 따라 충격과 공포에 떨고 있을 이스라엘인 또는 이스라엘 출신 미국인들을 지지한다고 했다. 메일에서 잠깐 무슬림 가족을 언급하긴 했지만, 메일을 작성한 이는 지난 주말 내내 이스라엘인 친구의 가족과 함께했고, 줄 수 있는 도움이 없어 희망적이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친구의 슬픔을 위로하는 것이 아주 힘겨웠다고 했다.
그리고 심리적인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과 가족들을 위해 타운과 학교에 전담 상담사가 있을 예정이니 도움이 필요할 경우 주저하지 않고 도움을 요청하라고 덧붙였다.
▲ 무슬림 가족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이스라엘인 가족에 대해 진심으로 안타까워 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
ⓒ 김보민 |
내가 사는 타운은 미국 동부의 매사추세츠주 내에 위치한 인구 1만 7천 명가량이 살고 있는 곳이다. 미국 동부에 유대인이 많이 살고 있다고 알려져 있듯, 우리 동네의 유대인 커뮤니티도 상당히 큰 편이다. 토요일 아침이면 정수리만 가릴 수 있는 크기의 모자인 키파(Kippah)를 쓴 남자들이 예배하기 위해 유대인 회당(시나고그, synagogue)로 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동네에만 7개의 유대인 회당인 시나고그가 있을 정도이니 학교 관계자가 이런 이메일을 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같은 타운에 거주하는 아랍인, 특히 팔레스타인인들이 이 메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다. 이스라엘 국민들만큼이나 오랜 기간 고통받은 이들이 바로 팔레스타인인들인데 아무리 하마스가 먼저 공격했고, 이스라엘 국민들이 치명적인 영향을 받았다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한쪽을 위한 위로의 이메일을 학교가 공식적으로 보내도 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게다가 타운 내에는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가장 큰 모스크가 있다. 이곳에 아랍인들이 살고 있을 테고, 그중에는 팔레스타인의 가족이나 친지, 친구를 둔 가족들도 있을 것이다. 어찌하다 미국까지 날아와 자리 잡고 살기 위해 애쓰는 소수 인종에 포함된 나로서는 학교에서 보낸 메일이 일방적인 것 같아 씁쓸했다.
다른 대륙을 바라보는 자세
나에게 아시아는 커다란 대륙 자체로 한 덩어리로 보여요. 내가 아시아에 여행을 간다면 여행 계획을 세우지도 못할 것 같아요. 그 커다란 덩어리를 어떻게 여행해야 할지 모르니까요.
그녀에게 아시아는 그렇게 덩어리로 보면 안 된다고, 국가마다 고유한 특징이 있다고 말하려다가 말이 길어질까 봐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미국이란 나라가 그래요. 주마다 다른 법률이 존재하고, 공휴일도 다르고, 학교 시스템도 다르니까요. 내가 살았던 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어요. 마치 한 나라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조금 더 들여다보면 미국의 주마다 살아가는 사람과 문화와 정치적 문화적 배경이 다르듯 아시아의 여러 국가가 모두 다르다는 게 보일 거예요.
나 역시 한국을 벗어나지 않았다면 간호사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몇 해 전 나에게 아시아는 한국, 일본, 중국이 차지하는 북동아시아가 전부였고,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도시 이름은 언제나 헷갈렸고, 동남아시아는 일부 휴양지 도시의 이름이 전부였으며, 중동, 아프리카는 내전과 강대국의 싸움터 정도로 인식되었고, 남미로 가자면 뉴스에 언급되는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아는 바가 없었다.
즉, 그 땅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을 체감할 수 없었고, 그리하여 이해하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던 중 싱가포르에서 5년을 살면서 조금 더 크고 선명하고 구체적인 아시아를 지켜봤고, 아시아 대륙에서 이어지는, 중동이라 불리는 서남아시아와 아프리카, 그 너머에 강대국의 이름으로 존재했던 유럽과 미국까지 어렴풋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누군가는 공항과 쇼핑몰에서도 정해진 시간이 되면 기도실에 모여 기도했고, 누군가는 교리를 따르며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먹지 않고, 여성 중 일부는 머리카락을 가리는 히잡을 쓰고, 어떤 이들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위해 길 위에 향을 피우고 종이를 태웠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뉴스에서 언급되는 국가와 그 국가의 정권을 잡고 있는 권력자들의 이야기 이면에 감춰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인간이 살지 않는 외계의 공간에서 온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았다. 그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개별성이 중요한 만큼 뭉뚱그려 표현할 수 있는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쟁터에 사람이 살고 있다
쏟아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련 뉴스를 살펴보다 마음이 복잡해질 때쯤 한 통의 이메일이 왔다. 11시 가까이 되는 시간에 타운 내 학교를 관리하는 기관의 두 번째 메일 제목은 <팔레스타인 가족을 위한 지원>이었다.
▲ 팔레스타인 학생과 가족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두 번째 이메일 |
ⓒ 김보민 |
타운은 4시간 간격으로 이스라엘인 가족과 팔레스타인인 가족을 위해 차례로 두 통의 메일을 보냈다. 첫 번째 메일에서 담당자가 이스라엘인 가족을 향한 다소 격앙된 안타까움이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전달되었다는 내부 의견이 있어 두 번째 메일을 서둘러 준비한 것처럼 보였다면 나만 그리 느낀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전도를 펼쳐놓고도 한참 들여다봐야 찾을 수 있는 곳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떠나 자리 잡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 미국의 작은 타운은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느라 분주한 밤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유대인의 문화와 종교는 잘 모르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고 가슴 아픈 일인지 알기에 너의 안부를 묻는 문자를 보낸다. 너에게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친지나 가족이 있는지도 잘 몰라. 하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무고한 사람들이 받을 충격과 공포가 얼마나 클까 상상하며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너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내는 이 메시지뿐이야. 세상에 평화가 찾아오면 좋겠어.
동네에는 이스라엘 국기와 성조기를 같이 게양한 집이 종종 보인다. 전쟁의 불구덩이가 된 국가의 국기가 게양된 모습을 볼 때마다 지구촌 시대, 국경이 사라질 거라는 미래를 향한 예측들이 모두 억측처럼 느껴진다.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 앞에 누가 옳은지 그른지 따지다 보면 그 끝에는 강대국들의 힘의 논리가 있다.
▲ 다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에 대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해 들여다보게 된다. |
ⓒ 김보민 |
세상 모든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밤이고 낮이고 울리는 총탄 소리에 두려워하지 않고, 엄마 아빠한테 맞지 않도록 보살펴 주세요.
세상 어딘가 있다는 신에게 가느다란 목소리로 전하면서도 하늘에 닿을 수 있는 기도인지조차 알 수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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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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