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북한의 보이지 않는 전쟁
북한은 안정적인가. 지금 같은 체제가 지속될 수 있을까.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수시로 미사일을 쏘아대는 북한은 겉으로 보기엔 안정적이다. 미국의 비핵화 압박에 오히려 핵무기 생산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겠다고 받아칠 뿐 아니라 최근에는 핵 무력 강화 정책을 헌법에 명시할 정도로 체제 유지를 자신하는 듯 보인다. 수령체제라는 강고한 이념에다 강력한 권력 유지 기제를 구축했기 때문에 북한이 변할 가능성은 없다는 전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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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겉모습 안정돼 보이지만
내부선 시장과 정치 심하게 충돌
상부와 하부구조가 전쟁하는 양상
이 결과에 따라 체제 운명 갈릴 듯
」
그러나 북한 내부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다르다. 정치체제와 경제 현실 사이 모순이 최고 수준이다. 사회주의 역사를 통틀어 지금 북한만큼 정치와 경제가 대립 구도를 형성한 적은 별로 없었다. 수령체제를 근간으로 한 북한 정치제도는 사회주의 내에서도 가장 경직적이다. 반면 밑으로부터의 시장화는 사회주의에서 전례가 없을 만큼 진전돼 있다. 극단적으로 수직적인 정치제도와 시장이라는 수평적 제도 사이의 충돌이 체제 취약성의 뿌리다. 수령체제는 시장경제를 배격한다. 그러나 시장은 수령체제를 잠식한다. 김정일이 2009년 화폐개혁을 통해 시장을 정치에 복속시키려 한 시도가 1차전이었다. 이제 김정은이 정권 대(對) 시장의 2차전을 벌이고 있다. 북한이 밖으로 보여주는 거침없는 행동은 오히려 내부 취약성을 감추고 보완하려는 절박한 시도다.
수령체제는 주민의 완전한 복종을 요구한다. 수령체제가 지속되려면 주민을 지시에 순응하는 수동적 인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각종 정치 학습으로 세뇌하고, 배급제로 관리하며, 지도자를 우상화해 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주민의 존재 이유도 최고 권력과 수령체제의 옹위에 있다. 다른 사회주의에선 당(party)이 최고 권력기관이었지만 북한에선 최고 권력자의 명령을 집행하는 조직에 불과하다. 핵도 수령체제의 산물이다. 외부 세력이 최고 권력자를 겨냥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주목적이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주민 희생도 감내해야 한다. 북한 정치이념에서는 수많은 주민의 굶주림보다 한 명 권력자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
반면 시장은 주민을 능동적, 자율적 인간으로 변모시킨다. 1990년대 이전의 북한 주민은 위에서 내린 결정을 받들어 행하던 존재였다. 그러나 시장이 대세가 되자 주민은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자로 승격했다. 시장에서는 김정은이 아니라 주민이 대세다. 스스로 돈 벌 방법을 찾고 장사와 사업을 위해 인맥을 구축한다. 큰돈을 벌면 권력자도 아쉬운 손을 내민다. 가치관도 달라졌다. 외국에 출장 간 고위 관료가 출장 내내 공무는 거들떠보지 않고 북한에 돌아가서 사업할 아이템을 찾아다녔다는 일화도 있다. 주체사상은 점차 힘을 잃어가고 그 자리를 돈이 차지한다. 기강도 해이해졌다. 불확실한 가운데 결정할 일이 많다 보니 점집을 찾는 이들이 급증했다.
김정일은 화폐개혁을 통해 시장을 없애려 했지만 완패했다. 2000년대 중반 그는 시장이 자본주의의 서식처라며 관료에게 단속을 지시했다. 그러나 관료와 주민 사이 뇌물을 고리로 한 관경(官經) 유착은 이 지시를 무력화했다. 좌절한 김정일은 구권 100원을 신권 1원과 바꾸게 하면서 일정 금액 이상은 교환해 주지 않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시장으로 들어가는 돈을 줄여 시장을 없애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생존이 어려워진 주민과 관료의 반발이 거세지자 다급히 후퇴했다. 총리가 인민에게 사죄하고 다시 시장 활동을 묵인했다.
2019년부터 시작된 김정은의 반(反)시장 전쟁은 훨씬 조직적이다. 코로나 상황을 이용하고, 정권의 보이는 손을 숨기면서, 시장을 서서히 질식시키려 한다. 상업, 무역, 금융을 국가가 주도하여 스탈린식 경제체제로 돌아가려 한다. 먼저 시장이 아니라 국가가 식량 판매를 독점해야 한다며 양곡판매소를 설치했다. 협동농장에서의 식량 수매와 외국에서의 수입을 국가가 전담하고 이를 양곡판매소에 공급함으로써 개인 밀수와 시장 판매를 줄이려 한다. 또 환전상을 단속해 외화 사용을 금지한다. 이 시도가 성공해 주민이 원화만 사용하게 된다면 시장은 힘을 잃고 국가의 경제장악력은 커진다. 식량뿐 아니라 소비재를 국영상점에서만 살 수 있게 하고 국가가 무역마저 독점하면 시장은 사라진다. 나아가 주민이 양곡판매소와 국영상점에서 지출한 돈을 은행에 예치하고 이를 기업의 대출 재원으로 삼으면 사회주의 금융이 회복된다. 마르크스를 빌자면 상부구조인 정치가 하부구조인 경제를 바꾸려는 시도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권력을 유지하려는 독재자와 생존을 갈망하는 주민 사이 거대한 충돌이 북한에서 진행 중이다. 이 결과에 따라 북핵 문제뿐 아니라 체제 유지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북한은 겉만 봐선 모른다. 안과 밖, 전체를 봐야 한다. 정치와 군사, 경제와 사회를 연결해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정책을 세워야 한다. 지력(智力)이 없으면 전략이 나올 수 없다.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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