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뒤 바다에서 서핑, 이런 초등학교 좋지 아니한가
[이준수 기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 작은 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면 학생 한 명 한 명이 전학 오고 전학 가는 일들이 의미심장해진다. 학급에서 함께 지내며 정들었던 아이가 떠나면 아쉬운 마음이야 어디서든 한결같지만, 서른 명이 되지 않는 강원도 시골에서는 학교의 존폐를 고민하게 만드는 문제인 것이다.
사람들은 공무원인 교사가 특정 학교가 사라진다고 왜 그렇게 고심하느냐고 묻기도 한다. 어차피 학교가 문 닫는다고 해도 다른 곳으로 인사 발령이 나지 않는가. 특별한 인연이 있거나, 모교가 아니라면 시골의 인구 감소로 인한 자연스러운 폐교 과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큰 틀에서 보면 지극히 맞는 말이다. 냉정히 말해서 공립학교 교사는 평생 '뜨내기 직장생활'을 하는 운명이 아닌가. 아무리 어떤 학교가 마음에 든다고 해도 4년 만기를 채우면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한다. 초빙 교사 같은 제도를 활용하거나, 다른 학교를 거쳤다가 다시 예전에 근무했던 곳으로 돌아오는 방법도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이지는 않다.
그렇지만 폐교 위기를 겪고 있는 학교와 관계를 맺고, 아이들과 동고동락하다 보면 이야기가 미묘하게 달라진다. 모든 학교에는 나름의 역사가 있고, 대부분 수십 년을 훌쩍 넘겨 지역의 구성원과 밀접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일단 어떤 학교 소속의 교사가 되면 오랜 시간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사람들을 이어준 학교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는다.
정말 멋진 학교
내가 근무하는 곳은 양양군 하조대 해변 근처의 작고 아름다운 학교다. 바닷가지만 어업보다는 관광업으로 더 유명한 동네의 학교에서는 스물네 명의 학생들이 생활하고 있다. 발령받기 전에는 속초에 방문하는 길에 편의점에 들르느라 딱 한 번 차를 세운 적 있는 동네일 뿐이었다. 나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고, 심지어 1지망 2지망으로 지원한 학교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첫눈에 이곳이 정말 멋지고 마음에 들었다.
아파트촌 대신 숲이 학교를 감싸고, 인조 잔디 대신 진짜로 물과 햇빛을 먹고 자라는 천연 잔디가 운동장을 촘촘히 뒤덮고 있다. 주위의 차량 통행은 적고, 짭조름한 바닷바람은 어딘가 사람을 느긋하게 하는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 하조대 해변에서 이루어지는 생존 수영과 서핑 수업 |
ⓒ 이준수 |
의무 교육의 일환으로 누구나 초등학교를 졸업해야 한다면 인생의 초반 몇 년을 훌륭한 자연환경 속에서 보내는 것도 참 좋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샘솟는 학교는 오랜만이었다. 이러한 낭만적 감상은 1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실용적 관점'에서도 시골학교가 나쁘지 않다는 판단으로 이어졌다.
사교육비는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공통적인 고민이다. 두 아이의 아빠인 나를 비롯해서, 기회가 되면 해주고 싶은 것이 많은데 주머니 사정으로 망설이게 되는 경우가 꽤 있다. 그런데 시골 학교에서는 상당수 교육 활동이 무료다.
방과 후 수업, 5-6학년이 함께 가는 수학여행, 수련 활동, 우유 급식까지 모두 공짜로 제공된다. 학교 내에 그물이 설치된 골프연습장이 있고, 일 년에 몇 번씩 인근 리조트 골프장으로 필드 체험을 하러 간다. 올해는 양양 공항 인근의 회원제 고급 골프장에 다녀왔다.
서핑도 빼놓을 수 없다. 하조대와 인구, 죽도, 남애에 이르기까지 양양군 남부의 해안가는 서퍼들의 낙원이다. 그래서 해안가 학교 애들은 매년 서핑을 배운다. 일회성 체험이 아니라 수업 시간으로 따지면 10차시가 넘는 제대로 된 강습이다. 물론 서핑 슈트 대여부터, 전문가 강습에 드는 비용은 없다. 그 밖에도 여러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일일이 다 적기에는 지면이 한정적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시내의 큰 학교에서 근무하던 나에게 이러한 혜택은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사실상 특혜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었다. 스쿨버스가 읍내 지역까지 두루 운행을 하고 있어, 의지만 있으면 주소지와 상관없이 시골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점도 신기했다.
시간을 벌기 위한 노력
그럼에도 우리 학교는 학생 수 걱정을 하고 있다. 학생의 삼분의 일 가량을 차지하는 육 학년이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신입생은 그만큼 많지 않다. 전국 단위에서 수도권 집중화 현상이 심각하듯, 여기에서도 읍내 지역에 생활 인프라와 학원가가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편의 시설을 갖춘 신축 아파트 상당수가 지역 중심가에 들어서 있다. 일자리와 정주 여건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시골 동네의 학교들은 저마다 생존을 염려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이를 키울 환경이 되지 않으니 읍내로 이사를 가고, 남은 학교는 더 어려워지고, 이로 인해 너무 작은 학교를 기피하는 학부모들이 큰 학교로 몰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 교장 선생님이 제작한 학교 홍보물 |
ⓒ 이준수 |
거주지 이전의 자유가 있는 사람들에게 학교를 강요할 수 없다. 작은 학교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노력할 방법은 학교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도록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자녀가 충분히 괜찮은 교육적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학부모와 학생을 설득하는 것이다.
지방 소멸의 큰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언젠가 분교화가 진행되고 결국 통폐합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학교가 남아있는 한 시간을 벌기 위한 노력 정도는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수학여행 마지막 날 돌아오는 버스에서 교장 선생님은 내게 태블릿 PC를 내미셨다. 선명한 노란색으로 빛나는 화면에는 학교 홍보 리플릿이 띄워져 있었다. 선생님들이 바쁘실까 봐, 직접 내용을 추려서 디자인 작업을 맡기셨다고 했다.
내심 놀랐다. 교장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줄 짐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교장 선생님이야말로 평교사에서 교감을 거쳐 이제는 교직 생활의 막바지 아닌가.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결의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는 승진을 하고 싶은 욕구도, 별다른 준비도 하지 않고 있으니 평교사로 쭉 살 것이다. 나도 퇴직을 몇 년 앞두고 교장 선생님처럼 엄청난 열정을 발휘할 수 있을까. 결코 알 수 없는 영역이지만, 회의감과 좌절감에 빠져 있는 모습보다는 뭐라도 해보려고 에너지를 내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학교 리플릿'을 보면서 내렸다.
골프? 서프? 우리 학교에서는 모두 올 프리. 초등학교 시절까지만이라도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을 쌓으며 자연과 가까이 지내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하조대 옆 작은 학교를 찾아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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