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중동 위기에도, 美이스라엘 대사 없다…일 못하는 워싱턴 왜

김형구 2023. 10. 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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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규탄하는 긴급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전면전을 선포한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중동에 전쟁의 암운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도 즉각 비상 대응 모드를 가동했지만 위기 해결 능력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맹방인 이스라엘이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후 가장 치명적인 공격을 당한 시점에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가 ‘부재중’ 상태라는 점이 뼈아픈 대목이다. 토머스 나이즈 전 주이스라엘 대사가 지난 7월 사임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제이콥 루 전 재무장관을 이스라엘 대사 후보자로 지명했지만 아직 여야 정쟁 속에 상원 인준이 이뤄지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김영옥 기자


블링컨 “대사 공석…이득 보는 건 적들뿐”


앞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 7월 17일(현지시간) 국무부 정례 브리핑에 이례적으로 참석해 야당인 공화당의 제동으로 상원 임명동의안 처리가 미뤄지고 있는 각국 대사를 비롯한 국무부 고위공직 후보자 62명에 대한 조속한 인준을 촉구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런 핵심 보직을 채우지 못하면 이득을 보는 건 오직 적들뿐”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7월17일(현지시간) 미국 국무부 브리핑에 참석한 블링컨 국무장관이 국무부 후보자들에 대한 상원의 조속한 인준을 촉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의 경고가 현실화되는 것일까. 하마스의 대규모 로켓 공격 및 인질 포획으로 중동이 다시 미국의 대외 안보 전략의 최일선으로 떠올랐지만 9일 기준 이스라엘은 물론 이집트·오만·쿠웨이트에 주재하는 미국 대사는 공석 상태다. 국무부의 최고 대테러특사 자리는 2년 넘게 비어 있고, 최고 인권특사 직책인 국무부 민주주의·인권·노동담당 차관보는 바이든 정부 내내 공석으로 남아 있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에도 3년째 중동담당 고위 당국자가 한 명도 없는 상태다.

민주·공화 양당의 정쟁 속에 공화당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 랜드 폴 의원(켄터키)이 코로나19 기원과 관련된 정부 자료 제출 등을 요구하며 국무부 고위공직 후보자 전체의 인준을 막아 세웠기 때문이다. 미 상원에선 통상 일괄 인준 형식으로 고위공직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처리하는데 개별 상원의원이 제동을 걸면 하릴없이 멈춰서고 만다. 약 200명의 군 장성 등 인사도 상원 군사위원회 소속 공화당 토미 튜버빌 의원(앨라배마)이 국방부의 낙태 지원 정책 폐기를 요구하며 인준을 막고 있다.

미국은 내년 11월이면 차기 대선을 치르고 새 정부가 들어선다. 그런데도 여야 대치의 골이 깊어지고 이념 갈등이 양극화로 흐르면서 국가 안보의 근간인 외교안보 인사에 대규모 공백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상대국 수도에 잘 착근한 미국 대사는 차 안전벨트에 비유된다. 평상시엔 그저 있으면 좋지만 중대 비상 사태가 발생하면 절대적으로 필요해지기 때문”이라며 “이번 이스라엘 위기에서 주미대사 공백의 영향은 워싱턴의 부처 간 협업을 저해하고 중동 지역 내 효과적 대응을 방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주요국 대사 인준 처리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크리스 머피 민주당 상원의원(코네티컷)은 지난 8일 “지금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이며 가능한 한 빨리 이 지역(중동) 모든 수도에 상원 인준 외교관(대사)을 파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여론의 비판이 잇따르자 상원 외교위가 뒤늦게 금주 중 이스라엘 대사 후보 청문회를 서두르기 시작했다고 FP가 보도했다.


하원도 의장 부재로 ‘기능 부전’


미 상원이 주요 대사와 군 장성 인준 지체로 비판을 받고 있지만, 하원 역시 초유의 하원의장 해임 가결처리 이후 의장 부재 상태로 우려를 키우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 추가 지원을 약속하고 있는데, 하원 승인이 필요한 사안일 경우 신속한 처리가 되겠느냐는 의문이 나온다. 하원 외교위원장인 마이클 매콜 공화당 의원(텍사스)은 지난 8일 CNN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금 적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가? 우리가 기능 장애를 겪고 있고 하원의장조차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라며 “이스라엘에 대한 재정적·정치적 지원을 위해 새 하원의장을 조속히 선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케빈 매카시 전 미국 하원의장이 지난 9일(현지시간) 워싱턴 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기자 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3일 하원의장 해임 직후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해 의원직 사퇴설까지 나왔던 매카시 전 의장은 하원의장 재출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정치전문매체 더 힐에 따르면, 매카시 전 의장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해임안에 찬성표를 던진 공화당 초강경파 의원 8명이 입장을 바꿀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하원 공화당이 무엇을 원하든 나는 한다”고 답했다. 의장 선거에 출사표를 낸 하원 법사위원장 짐 조던 공화당 의원과 스티브 스컬리스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가 당선에 필요한 과반 득표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매카시 전 의장이 재등판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으로 풀이됐다.


“더는 지배적 강대국 아냐…‘힘 빠진 미국’”


이번 신(新)중동전을 놓고 미국의 국제사회 영향력 약화와 함께 다극체제 전환의 시그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의 글로벌 맥락’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대만에 대한 중국의 호전적 태도, 인도의 민족주의 대두, 이스라엘의 극우 연립정부 등장,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등을 거론하면서 “이는 세계가 새로운 혼란의 시기로 접어들었다는 신호로, 다극화라는 새로운 질서로 전환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더는 과거와 같은 지배적인 강대국이 아니다”고 했다.
지난 9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EPA=연합뉴스

NYT는 ‘미국이 힘 빠진 이유’를 설명하며 미국이 다극 체제의 도래를 스스로 가속화하는 전략적 실수를 한 측면도 있다고 짚었다. “과거 정부들이 ‘부유한 중국’은 ‘미국에 더 우호적인 중국’이 될 거라고 순진하게 믿었고,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이라크에서 값비싼 전쟁을 치렀으며, 바이든 대통령이 감독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굴욕적 철군은 미국을 더욱 약해 보이게 만들었다”는 진단이다.

이어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영향력 약화에 결정적 타격을 미친 국정 지도자로 “미국이 세계를 주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꼽았다. NYT는 “그는 각종 국제 협정에서 탈퇴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같은 성공적인 동맹을 경멸했다”고 설명했다.


백악관 “이스라엘·사우디 정상화 계속 추진”


NYT는 그러면서도 “다극체제 부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은 가장 강력한 국가로 남아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가 그간 공들여온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관계 정상화 노력에 대해 최근 몇 달간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은 이스라엘·사우디 관계 정상화 노력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여전히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 정상화는 두 나라 국민뿐 아니라 미 국민과 이 지역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좋다고 믿는다”며 “지난 주말 하마스 공격이 있기 전에도 우리는 협상 합의에 이르기 위해 노력해 왔고, 계속해서 그 작업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백악관이 이스라엘과 미국의 연대를 강조하기 위해 이스라엘 국기 색인 파란색과 흰색의 불빛을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럼에도 유럽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중동에서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라는 두 개의 전선을 마주한 미국으로선 대외 정책이 중대 고비를 맞게 됐다는 게 중론이다. 직접적 개입 대신 ‘상황의 안정적 관리’에 초점을 맞춘 바이든 행정부의 중동 정책은 스텝이 꼬인 상황이다. 신중동전이 하마스를 지원해온 이란과 이스라엘의 전통적 우방인 미국의 대리전 양상으로 흐르면서 외교를 통한 안정화 정책은 동력 약화가 불가피해졌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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