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가는 한국과 함께할 것" 첫 AI 국가정상회의 이끄는 英고문
영국 법무부에 '과학 고문(CSA)'이라는 자리가 있는 까닭은 뭘까. 법무부뿐 아니라 외무부ㆍ국방부 등 20여개 부처에 공통으로 있는 자리다. 이들의 수장은 '최고 과학 고문(GCSA)'이라 불리며, 총리 직속이다. 1964년 신설돼 지금까지 정책 결정 전반에 과학 자문을 제공하는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여성으로선 최초로 GCSA로 지명된 앤젤라 맥클린은 지난 6일 방한 중 중앙일보와 만나 "과학과 무관한 분야라고 해도 과학적 근거와 과정, 입증을 거친 정책 결정의 중요성은 묵과할 수 없다"며 "평시뿐 아니라 팬데믹과 같은 비상사태에서 과학 고문들이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맥클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도 정부 부처 간 조율 및 브리핑 등에서 역할을 했다. 당시엔 국방부 과학 고문이었으나 팬데믹 시기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리시 수낙 총리에 의해 최고 과학 고문으로 임명됐다.
그런 그의 이번 방한 목적은 인공지능(AI)이다. 영국 정부가 다음달 개최하는 첫 AI 안보 정상회의(AI Security Summit) 관련 한국 정부와의 조율 및 한국의 AI 정책을 참고하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다음달 영국 국빈 방문을 언급하며 "정보통신(IT) 분야에서 일찌기 두각을 드러내온 한국과 영국이 AI로 인해 새롭게 대두되는 다양한 문제에 있어서 밀접한 협력을 한다면 시너지가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한ㆍ영 수교 140주년 등을 기념해 찰스 3세 국왕의 초청으로 영국을 방문한다. 다음은 서울 중구 주한영국대사관에서 진행된 맥클린과의 일문일답 요지.
Q : 과학 고문의 역할과 성과를 설명해달라.
A : "과학자의 역할은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데 있다. 듣고 싶어하지 않는 말이라도 누군가는 해줘야할 때가 많다. 정책 입안 및 조율과 실행, 리뷰의 일련의 과정에서 과학적 방법론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 부처의 과학 고문들은 수요일마다 조찬 모임을 갖고 의견을 교환하고, 총리에게 필요한 자문을 제공한다. 영국뿐 아니라 뉴질랜드 등 영연방 국가들과도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그는 옥스퍼드대에서 수리생물학을 전공했고, 바이러스의 인체 감염 경로를 수리적 분석을 전문분야로 삼은 학자다. 국방부 CSA로 임명된 뒤엔 전문분야를 넘어 과학적 정책 입안으로 입지를 넓혀왔다.
Q : 방한 목적은.
A : "최고 과학 고문의 방한은 처음인데, 한국이 반도체와 AI 등에서 앞서가는 국가인만큼 협력의 밀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에 사흘 간의 일정을 확보해 왔다. 반도체 관련 및 여러 정부 관계자들과 만나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공유할 수 있었다."
Q : AI 안보 정상회의는 어떻게 진행되나.
A : "챗GPT 등 생성AI로 인한 편의도 크지만 문제점도 양산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그러나 AI 관련 문제들은 새로운 것이기에 어느 한 국가만 다루기는 쉽지 않다. 과학자들은 물론 국가 지도자급 인사들 및 경제인들을 초청해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지 머리를 맞대는 게 주요 목적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먼저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 AI 관련 문제는 국제 사회 공통의 이슈라는 점에서 이런 회의를 구상하게 됐다."
Q : 첫 여성 최고 과학 고문이라는 이력이 눈길을 끈다. 아이를 셋 둔 다복한 가정도 꾸렸는데, 일과 가정 양립에 대해 조언한다면.
A : "한국의 상황을 잘 모르는 내가 조언을 하는 건 조심스럽고, 대신 내 경험을 나누고 싶다. 아이가 어렸을 때, 아이를 일터에 데려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때 상사에게 솔직히 상황을 털어놓았다. 일과 연구를 계속 하고 싶은데, 아이를 집에 두긴 어렵다고 말했더니, 흔쾌히 그럼 일터로 데려오라고 말해주더라. 이렇게 가정의 여러 문제를 함께 수용해 해결해나가려는 직장 문화가 제일 중요하다. 여성이어서 놓치거나 잃은 기회도 많았고 그때마다 솔직히 많이 울었다(웃음). 하지만 집에 가서 아이들이 '엄마 사랑해'라는 말을 들으면 다시 힘이 솟았다. 아이를 기르는 것은 분명, 힘듦을 겪을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부담을 홀로 지려고 해선 안 된다. 어떻게 도와줄 지를 몰라서, 뭘 원하는 지를 몰라서 돕지 못하는 사람들의 의외로 많다.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기를 바란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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