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웅빈 특파원의 여기는 워싱턴] 몰려드는 불법 이민자들, 코너에 몰리는 바이든

전웅빈 2023. 10. 11.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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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입국한 이민자 가족이 지난달 21일 텍사스주 이글패스의 임시 수용소에서 미 내륙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 5~9월 80만명이 국경을 넘는 등 미국 내 불법 이민자가 급증하면서 이 문제는 조 바이든 대통령을 압박하는 차기 대선 핵심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AP뉴시스

공화당, 대선 핵심 이슈화 맹공
5월이후 80만명 이상 국경 넘어
'국경 경비 강화 조치' 압박하며
우크라 지원·예산안 협상 연계

민주당도 “더 못견디겠다” 불만
뉴욕 등 민주당 우세 지역에 이동
공항·경찰서·도로 등 노숙 몸살
여론도 악화 재선 악재로 떠올라

“마음은 무한하지만 자원은 그렇지 못하다. 5성급 호텔과 일자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뉴욕을 찾지만 현실은 다르다.”

에릭 애덤스 뉴욕 시장은 지난주 멕시코 중부 푸에블라를 방문한 자리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국경을 넘으려는 이민 희망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많은 망명 신청자들이 브로커가 퍼뜨린 잘못된 정보에 이끌려 미국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도 다를 게 없으니 오지 말라”는 호소였다.

국경지대와 3100㎞ 떨어진 뉴욕 시장의 발언은 불법 이민자 물결이 민주당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민자 문제는 이미 공화당이 대선 핵심 이슈로 밀고 있는데, 여기에 민주당 내분까지 확산하며 조 바이든 대통령을 압박하는 주요 정치적 문제가 되고 있다.

8일(현지시간) 파나마 이민청에 따르면 콜롬비아와 파나마 국경 지대의 험준한 정글인 ‘다리엔 갭’을 지나간 이민자가 올해에만 41만5100명을 넘어섰다. 2021년(13만3726명), 2022년(24만8284명)을 합한 것보다 큰 규모다.

워싱턴포스트(WP)가 입수한 정부 예비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9월에만 자녀와 함께한 10만3000명 이상의 부모가 불법으로 남부 국경을 넘었다. 미국 땅을 밟기 위해 목숨을 건 이민 희망자 숫자가 역대 최대치로 치솟고 있는 것이다.

불법 이민자들은 미국 내륙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 등 국경 인근의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이 바이든 대통령의 국경 정책을 비판하며 이들을 뉴욕이나 시카고 등 민주당 우세 지역으로 이동시켜왔기 때문이다.

이민자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려는 공화당 정책은 실제로 ‘효과’를 발휘했다. 뉴욕시는 매달 1만명 이상의 이민자가 들어와 이들을 지원하는 공공 서비스가 고갈 상태라고 한다. 뉴욕시에 접수된 망명 신청자는 지난해 봄 이후에만 12만2700명을 넘어섰다. 애덤스 시장은 “매일 수백명의 이주민이 머물 곳도 없는 상태에서 도시로 들어오고 있다”며 지난주 뉴욕주가 잠자리를 요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숙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대피소 권리 명령’을 종료해 줄 것을 법원에 요청했다. 애덤스 시장은 지난달 “이민자 위기가 뉴욕시를 파괴할 것”이라는 발언도 했다.

시카고 역시 지난해부터 망명 신청자들이 몰려와 대피소가 포화 상태다. 상당수는 오헤어 국제공항과 인근 경찰서 바닥 로비에서 지내고 있고, 일부는 도로에서 노숙하고 있다. WP는 “대피소 로비가 가득 차 인도에서 2살짜리 아이와 함께 잠을 자는 가족도 있었다. 이들은 비 오는 날이면 비닐 시트 아래에서 몸을 웅크리며 지낸다”고 보도했다. 시 차원에서 거리 노숙 이민자를 위해 겨울용 텐트를 세울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망명 신청자가 계속 유입돼 제대로 된 대응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브랜던 존슨 시카고 시장은 이런 문제를 부각하기 위해 미국과 멕시코 국경 지역을 방문하기로 했다.

민주당 소속인 일리노이주 주지사 JB 프리츠커도 지난주 바이든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이민자 유입을 견딜 수가 없다”고 밝혔다. WP는 “미국 남부 국경을 따라 정부 단속요원들은 하루 9000명 이상씩을 체포하고 있으며 많은 이민자 가족들이 길거리에서 잠을 자고 있다”며 “국가 정책의 실패를 보여주는 풍경”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뉴욕 시카고 보스턴 샌디에이고 덴버 등 주요 도시가 갑작스러운 수천명의 이민자 유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연방 정부에 더 많은 자금 지원과 조정을 호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대응은 한계가 역력했다. 지난 5~9월 80만명 이상의 이민자가 불법으로 국경을 넘었는데, 미 당국이 추방한 인원은 29만5000명 수준이다.

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을 더욱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다. 공화당 강경파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보호하기 위한 자금이 수반되지 않는 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 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의 해임을 촉발한 것 역시 국경 자금을 뺀 임시예산안 처리였다. 공화당 강경파들은 다음 달 임시예산안 만료 전 바이든 행정부가 국경 강화 조치에 나서지 않으면 정부 예산안 협상을 중단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이민자 문제에 대한 여론도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로이터가 입소스와 공동 진행한 조사에서 “불법 이민이 미국인들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여기는 여론이 54%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화당원 73%와 민주당원 37%가 이런 의견에 동의했다.

지난 9월 WP·ABC 뉴스 공동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이민 정책을 지지하는 미국인은 4명 중 1명이 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 28%보다 감소한 수치다. 마켓 로스쿨 여론조사에 바이든 대통령의 이민자 정책에 대한 지지는 27%로 트럼프 전 대통령(50%)보다 23% 포인트나 낮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 문제가 악화하자 지난주 애초 공약을 깨고 트럼프 행정부 시절 시작한 국경장벽 건설을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BBC방송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지지자여야 할 민주당 지도자들이 그의 이민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며 “그의 재선 희망을 압박하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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