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모금]라캉? 들뢰즈?…쉽게 설명한 프랑스 철학
편집자주 - 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프랑스 철학은 진입장벽이 높다. 난해한 개념과 복잡한 설명 앞에 무릎 꿇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라캉, 바디우, 들뢰즈를 중심으로 주요 철학자들의 사상을 도식을 이용해 풀이한다. 도식들은 기본적으로 ‘빨간색 타원’과 ‘파란색 타원’이라는 대립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대립은 '실재계'-'상징계', ‘마그마’-‘지각’, ‘혼돈’-‘질서’로 설명된다. 저자는 에너지나 힘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마그마의 상태, 요동치는 흐름이 있는 혼돈의 상태, 생명 그 자체, 역동적인 에너지의 상태를 파란색 타원으로 표현했고, 마그마가 굳어도 군데군데 굳지 않은 부분이 생기는 것처럼 질서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완전히 덮이지 않는 부분을 빨간색 구멍으로 표시했다. 이는 라캉 정신분석에서 난해한 개념으로 지목되는 '대상 a'의 설명 기반이 되기도 한다. 정신질환을 분류하는 증상 개념이라 할 수 있는 '대상 a'에 따르면 정신질환은 신경증, 도착증, 정신병으로 분류된다. 신경증에는 강박증과 히스테리가 포함되고, 강박증은 상징계의 질서 체계가 막고 있어 '대상 a(증상)'가 드러나지 못한다. 증상이 상징계를 뚫고 나가면 히스테리로 발현된다. 이때 상징계가 덜 형성되면 '도착증'이, 아예 형성되지 않았으면 '정신병'이 생긴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루이비통을 사면 에르메스가 갖고 싶고, 벤츠를 사면 람보르기니가 갖고 싶은 움직이는 욕망의 대상이 왜 실재계의 파편인가?’ 하고 궁금해하실 수 있습니다. … 왜냐하면 지각 위의 마그마의 파편은 지구 안에 있는 마그마와 연결되어 있어 절대 잡힐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대상을 가지면 우리의 욕망이 만족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은 환상을 만들어내는 무질서나 혼돈의 상태가 이 세상의 아래쪽 내면에 숨겨진 실재계와 연결되어 있고, 절대로 한 번에 포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p.37-38
대상 a는 상징계가 형성될 때 상징화되지 못한 부분, 상징화를 빠져나간 나머지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증상은 상징계가 형성된 후에 상징계를 뚫고 나오는 실재계의 부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증상은 지각을 뚫고 올라오는 마그마, 초콜릿 파이의 껍질을 뚫고 올라오는 뜨거운 반죽을 말하는 것이고, 대상 a는 애초에 상징계가 만들어질 때 덜 덮인 곳을 말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 p.47
중세가 오히려 광기나 자유로움이 있었던 시기이고, 르네상스가 광기와 무질서를 이성의 질서로 억압한 시기라고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감을 잡으셨을 텐데요, 프랑스 철학은 억압을 정말 싫어합니다. 광기를 받아들일지언정 억압은 정말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런 정신들이 1968년 프랑스 문화혁명에서도 나타납니다. 관료적 시스템, 구태의연한 제도를 타파하고,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고, 자유로운 삶과 상상력의 권리를 인정해달라고 외쳤는데요, 이런 것이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 p.58
명명 불가능하다는 것은 기존 시스템에서 뭐라고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런 특징들이 나왔을 때 사건의 조짐이 보이고, 사건은 점점 자신의 영역을 넓히면서 세상에 점점 더 큰 균열을 가져옵니다.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혁명이 프랑스나 러시아, 유럽을 바꿔버린 것, 서태지가 만든 증상, 사건, 혁명이 가요계라는 상징계에 균열을 내고 가요계 전체를 흔든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초콜릿 파이와 마그마의 비유를 가져와서 바디우의 이론을 설명하는 방법입니다. - p.140-141
수학적인 내용은 잊으셔도 되는데요, 가속도, 속도 같이 꿈틀거리는 상태가 잠재태이고 이동 거리 같이 고정된 상태가 현실태라는 것은 꼭 기억해두시면 좋겠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라캉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미나 20』 이후에 등장하는 위상학을, 바디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집합론을, 들뢰즈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적분을 알고 있으면 좋지만, 이것을 모른다고 해서 라캉, 바디우, 들뢰즈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 p.225
바디우와 들뢰즈가 다른 점은 바디우는 철학이 진리를 생산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들뢰즈는 철학이 무언가를 창조한다고, 그 창조하는 것이 바로 개념이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바디우는 플라톤의 철학도, 칸트의 철학도, 헤겔의 철학도 당시의 과학, 예술, 사랑이 만들어낸 어떤 진리들을 파악하고 그것들이 순환하도록 체계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들뢰즈는 철학 역시 그 시대의 어떤 개념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 p.260
라캉, 바디우, 들뢰즈의 세계관 | 장용순 지음 | 이학사 | 272쪽 | 2만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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