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량 줄였다고 직장 내 괴롭힘 신고…선 넘은 ‘을의 갑질’
#1. 중간관리자로 일하는 직장인 A씨는 부하 직원 B씨가 잦은 실수로 팀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자, 업무량을 줄이고 낮은 난이도 업무를 배정했다. 하지만 B씨는 “업무 역량을 무시하고 단순 업무만 주며 실적을 쌓을 기회는 주지 않는다”며 상사 A씨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다.
#2. 평사원 C씨는 “지나치게 업무를 감시했다”는 이유로 신입직원 D씨로부터 신고를 당했다. 하지만 C씨는 단순히 사무공간 구조상 밖으로 나가기 위해 D씨의 옆을 항상 지나갔을 뿐이라며 억울해했다. C씨는 사측의 요구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사과했지만, 이후 D씨로부터 피해보상금 요구까지 받아야 했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갈수록 심화되는 가운데 반대급부로 허위 신고 또한 남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위 신고가 많아질수록 정작 ‘진짜 피해’를 가려내기 어려울 우려가 크다. 현행 괴롭힘 규정을 보다 명확하게 고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온다.
10일 한국노동연구원의 ‘사업장의 허위괴롭힘 신고와 진(眞)괴롭힘 신고 대응사례 비교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은 7개 사업장에서 각각 동시에 발생한 허위 괴롭힘 신고와 진짜 괴롭힘 신고의 양상을 비교 분석했다.
서 위원이 분석한 7건의 허위 신고 대상은 대부분 여성이나 평사원 등 직장 내 입지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근로자였다. 반면 진짜 신고 7건은 부서장이나 임원 등 고위직이거나 사용자와 연줄이 있는 직원이 대상이었다. 모두 신고인과 회사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이렇다 보니 같은 사업장인데도 처리되는 방식은 달랐다. 허위 신고의 경우 사과를 강요당한 C씨 사례처럼 사업장은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고 피신고인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반대로 진짜 신고에 대해선 무마를 시도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등 최대한 사건을 축소하고 가해자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이런 가운데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첫해 2130건이었던 신고는 2020년 5823건, 2021년 7774건, 지난해 7814건으로 매년 증가했다.
이에 서 위원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규정을 엄밀하게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괴롭힘 법적 정의는 모호하며 주관적 판단기준만을 갖추고 있다”며 “이렇다보니 허위 신고를 괴롭힘 성립으로, 진짜 신고를 미성립으로 판단해도 ‘절차를 잘 지켰다’는 이유로 사업장은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기업들도 허위 신고를 줄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그대로 방치했다간 회사 분위기를 흐리고,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어서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의 이명지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장은 “허위 괴롭힘 신고를 방치하고 일부 직원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준다면 조직 사기를 떨어트리고 기업의 퇴사율이 높아질 수 있다”며 “조직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선 확실한 인사 원칙을 세우고 이에 대응할 사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선 괴롭힘 신고인에게 합리적인 초기 증거를 제시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여하고, 대신 ‘괴롭히지 않았다’는 입증은 피신고인이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신고 요건을 엄격하게 두되, 사실로 드러나면 확실하게 처벌하는 방식으로 허위 신고를 차단한다. 세계 최초로 직장 괴롭힘 방지법을 시행한 스웨덴은 ▶근로자 개인 및 가족 비방 ▶고의적인 업무 관련 정보의 비공유 ▶고의적인 업무성과 방해 ▶고립 유발 등 8가지 괴롭힘 유형을 법령에 명시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사업주와 관리자의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세종=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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