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대박 나도 ‘배고픈’ 제작사들…온갖 재주 부려도 ‘돈폭탄’은 그들 몫

나건웅 매경이코노미 기자(wasabi@mk.co.kr) 2023. 10. 1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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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드라마 제작사가 돈 못 버는 이유

“최악이다.”

최근 K-드라마 제작 업황을 놓고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가 한숨 쉬며 토로하는 얘기다.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전 세계 어딜 가도 ‘오징어 게임’이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얘기를 들을 수 있는 요즘이라 더 그렇다. 히트작을 쏟아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위기’를 맞이했다는 K-드라마 제작사의 현주소가 어떻길래.

국내 주요 드라마 제작사는

스튜디오드래곤·콘텐트리중앙 ‘빅2’

먼저 K-드라마 제작업계 주요 업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는 ‘스튜디오드래곤’과 ‘콘텐트리중앙’ 양강 구도가 형성돼 있다. 양 사 모두 2022년 기준 연매출 규모가 6000억원을 넘어선다. 대부분 1000억원을 밑도는 다른 중소형 제작사와 덩치부터 다르다. CJ ENM 계열사 스튜디오드래곤은 tvN, 콘텐트리중앙은 JTBC라는 ‘캡티브 채널(계열사 채널)’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타사와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자체 채널 덕에 드라마를 편성,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하다는 얘기다.

양 사 모두 한 해에 20편이 넘는 드라마를 제작·방영한다. 다른 중소형 제작사는 보통 10개 미만에 그친다. 2022년 이후만 해도 화제작이 넘친다. 스튜디오드래곤은 ‘더 글로리’를 필두로 ‘소년심판’ ‘우리들의 블루스’ ‘일타 스캔들’ 등이 대박이 났다. 콘텐트리중앙은 ‘닥터 차정숙’ ‘킹더랜드’ 같은 자체 드라마를 비롯해 넷플릭스 ‘수리남’ ‘D.P.’, 디즈니플러스 ‘카지노’ 등 OTT 콘텐츠 등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중소형 드라마 제작사 중에서는 ‘에이스토리’ 활약이 두드러진다. 만드는 드라마마다 화제몰이에 성공하며 방영 채널 인지도를 크게 높인 전례가 워낙 많다. 지인해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과거 ‘시그널’로 tvN 시청자 수가 급증했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으로 국내외 넷플릭스 구독자가 크게 늘었다. 예능이기는 하지만 ‘SNL 코리아’로 쿠팡플레이가 본격 성장했고 ENA는 에이스토리가 만든 ‘우영우’에 이어 최근 ‘유괴의 날’까지 연달아 흥행하며 시청률은 물론 들어오는 광고의 질이 달라졌다”며 “우영우라는 글로벌 히트 IP도 있기 때문에 캡티브 채널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꾸준히 화제작을 내놓고 있는 증시 상장 제작사도 많다. ‘동백꽃 필 무렵’과 ‘국민사형투표’를 만든 팬엔터테인먼트, ‘보이스’ ‘보건교사 안은영’ 제작사 키이스트, ‘재벌집 막내아들’ ‘신병’ ‘시맨틱 에러’까지 줄줄이 흥행시킨 래몽래인 등이 대표적이다. 상장은 안 됐지만 규모가 큰 제작사도 여럿이다. 디즈니플러스 ‘무빙’ 제작사이자 영화 투자 배급사 ‘뉴(NEW)’의 자회사인 ‘스튜디오앤뉴’, SBS 자회사로 ‘펜트하우스’ ‘악귀’ 등을 만든 ‘스튜디오S’ 등이다.

드라마가 아무리 대흥행해도 제작사 수익은 제한적이다. 지식재산권(IP)이 제작사가 아닌 방송사나 OTT 플랫폼에 귀속되는 탓이다. 예를 들어 ‘오징어 게임’으로 넷플릭스는 제작비 대비 40배가 넘는 수익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제작사는 제작비 10% 정도만을 가져가는 구조다. (넷플릭스 제공)
IP는 방송사와 OTT가 ‘꿀꺽’

광고 침체·제작비 증가도 ‘악재’

이 제작사들이 만든 드라마만 해도 그 면면이 화려하다. 하지만 정작 이들 업체 실적이나 주가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먼저, 흥행작이 나와도 정작 제작사는 크게 돈을 못 버는 수익 구조 때문이다. 드라마 제작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국내 방송사 외주 제작이다. 방송사가 제작비 약 70%에 달하는 돈을 준다. 나머지는 PPL이나 협찬 등 드라마 제작사가 직접 영업을 통해 메운다. 제작사가 영업을 잘할수록 수익이 나는 구조다.

둘째는 OTT 오리지널 외주 제작이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같은 OTT가 제작비를 모두 댄다. 업계에서는 채널이 제작비 중 지원하는 비율을 ‘리쿱 비율’이라고 하는데, OTT 제작은 리쿱 비율이 110%를 넘는다. 제작비를 웃도는 돈을 준다는 얘기다. 일단 만들기만 하면 흥행과 상관없이 수익이 확실하기 때문에, 별도 영업을 통한 추가 수익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두 가지 모델 모두 수익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드라마가 아무리 대흥행을 기록해도 마찬가지다. 드라마에 대한 IP가 제작사에 없기 때문이다. 2차 저작물을 비롯한 부가 수익은 방송사와 OTT 플랫폼에 모두 귀속된다. 글로벌 흥행을 기록한 ‘오징어 게임’만 봐도 알기 쉽다. 넷플릭스는 제작비 253억원을 들여 1조2000억원이 넘는 수익을 냈다. 제작비 대비 40배가 넘는 수익률이다. 하지만 제작사는 제작비의 10%인 25억원 정도를 벌었다. 망해도 25억원, 흥해도 25억원이다.

이런 한계 때문에 최근 대부분 제작사가 지향하는 제작 모델은 세 번째다. 바로 ‘IP 보유 제작’이다. 드라마 제작 부담부터 IP를 활용한 추가 수익까지 오롯이 제작사가 가져가는 방식이다. 일단 제작비 전체를 투자한 뒤 방송사로부터 편성 수익, PPL과 협찬, 여기에 OTT 글로벌 방영권 등 해외 판권을 판매해 돈을 버는 구조다. 드라마 흥행이 저조할 경우 적자를 낼 수도 있지만 대박이 날 경우 수익 상단은 아예 열려 있다.

하지만 IP 보유 제작에도 문제가 있다. 대부분 제작사가 막대한 제작비를 감당할 만한 여력이 없다는 점이다. 최민하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IP를 보유하고 있어야 레버리지를 확대할 수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중소 제작사 입장에서는 킬러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제작비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최근 제작사들은 정말 자신 있는 일부 작품에 대해서만 IP를 보유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이어진 ‘광고 시장 침체’도 드라마 제작사에는 악재다. 대부분 제작사는 여전히 제작비 절반 가까이를 국내 방송사 편성 수익으로 감당한다. 그런데 이 방송사 편성 수익은 결국 광고주로부터 나온다. 경기 침체와 금리 인상 등으로 기업이 광고 예산을 줄이면서 방송사 실적이 악화되고, 방송사가 드라마 투자 규모를 줄이는 전개다. 결국 방송사는 리쿱 비율을 줄이거나 드라마 편성 계획 자체를 없앤다. 드라마 제작사 수익에는 치명적이다.

광고 시장 위축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한국방송진흥공사(KOBACO)가 매월 집계하는 ‘광고경기전망지수’를 보면 알기 쉽다. 해당 지수가 100이 넘으면 광고비를 늘리는 경향이, 반대로 100보다 작으면 광고비를 줄이는 경향이 있다.

2020년 9월 107.1이었던 지상파TV지수는 올해 8월 100.2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케이블TV는 105.9에서 99.8로, 종합편성TV는 104.9에서 99.5로 줄었다. 지인해 애널리스트는 “드라마 제작 시장은 거시경제 상황에 큰 영향을 받는다. 현재 제작은 완료됐지만 방영되지 않은 미방영 드라마, 즉 ‘재고 드라마’가 80개에서 100개 가까이 쌓여 있다”며 “특히 캡티브 채널을 아예 보유하고 있지 않은 중소형 제작사들은 상황이 더욱 힘들다”고 말했다.

제작비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상황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국내 드라마 회당 평균 제작비는 2010년 3억원 수준에서 지난해는 8억원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는 10억원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한 스튜디오 관계자는 “제작 현장에 주 52시간 근무제와 사전 제작 문화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제작 기간과 비용이 늘었다”고 말했다.

OTT 외주 제작 활성화의 부작용을 꼬집는 이도 많다. 익명을 요청한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아무리 많은 제작비를 들여도 수익이 보장되는 OTT 외주 제작이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유명 배우 출연료나 작가 대본료 시세 자체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랐다”며 “제작사 입장에서는 일단 드라마 제작비를 늘려야 더 많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구조인 만큼 도덕적 해이도 나타나고 있다”고 분위기를 들려줬다.

방송사나 OTT 플랫폼에 IP를 넘기지 않고 자체 제작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스튜디오드래곤이 제작한 시즌제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를 원작으로 하는 MMORPG ‘아스달 연대기: 아라문의 검(넷마블)’이 4분기 출시를 앞두고 있다. (넷마블 제공)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9호 (2023.10.11~2023.10.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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