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식 도우미는 왜 항상 여자일까

이진민 2023. 10. 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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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확인한 성차별... 2012년 런던올림픽에선 남성 도우미도 등장

[이진민 기자]

 5일 중국 항저우 푸양 인후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양궁 컴파운드 남자 단체전 시상식에 시상식도우미들이 메달을 들고 입장하고 있다. 2023.10.5
ⓒ 연합뉴스
 
어느 채널을 돌려도 '스포츠'만 나오는 요즘. 스포츠라면 질색하는 사람도 애국심 차오르게 하는 장면이 있으니, 바로 메달 수여식이다. 특히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수영, 탁구, 배드민턴 등 중국의 벽에 막혔던 종목에서 금메달이 쏟아졌다. 시상대에 오른 선수들이 메달을 받는 순간, 영광의 틈을 비집은 건 '성 차별'이었다.

그 주인공은 '시상식 도우미', 시상자가 메달을 수여할 때 옆에서 쟁반이나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다.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는 그들은 언제나 여성이다. 세계인의 화합을 도모한다면서, 왜 도우미는 항상 여성일까? 태생부터 차별적이었던 국제 스포츠 대회,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이변은 없었다.

창시자부터 주창한 '여성은 도우미'
 
 3일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육상 400m 계주 결선 시상식을 위해 도우미들이 꽃다발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2023.10.3
ⓒ 연합뉴스
 
초대 올림픽위원회 위원장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은 근대올림픽의 아버지로 손꼽힌다. 그러나 그가 꿈꾼 화합에 여성은 없었다. 그는 1896년 "여성의 올림픽 참여는 비실용적이고, 흥미롭지 않으며, 미학적이지 않고, 적절하지도 않다"는 망언을 남겼다. 특히 "올림픽에서 여성의 역할은 우승자에게 월계관을 씌어주는 일"이란 그의 말은 130여 년이 지난 2023년까지 유효하다. 올림픽 창시자의 가치관을 착실히 따른 건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만이 아니다.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시상식 도우미는 주로 여성이 도맡으며 자격 요건에는 외모와 신장에 관한 구체적인 요건이 따른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연령, 신장, 학력 외에 '혈색이 좋고 반짝이는 피부', '볼륨 있지만 뚱뚱하지 않은 몸매', '코와 얼굴의 비율' 등을 내걸었다. 또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아름다운 미소를 위해 치아 8개가 보이도록 미소 짓는 훈련을 진행했다.

또한 신체를 부각한 의상을 착용하여 '여성을 성 상품화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받았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도우미들은 중국 전통의상 치파오를 변형한 유니폼을 입었다. 이는 옷감이 얇고 달라붙는 재질로 만들어져 일반 치파오보다 몸의 형태를 보여주며 속옷라인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시상식 도우미의 선정적인 의상에 뒤따른 건 저열한 관심이었다.

시상식 도우미의 뒤태를 담은 사진이나 실수로 넘어질 때 신체가 드러난 장면을 담은 영상은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그들을 향한 성희롱에 가까운 댓글이 넘쳐났다. 국제 대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누군가를 돕는 보조적인 위치에 국한하고 성 상품화의 일환으로 이용한 셈이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어김없이 도우미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그들은 달라붙는 의상으로 꽃다발과 메달을 들었고 언론에선 '시상식의 꽃', '미녀 도우미'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SNS에는 '도우미녀'라는 호칭과 함께 그들의 모습이 떠돌았다. 철저히 타인의 시선에서 '꽃'으로 여겨지는 시상식 도우미, 그리고 스포츠 속 여성의 위치를 일깨우는 순간이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선 스포츠 속 여성이 도맡는 '보조' 역할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야구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입장할 때 짧은 의상의 치어리더들이 나란히 서서 응원하는 장면이 송출되었고 농구 작전 시간에는 여성 치어리더의 공연이 펼쳐졌다. 파울볼을 줍는 배트걸마저 '핑크색' 헬멧을 착용했다. 시상식 도우미부터 배트걸까지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여성의 역할은 '보조'와 '꽃'을 오갔다.

남자 도우미? 바뀐 건 '성별'이 아니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브라질 선수들에게 메달을 전달하는 남자 도우미.
ⓒ AP/연합뉴스
 
2012 런던올림픽은 시대착오적 관행을 버리고 '양성평등'을 다짐했다. 이에 최초로 시상식의 진행을 돕는 '남성 도우미'가 등장했다. 하지만 바뀐 건 성별만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꾸려 애쓰고 달라붙은 의상을 착용한 여성 도우미와 달랐다. 그들은 정장 차림의 단정한 모습이었다. 텁수룩한 수염을 드러냈고 안경을 착용했다. 여성 도우미처럼 '치아를 드러낸' 미소는 없었다. 정장을 갖춰 입은 그들의 모습은 당당했고 올림픽의 권위가 느껴졌다.

여성 도우미에게 요구되는 꾸밈 노동과 '꽃' 역할은 성별이 전환되자 사라졌다. 그렇다면 런던올림픽이 주창한 '양성평등'은 실현된 것인가? 스포츠 속 여성의 성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단순히 여성의 역할을 남성으로 전환하는 건 무의미하다. 오히려 젠더에서 비롯된 차별을 재확인하게 한다. 마치 활짝 웃는 여성 도우미와 무표정한 남성 도우미의 차이처럼.

'젊고 아름답지 않은' 여성 시상식 도우미를 볼 수 없을까? 정장 차림에 웃지 않은 그들의 모습이야말로 시상을 돕는 역할에 부합할 것이다. 아름답지 않아도, '꽃'이 되지 않아도 스포츠와 국제 대회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여성들을 기다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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