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고마운 미지의 세계

2023. 10. 11.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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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석(소설가)

이집트에서 스쿠버 다이빙 체험…
땅 위에선 상상조차 못했던
세계에 고개 숙여져

20년 정도 계획한 세계 일주를 마침내 실행 중이다. 현재는 두 달간 지내기로 작정한 이집트 다합에 와 있다. 한데 도착한 첫날부터 유구한 계획이 어긋난 걸 느꼈다. 숙소에서 물을 틀었을 때 나는 누군가 수도관에 비타민 가루를 탄 줄 알았다. 수돗물이 샛노랬다. 바람이 거세서 물탱크에 모래가 잔뜩 들어간 터였다. 이 말인즉슨 창문을 한나절 열어둔 채 침대에 누우면 ‘어, 여기가 백사장인가’ 하고 착각할 만큼 모래가 집으로 들어온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또한 각오했건만 40도가 넘는 한낮의 더위는 내 창작 의욕은 물론 삶의 의욕까지 앗아갔다. 그 탓에 겨우 생존만 하는 수준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때 아내가 제안했다. ‘스쿠버 다이빙’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이곳이 바로 ‘다이빙의 성지’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키지 않았는데, 그건 사람들이 쉽게 오해하는 내 청개구리 기질 때문이 아니라 실은 오직 작품의 개성을 위해 삶까지도 남들과 다르게 살아야겠다는 작가적 신념 때문이었다. 한데 내 신념의 가치는 399달러 정도 되는데, 아내가 400달러나 하는 다이빙 수강료를 내주는 바람에 공교롭게 신념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결국 속는 셈 치고 해보지, 라며 시작했는데 역시나 속아버렸다.

소설가란 무릇 문장에 살고 문장에 죽는 존재다. 내 문장을 공들여 쓰니 타인의 문장 역시 공들여 써놓아야 읽고 싶다. 한데 독학으로 끝내야 하는 공식 사이트의 이론 수업 문장이 온통 어색한 번역체였다. 읽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게다가 다이빙 수트는 어깨가 탈골될 만큼 입기 힘들어 물에 들어가기도 전에 지쳐버렸다. 그 상태로 물에 들어가니 힘이 빠져 자꾸 호흡을 거칠게 했다. 그 탓에 입속으로 과도히 들어오는 공기는 예전에 뭣 모르고 했던 ‘비수면 위내시경’의 트라우마를 떠오르게 했다. 이 역시 장모님(즉, 다이빙을 권한 아내의 어머니)께서 ‘민석아, 작가라면 경험상 비수면으로 하는 게 좋아’라고 해서 했는데, 시작하자마자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내 마스크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계속 물이 들어왔다. 그리하여 그날 밤 나는 마치 간고등어처럼 소금기에 절인 눈동자로 지친 채로 눈을 감았다. 근데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맙소사. 불면증 환자인 내가 숙면을 취하다니! 근 십년 만에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밥을 먹었는데, 에헤라디야! 이곳에 온 후로 더위를 먹었으면 먹었지, 식욕을 잃어버려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몰랐던 내가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내고, 한참 자라야 할 초등학교 1학년생 아들의 밥그릇에 손을 뻗어 나눔의 미학을 설파하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다이빙 후에 마시는 맥주 맛은 그간 사망한 줄 알았던 내 혀의 미뢰가 왕성하게 살아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아아, 가장 감동적인 포인트는 태아 시절 이후로 사라졌다는, 신화처럼 상상의 영역에서만 존재해 왔던 내 복근이 마침내 생후 최초로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와탕카, 지화자, 얼씨구! 이래서 인간은 보편적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타인의 의견을 들어야 하고, 세상의 취향을 귀히 여겨야 한다.

좀 더 따져보니 다이빙을 한 후 가장 소중하게 다가왔던 것은 미처 몰랐던 세계가 명백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땅 위에서는 상상조차 못 했던 거대한 바위, 산호초, 형형색색의 생물체들이 살아가는 또 하나의 우주가 우리의 발밑에 가라앉아 있었다. 그 심원하고 고혹적인 세계 앞에 공기통이 없으면 숨조차 한 모금 쉴 수 없는 나라는 미약한 인간이 존재한다. 그 사실이 두려우면서도 내가 모르는 세계가 여전히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는 사실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래서 내가 무지하다는 것이, 동시에 알아가야 할 세계가 아름답게 존재한다는 사실이 더없이 고마워진다.

최민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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