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뱁새 김용준 프로의 골프모험] 좋은 데 놓고 치라는 말의 정치학

이은경 2023. 10. 11.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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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

한비자(韓非子)는 춘추시대 한나라 사람이다. 생각이 아주 깊었다. 정치학에 깊은 조예를 갖게 되었다. 그가 쓴 정치학 책은 당대에 여러 나라 군주가 참고로 삼을 정도였다. 그가 쓴 글 '세난(說難)'은 그의 정치에 대한 깊은 식견을 짐작하게 해 준다. 세난은 한참 후대 사람인 역사가 사마천이 저서 '사기(史記)'에 전문을 실어 전해진다. 

세난은 '유세를 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유세(遊說)는 세상을 떠돌아 다니며 달랜다는 뜻이다. 춘추시대에는 다른 나라 출신이라도 그 지혜나 지식을 높이 사서 장관급 자리에 앉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장관을 객경(客卿)이라고 불렀다. 타국에서 스카우트 해 온 장관이라는 말이다. 

그런 객경 자리를 얻기 위해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자신의 지식이나 지혜 혹은 철학으로 그 나라 군주를 설득하는 것이 유세였던 것이다. 같은 내용으로 유세를 해도 군주마다 반응은 달랐을 것이다. 나라마다 처한 상황이 달랐을 테니까. 그러니 꾀가 있는 유세객이라면 자신의 생각만 고집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군주의 안색을 살피면서 세치 혀를 놀렸을 것이 분명하다. 

한비자는 유세를 하기가 어려운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군주가 품은 생각을 곧이곧대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어떤 군주는 생각과 정 반대로 이야기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어떤 군주는 있는 그대로 털어놓을 수도 있고. 그러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 지 판단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떤 군주가 큰 뜻(예를 들면 천하를 제패할 꿈)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고 치자. 그가 정말 그릇이 큰 사람일까? 누가 겸손하게 작은 이득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고 하자. 그가 진짜 포부가 작은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뱉은 말과 속에 품은 생각이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로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 하는 사이가 되고 나서야 비로서 군주의 진짜 속마음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채용이 되어야 할 텐데. 채용도 되기 전에 어떻게 군주의 뜻을 헤아릴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춘추시대 유세는 어렵고도 어려운 것이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취업 인터뷰 요령을 귀띔하는 어떤 소셜 미디어(SNS) 인플루언서가 '면접은 두 거짓말쟁이가 나누는 대화'라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사진=게티이미지

골프 칼럼에 급기야 한비자까지 출연했느냐고? 바로 골프장에서 남을 배려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하기 위해서다.

"좋은 데 놓고 치세요" 이 말을 들어보지 않았다면 한국 골퍼가 아니다. 좋은 데 놓고 치라는 말은 훨씬 수월한 곳으로 공을 옮겨놓고 플레이를 하라는 말이다. 규칙대로 하면 너무 가혹하니까. 

이 말은 듣는 사람에 따라서 반응이 다를 수 있다. 적절한 배려라고 고마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무슨 소리냐고? 좋은 데 놓고 치라는 말에 왜 마음이 상하냐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산전수전 겪었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먼 골퍼이다. 

상대가 정통파 골퍼라고 가정해 보자. 나무에 공이나 스윙이 걸려도 그대로 치거나 레이 업 하는 그런 골퍼 말이다. 도저히 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벌타를 받고 언플레이어블 볼(Unplayable Ball)을 선언하는 그런 골퍼 말이다. 언플레이어블 볼이란 샷을 하기 어려운 상황일 때 골프 규칙에 따라 한 벌타를 받고 공을 옮겨서 치는 것을 말한다. 

그런 그가 자세를 잡고 곤경에서 탈출하려고 하는 순간 옆에서 "좋은 데 놓고 치세요"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가 "아이고 감사합니다"라며 공을 옮겨놓고 칠까? 천만의 말씀이다. 순간 짜증이 확 날 수도 있을 것이다. 말한 사람이 제 딴에는 배려한다고 던진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 반대도 가능하다. 초보 골퍼가 고약한 라이에 놓인 공을 두고 고민하고 있는 데 그대로 치라고 닦달한다면? 무슨 이런 야박한 사람이 있느냐고 토라질 수도 있다. 물론 아직 골프 규칙을 따지기에 당당 먼 그런 왕초보라고 가정하고 하는 이야기이다. 

"좋은 데 놓고 치세요"라고 말한 사람이 받을 대접 혹은 취급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 말을 하면 이해심 많은 사람이라고 여길까? 아니면 골프 규칙을 우습게 보는 가벼운 골퍼라고 생각할까? 

배려를 해도 문제이고 하지 않아도 문제이다. 마찬가지로 배려를 받아도 문제이고 받지 않아도 문제이고. 골프를 할 때 처신도 유세 못지 않게 어려운 것 같다.

한비자는 이렇게 말했다. 유세에 성공하면 용을 타고 하늘로 오르게 되지만 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면 용이 몸을 요동쳐서 떨어져 죽게 된다고. 거꾸로 난 비늘이 바로 역린(逆鱗)이다. 

"좋은 데 놓고 치세요"라는 말을 하는 것이 역린을 건드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면 지나친 이야기일까?

‘뱁새’ 김용준 프로와 골프에 관해서 뭐든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메일을 보내기 바란다. 지메일 ‘ironsmithkim이다. 

김용준 KPGA 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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