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법부도 빨아들인 ‘정치 블랙홀’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지난 6일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35년 만에 부결시켜 사법부 수장 공백 상태의 장기화가 우려된다. 앞서 지난달 27일 법원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관련 의혹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대장동과 백현동 및 대북송금 의혹 관련자 24명이 이미 구속된 상황에서 정점에 있는 것으로 의심받는 이 대표에 대한 영장 기각은 법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 6년간 김명수 대법원 체제에서 만연했던 사법의 정치화에 따른 산물이 아닌지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무엇보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민의 사법 불신이 더 심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유창훈 부장판사는 기각 결정문에서 혐의를 입증할 확실한 물증도 없이 심증과 정황증거만으로는 구속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결정이 공정과 형평을 담보하고 법익 형량의 원칙과 형평성의 원칙에 부합하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차제에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은 개인별 편차가 클 수 있는 단독 판사에게 맡기지 말고 합의제 영장심사제도를 도입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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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관의 독립성·중립성 흔들려
의석을 무기 삼은 거야의 ‘뗏법’
법원도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야
」
정치적 찬반 논란이 있어도 이 대표 관련 의혹 사건은 검찰이 신속하게 기소하고, 법원은 신속한 재판을 진행하면 될 일이다. 오래 질질 끌다 보니 마치 이 사건이 특별한 정치 이슈인 것처럼 오해받고 있다. 더군다나 민생을 외면한 채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정치 블랙홀은 바람직하지 않고 비정상적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출범한 김명수 대법원 체제 6년간 사법부의 독립성·중립성이 크게 흔들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정 정파나 이념에 경도된 판사들이 정치 사건에 대해 편향된 재판을 쏟아내는 바람에 어느 기관보다 신뢰받아야 할 사법부를 가장 불신받는 조직으로 만들었다. 특히 조국 일가 비리, 윤미향 비리, 울산시장 선거 비리 등 김명수 사법부의 선택적 재판 지연은 결국 국민의 권리 보호를 소홀히 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정의 수호의 보루인 사법부의 권위를 추락시켰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듯 정치권의 뗏법이 합법과 적법을 몰아내고, ‘법의 지배’인지 ‘법에 의한 지배’인지 분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법질서가 엉망진창이다. 힘의 논리를 앞세운 거대 야당이 의석수를 무기 삼아 자의적으로 국회를 운영함에 따라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위헌 결정이 나온 ‘대북 전단 금지법’을 비롯한 반헌법적 입법을 남발하고 국무위원 해임건의안과 탄핵 카드로 정치를 실종시키고 있다.
정치는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는 권력작용이지만, 반드시 합법적 절차와 수단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정치는 법을 통해 이뤄지고 정치의 작용은 법의 실행으로 나타난다. 법은 국가 권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하지만, 법이 정치권력에 종속되면 법의 규범성보다 사실적 권력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정치 만능이 되고 정치가 불신받게 된다. 말하자면 정치의 불신은 법의 불신으로 이어진다.
정치가 법의 통제를 벗어나거나 법 위에 군림하는 요즘의 정치 현상은 매우 우려스럽다. 국회의원이 법을 우습게 여기고 뗏법을 동원하면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다수파의 전횡으로 일방적·자의적 입법 행위를 자행하는 지금의 국회 모습은 기형적이다.
정치가 법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 세상에서 정의는 실현되기 어렵고 불공정과 몰상식만이 독버섯처럼 퍼져갈 뿐이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 정치가 법을 복종시키려 하고 뗏법을 앞세워 법치를 무너뜨리는 일그러진 여의도 풍경은 일소해야 한다.
법원은 신속한 재판으로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법부가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늑장 재판을 일삼고, 법관이 헌법·법률 및 양심이 아닌 개인적 성향이나 이념 편향성에 따라 튀는 재판으로 사법 불신을 조장하는 것은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
사법의 정치화를 막을 사법부 독립과 사법 개혁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정치에 종속된 사법부는 국민의 권리와 인권을 지키는 사법부로 거듭나야 한다. 진영 논리에 길든 김명수 대법원의 구태에서 벗어나 사법부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복원하는 일이 시급하다. 법을 무시하는 여의도의 행태가 바뀌지 않으면 내년 총선에서 유권자가 응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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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상 동국대 법대 명예교수·전 한국법학교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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