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올라 손해일까? 오히려 기회일까? “또 내년?” 줄줄 밀리는 강남 아파트 분양
고분양가 논란을 빚은 단지들이 잇따라 완판되는 등 청약 시장 온기를 되찾은 모습이다. 반면 연초부터 기대를 모았던 서울 강남권 아파트 분양 일정은 줄줄이 연기되고 있다. 자잿값, 인건비 상승으로 공사비가 급등하면서 당초 올해 분양 예정이던 강남권 단지들이 연말이나 내년으로 일정을 연기하는 상황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 5일까지 서울 강남에서 분양한 단지는 하나도 없다. 올 하반기 강남권에서 분양 예정이었던 단지는 10월 송파구에서 분양하는 ‘힐스테이트e편한세상문정(1265가구)’을 시작으로 5곳이지만 나머지 4곳은 분양을 진행할지 미지수다. 애초에 올해 강남권에서 분양 일정이 잡혀 있던 단지는 9곳이었다. 4곳은 내년으로 밀렸고 나머지 단지도 연내 분양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연초 계획보다 분양 물량 87% 줄어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펜타스(641가구 중 292가구 일반분양)’는 최근 래미안 홈페이지를 통해 분양 일정을 내년으로 변경 공지했다. 10월로 계획됐던 일정이 12월로 미뤄졌다 아예 내년으로 넘어갔다. 당초 분양가상한제를 피하고자 지난 7월 입주자 모집 신청을 한 뒤 9월 중 입주자 모집 공고를 내고 분양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조합은 분양가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분양보증서를 발급받지 못했다. “보증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분양을 반려하겠다”는 게 서초구 입장이라 분양도 미뤄지게 됐다.
10월 분양 예정이었던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메이플자이(3307가구 중 162가구)’도 내년을 기약하게 됐다. 공사비 증액 문제로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커진 탓에 분양 일정이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11월 분양 예정이던 방배동 ‘아크로리츠카운티(707가구 중 141가구)’도 내년 하반기에나 청약에 돌입할 전망이다. 또 지난 6월 같은 동네에서 분양 예정이던 서초구 방배동 ‘래미안원페를라(1097가구 중 465가구)’는 조합원 재분양 신청, 관리처분변경인가 등으로 연내 분양 계획이 무산됐다. 빨라야 내년 상반기 일반분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강남구 청담동 청담삼익을 재건축하는 ‘청담르엘(1261가구 중 176가구)’ 역시 원래는 지난 7월 분양 예정이었지만 연내 분양이 사실상 물 건너갔다. 청담삼익 재건축 조합은 지난 7월 조합원들에게 견본주택을 보여주고 조합원 분양을 진행한 뒤, 이후 일반분양에 나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조합원 분양 과정에서 조합원 간 이견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조합장이 사퇴하면서 절차가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새 조합장은 오는 10월 13일 선출할 예정이지만 현재로서는 중단된 조합원 분양 절차부터 진행해야 하는 만큼 내년 분양이 유력시된다. 그사이 2021년 12월 착공한 청담르엘은 바닥 기초 공사가 끝났다. 현재 지상으로 골조 공사가 이미 진행 중이고 공정률은 30%가량으로 알려졌다.
방배5구역을 재건축하는 ‘디에이치방배(3065가구 중 1686가구)’는 단지 내 초등학교를 지으려던 계획이 무산되고 다른 공공시설(체육시설)을 짓도록 정비계획안이 변경되면서 올해 안에 일반분양하기는 어려워졌다. 어쨌든 이미 2026년 8월 입주를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인 만큼 분양 채비를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방배6구역을 재건축하는 ‘래미안원페를라’ 역시 당초 올해 분양하려 했지만 조합원 재분양 신청, 관리처분변경인가 절차 등으로 내년 일반분양을 기약하게 됐다.
이외에 강남구 도곡동 도곡삼호를 재건축하는 ‘래미안레벤투스’와 송파구 신천동 진주아파트를 재건축하는 ‘잠실래미안아이파크’의 경우 아직 일정 변경을 하지 않았지만 내년 분양이 꾸준히 논의되고 있다.
이에 따라 연내 분양이 유력한 단지는 송파구 문정동 136번지를 재건축하는 힐스테이트e편한세상문정과 강남구 대치동 ‘디에이치대치에델루이(구마을3지구 재건축)’ 2곳이다. 일반분양으로 나올 물량은 각각 296가구, 79가구다. 연초 예상됐던 강남권 일반분양 물량(9개 단지 2322가구)보다 87%가량 줄어든 셈이다.
분양가 올릴 수 있을까 만지작?
강남권 재건축 조합들이 잇따라 분양을 연기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설계 변경, 조합 내부 사정, 공사비 증액 등 절차상 문제가 원인으로 꼽힌다. 다만 업계에서는 그 이면에 기존 계획보다 분양가를 좀 더 높여 받으려는 조합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통상 조합은 일반분양가를 최대한 높여 받길 원한다. 분양 수익이 클수록 조합원 부담은 줄어드는 구조여서다. 그런데 최근 공사비가 급등한 반면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는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투기과열지구라 마음대로 분양가를 높이지 못한다. 다만 최근 집값이 다시 반등하는 추세인 만큼 분양 시기를 늦출수록 분양가가 오르고, 분양가가 오르더라도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아 주변 시세보다는 여전히 저렴하기 때문에 일반분양을 진행해도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급등한 공사비를 보전하기 위해 분양가를 올리려는 조합이 많다”며 “최근 고분양가 논란을 빚고도 완판된 단지가 여럿 나온 만큼 상대적으로 주거 환경 좋은 강남권에는 청약 수요가 충분할 거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청약 수요가 충분할 것으로 보는 데는 분양가상한제 외에도 이유가 있다. 전용 85㎡ 이하 물량에서 추첨제가 부활해서다.
과거 투기과열지구에서 전용 85㎡ 이하는 가점제(100%)로만 청약자를 가렸고, 전용 85㎡ 초과 면적에서는 가점제 50%, 추첨제 50%가 적용됐다. 하지만 올 4월 1일부터는 투기과열지구에서 청약 제도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전용 60㎡ 이하에 추첨제 60%, 전용 60~85㎡에 추첨제 30%가 신설됐다. 대신 40~50대를 대상으로 중대형 평형 가점제 당첨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전용 85㎡ 초과 평형 가점제 비중이 기존 50%에서 80%로 늘었다.
분양가와 상관없이 중도금 대출도 받을 수 있다. 김광석 리얼하우스 대표는 “자금력 있는 젊은 층이나 1주택자에게도 강남권 단지를 분양받을 길이 열린 셈”이라며 “지난 2년 동안 강남 3구에서 공급된 새 아파트 물량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기다리던 청약 고가점자가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분양 시장에서는 강남·서초구 아파트 일반분양가가 3.3㎡당 6000만~7000만원대에 책정될 것으로 예상한다. 서울 재건축 단지 중 일반분양가가 가장 비쌌던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3.3㎡당 5653만원)’보다 높은 가격이다. 불어난 공사비가 반영된 전망치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시장 상황이 좋아진다고 가정했을 때 분양 일정이 늦춰지면 분양가가 3.3㎡당 수백만원 더 오를 수 있다”며 “수요자 입장에서는 자금 부담이 커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후분양할 경우 자금 마련 일정 빠듯
분양 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지고는 있지만 내집마련을 계획 중인 예비 청약자라면 입주자 모집 공고 전까지 부지런히 청약 자격 요건을 꼼꼼히 챙기는 시간을 번 셈이다.
청약 자격 요건을 꼼꼼히 챙겨야 하는 이유는 청약 부적격 판정을 받은 사람이 의외로 많아서다. 최근 3년 동안 5만명 넘는 사람이 희박한 확률을 뚫고 청약에 당첨되고도 청약 부적격으로 취소되는 낭패를 겪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부동산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6월까지 청약 당첨 후 부적격 판정을 받은 이는 모두 5만5763명이다. 올 1~6월(1628명)은 유독 분양 물량이 줄어든 영향이 있지만 부적격 판정자는 여전히 꾸준하게 나오고 있다.
문제는 부적격 판정을 받으면 그걸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부적격 당첨 사실이 드러날 경우 일정 기간 다른 청약 당첨이 불가능하다. 수도권이나 투기과열지구·청약과열지구에서는 당첨일로부터 1년(비수도권은 6개월) 동안 당첨될 수 없다. 단, 과거 청약에 당첨된 경험이 있다면 재당첨 제한 기간도 신경 써야 한다. 투기과열지구에서 공급되거나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주택에 당첨될 경우 당첨자 발표일로부터 10년 동안 재당첨 제한을 받는다.
그리고 당첨이 되더라도 분양 일정이 수차례 밀린 단지일수록 중도금·잔금 일정이 빠듯한 경우가 많다. 특히 공정이 60~80%가량 진행돼 아예 후분양으로 공급되는 단지는 더 빠듯하다. 선분양은 2~3년에 걸쳐 분양 대금을 내면 되지만, 후분양은 수개월 안에 목돈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후분양 단지의 경우 선분양에 비해 가격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분양 시점이 늦어진 만큼 공사 기간 동안 오른 비용과 시세를 분양가에 반영할 수 있어서다.
일례로 최근 공급된 ‘상도푸르지오클라베뉴(내년 3월 입주)’ 분양가는 전용 84㎡가 최고 13억9000만원대(3.3㎡당 3963만원)였다. 인근 역세권 단지인 ‘상도역롯데캐슬파크엘(2021년 입주)’ 전용 84㎡가 지난 6월 13억5000만원에 사고 팔린 점을 고려하면 주변 시세보다 비싼 편이다. 계약 후 중도금과 잔금을 치르기까지 6개월밖에 안 남아 자금 조달 일정도 빡빡하다.
강남권에서는 래미안원펜타스가 분양 일정이 내년으로 넘어가면 후분양할 가능성이 높은 단지다. 2024년 6월 입주를 앞두고 중도금·잔금 일정이 빠듯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공정률이 65% 수준이다.
이외에 강남권 단지가 기약 없이 연기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로또 청약’만 노리다가는 청약 기회를 써보지도 못하고 내집마련 계획이 틀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9호 (2023.10.11~2023.10.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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