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도 모두 친구" 중재자 자처하는 중국
중국이 ‘이스라엘판 9·11’ 사태에 중재 외교를 시도할 전망이다. 중국 외교부는 9일 “중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공동의 친구”라며 “양자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안보와 발전을 함께 향유하는 것을 볼 수 있기를 진정 희망한다”고 중재 의지를 밝혔다.
이런 중국의 입장은 지난해 3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유엔 총회 결의안에 기권했던 당시와 비슷하다. 다만 하마스의 민간인 무차별 살해와 보복 전쟁을 선포한 이스라엘에 중국식 양비론이 이·팔 양측을 설득할 수 있을지는 회의론이 우세한 실정이다.
중국 외교부는 9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재자 위상을 부각하려 노력했다.이날 브리핑에서 총 22개 질문 중 18개가 이·팔 충돌을 다뤘다. 알자지라 기자는 “서구 정객과 언론은 팔레스타인의 행동을 테러라 부르며, 이스라엘의 동예루살렘 알 악사 모스크에 대한 군사공격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반격이란 측면은 무시했다”며 질문했다. 이에 마오닝(毛寧) 대변인은 “팔·이 충돌 문제에서 중국은 시종 공평정의의 입장에 서 있다”며 “근본적인 출로는 ‘두 나라 방안’을 실현해 독립된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립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서구 매체 기자들은 중국이 이란에 영향력을 행사할지 주목했다. 뉴욕타임스 특파원은 “중국은 이미 혹은 향후 이란이 하마스를 억제하고, 인질을 풀어주도록 하마스나 이란에 요구할 것인가” 묻자, 마오 대변인은 “관련 각국은 즉시 발포를 멈추고 일반인을 보호하며 상황이 더욱 악화하는 것을 방지할 것을 호소한다”며 원론적인 입장만을 밝혔다.
슈머 의원 “習, 이란에 영향력 발휘 요구했다”
중국을 방문한 척 슈머 미국 상원의원의 '실망' 발언도 언급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 특파원이 하마스의 습격과 일반인 납치에 대한 중국의 반응에 “실망했다"는 슈머 의원의 지적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마오 대변인은 “중국은 팔·이 충돌에 따른 일반인 부상과 피해에 애통함을 느끼며 일반인에 대한 폭력과 습격을 반대하고 비난한다(condemn)”며 전날 발표보다 발언 수위를 높였다. 이어 “가장 시급한 것은 조속히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회복하는 것”이라며 정전을 촉구했다.
슈머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왕이(王毅) 외교부장에게 중국 입장에 대한 실망감을 나타낸 뒤 하마스의 공격에 대해 중국 측 표현이 바뀌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중국이 이란에 가진 영향력을 사용해 큰 불길이 더욱 번지지 않도록 요청했다”며 “시 주석은 중국이 이란에 여러 방면의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그들(이란)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도록 요청했다고 말했다”고 FT가 10일 보도했다. 시 주석의 발언은 이미 이란에 새로운 중동 전쟁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개입 중지를 요청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
홍콩紙 “새로운 중동전쟁 확대 위험 적어”
중국은 이번 이·팔 충돌이 새로운 중동전쟁으로 확산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내부 정치에 밝은 홍콩 성도일보는 10일 “하마스가 미국의 중동 포석을 방해했지만, 전쟁이 확대될 위험은 크지 않다”는 사설에서 확전 가능성을 일축했다. 사설은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이란이 막후에서 기획했다는 어떤 증거도 보이지 않았다고 강조한 것은 워싱턴이 신중하게 전쟁의 확대를 원하지 않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란이 전쟁에 휘말려 이스라엘군이 이란의 유전이나 핵 시설을 폭격하고 이란이 반격하거나, 심지어 페르시아만의 송유관을 봉쇄한다면 유가는 통제 불능으로 치솟고 인플레이션을 촉발해 바이든의 재선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미국이 항모를 동지중해에 파견했지만, 이스라엘군의 국지전과 공습 위주만 지지하는데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국을 원하지 않는 미국의 제지로 새로운 중동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낮다고 보는 중국의 셈법이 반영됐다.
習, 내주 방중 푸틴과 중동 입장 조율할 듯
시 주석은 다음 주 베이징에서 열리는 제3차 일대일로(육·해상 신실크로드)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중동 사태에 대한 중·러의 일치된 입장을 조율할 전망이다. 마오 대변인은 9일 관련 질문에 “중국은 각국과 소통을 유지하고 정세 완화와 휴전을 추진할 것”이라며 “중국은 계속해서 중동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이어 다음 달 푸틴 대통령은 불참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APEC) 정상회의에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나 이란·팔레스타인·시리아 정상에 대한 영향력을 과시할 전망이다. 올해 2월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6월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대통령, 9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까지 중동의 대표적인 반미(反美) 국가 정상들과 회담한 시 주석이 양자 관계를 지렛대로 활용할 것이라고 베이징 외교가는 전망했다.
중국 외교부 산하의 현대국제관계연구원의 친톈(秦天) 중동연구소 부원장은 중국의 중재 역할을 낙관했다. 그는 “중동평화 프로세스를 위해 만든 미국·유럽연합·러시아·유엔 4자 메커니즘이 갈수록 무력화됐다”며 “특히 지난 6월 압바스 팔레스타인 대통령의 방중에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중국 방문 의지를 밝힌 만큼 서방이 하마스의 행동을 일방적인 테러행위로 규정한 것보다 중국의 입장이 전쟁 중단에 보다 확실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홍콩 피닉스TV에 밝혔다.
중국의 중재 역량에 회의론도 나온다. 장궈바오(張國葆) 전 주텔아비브 대만 경제문화판사처 대표는 “이스라엘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배후 지지와 군수품을 받고 있어, 중국의 영향력은 크지 않다”며 “비록 중국과 팔레스타인 관계가 양호하지만 이란·사우디 중재보다는 훨씬 어려울 것”이라고 미국의소리(VOA)에 말했다.
美·中, 이스라엘·이란에 영향력 경합할 듯
미국과 중국이 각각 이스라엘과 이란에 가진 영향력을 발휘해 중동 전쟁의 확대를 막으면서 이·팔 문제의 해결을 암묵적으로 경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중동 전문가인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사우디·이란 중재를 성사시킨 중국이 중동에서 직면한 첫 번째 숙제”라며 “미국의 제재를 받는 이란이 하마스와 헤즈볼라 배후인 만큼 중국의 이란에 대한 레버리지가 작동할 지 시험대에 올랐다”고 말했다.
표나리 국립외교원 교수는 “네타냐후 총리가 향후 미국과 중국 중 어디를 먼저 방문할지 주목해야 한다”며 “지난 9월 20일 지난해 말 재집권한 뒤 9개월이 지나서야 뉴욕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1시간 회동했던 네타냐후 총리가 의외로 워싱턴보다 베이징을 먼저 방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박근혜 떨어뜨리려 나왔다”…이정희 수준 참 어이없었다 [박근혜 회고록5] | 중앙일보
- "이럴 거면 학교 가지마"…세 딸 모두 하버드 보낸 엄마의 경고 | 중앙일보
- 북한은 K9 3발만 맞았다? 연평도 포격전 ‘80발의 진실’ | 중앙일보
- '90년대 청춘스타' 김민종, 국정감사 증언대 선다…무슨 일 | 중앙일보
- '원더우먼' 38세 배우 분노…이스라엘 2년 방위군 '군필' 출신 | 중앙일보
- '현실판 더 글로리' 표예림씨 숨진채 발견…"편해지고 싶다" | 중앙일보
- [단독]"친문계 법카 지적 당하자…文중기부, 감사실 인사 물갈이" | 중앙일보
- "이재명에 20억 줬다" 주장한 조폭…박철민의 최후진술은 | 중앙일보
- 10조 기부했던 그의 손엔 '2만원 시계'…DFS 창립자 떠났다 | 중앙일보
- 관악구 모텔 돌며 불법촬영한 중국인…영상 140만개 쏟아졌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