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한국의 ‘가결 오적’과 미국의 ‘게이츠 8’
한국도 어지럽지만 미국 정치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지난 3일 공화당 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이 당내 8인의 반란표(‘게이츠 8’)로 의장직에서 쫓겨난 뒤 출당, 의원직 제명 요구 등 정치 보복 공세가 계속되고 있다. 공화당 주류파 의원들과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 같은 원로까지 가세한 정치 보복의 표적은 단연 매카시 해임결의안(Motion to vacate)을 발의한 맷 게이츠 하원의원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에 대규모 공격을 받은 국제적 위기 상황에서 미 의회를 마비시키는 멍청한 짓을 저질렀다는 건 점잖은 축에 드는 비판이다. 미 법무부가 2년여 수사 후 증거 신빙성 문제로 기소를 접은 게이츠의 과거 미성년자 성매매 의혹을 끄집어내 인신공격 수준의 집단 린치를 하고 있다.
한국 상황과 똑같지 않은가. 설훈·이상민·이원욱·김종민·조응천 등 더불어민주당 5명 의원은 지난달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에 가결표를 던지는 해당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강성 지지자 5만7000여 명의 징계 청원에 따라 지도부 답변을 기다리는 상태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이미 “당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한테 공천을 줄 수 없다”고 공언했다.
게이츠 의원은 8일 NBC방송에 나와 “설사 의원직을 잃더라도 매카시 전 의장을 해임한 건 ‘절대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매카시가 연방부채 상한을 올리는 상임위 법안 심사를 안 거치고 바이든 행정부와 ‘임시 예산안’으로 타협한 데 대해 통상 의회 절차(Regular Order)를 회복하려 했다는 명분이다. 비명계 의원들이 비민주적인 보복 위협 앞에서 “국회의원은 (정치적 유불리나 당리당략이 아니라)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적힌 헌법 46조를 따랐다고 하는 항변과 비슷하다. 민주주의 종주국 미국에서 다수당 대표 격인 하원의장이 해임된 일 자체가 234년 의회사상 처음이다. 한국에서 제1야당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됐다가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돼 기사회생한 것도 사실 초유의 일이다.
정치가 문제를 해결하긴커녕 문제의 진원이 되길 거듭하면 국민은 정치 참여로 무언가 바꿀 수 있다는 기대(정치효능감)를 점점 잃는다. 실망한 유권자는 기존 정당체계(양당) 밖 새로운 인물이나 세력에 눈을 돌리게 된다. 미국에선 2016년 트럼프 당선과 2020년 낙선 직후 2021년 1월 6일 미 의회 점령에 이어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의 부활로 현실화하고 있다. 한국에선 내년 4·10 총선을 시작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벌써 궁금하다.
정효식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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