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에스컬레이터 점령한 중국산…1년째 꿈쩍 않는데 방법이 없다

이수기 2023. 10. 10.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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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KTX 광명역 역사. 역사 내 곳곳의 에스컬레이터 옆에는 ‘침수 복구 후 가동 중인 승강기입니다’라는 안내 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지난해 7월 침수 피해를 당해 1년 이상 ‘스톱’됐다가 최근에야 가동을 재개했다. 당시 고장 났던 에스컬레이터만 30여 기, 1년 이상 가동을 중단했던 에스컬레이터는 10기가 넘는다. 역사 측은 장기간 에스컬레이터가 멈춰섰던 이유에 대해 답하지 않았지만, 업계에는 부품 수급 어려움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당신의 ‘라스트 마일’이 위험하다


다시 가동 중인 에스컬레이터들은 삐걱거리는 소음과 진동이 느껴졌다. 이날 만난 여행객 김영희씨는 “기분 탓인지 떨리는 느낌이 들어서 찜찜하다”고 불안해했다.
지난해 침수 피해를 입은 광명역사 내 에스컬레이터의 모습. 에스컬레이터 옆 '침수 복구 후 가동 중인 승강기'라는 안내 입간판이 서 있다. 이수기 기자


일상 속 ‘라스트 마일(Last Mile)’이 위협받고 있다. 라스트 마일은 개인이나 상품이 이동하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물리적 공간을 뜻한다. KTX 광명역 역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여행의 시작점이자 도착점인 라스트 마일이다.

광명역 에스컬레이터는 설치 당시 입찰을 통해 저렴한 제품과 부품을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사용 중 긴급한 유지‧보수가 필요한 상황이 발생했지만 제때 조치가 안 된 것이다. 2021년 중국산 요소수 대란 같은 상황이 ‘라스트 마일’ 모빌리티 현장에서도 발생한 셈이다.

업계에 따르면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무빙워크 등 국내에 설치된 승강기 대수는 83만1208대다. 연평균 5만 대 가까이가 새로 설치돼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다. 인구 밀도가 높고, 고층 빌딩이 많은 영향이다. 하지만 최근 지하철·철도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로 인한 사고는 대부분 중국산 제품을 수입해 설치한 현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개는 경쟁 입찰을 통해 수주한 제품이다.

차준홍 기자


업계에 따르면 엘리베이터를 비롯한 ‘이동 산업’ 부문 기자재는 중국산이 국산보다 30% 이상 저렴하다. 국내에서 생산해선 버티기 힘들다는 얘기다. 국내 1위 엘리베이터 업체인 현대엘리베이터조차 범용 제품의 국내 생산을 포기한 상태다. 그동안 유일하게 국내 생산을 고집해 오다가 2014년 에스컬레이터 생산을 중국 현지법인으로 넘겼다. 이 회사는 전 세계 엘리베이터 시장에서 7~8위권이다. 현재는 수출용의 경우 일부 초고속 엘리베이터만 국내에서 생산할 뿐 일반 엘리베이터는 중국에서 만들어 전세계 50여개 국으로 판매 중이다. 다만 내수용 엘리베이터는 전량 국내에서 생산한다.


지하철·철도에 중국산 에스컬레이터 90% 이상


문제는 광명역사처럼 시민 부담과 불편을 초래한다는 사실이다. 지하철·철도를 비롯한 공공 부문 승강기는 중소벤처기업부 고시에 따라 중소기업자 간 경쟁 제품으로 지정돼 있다. 자체 생산 시설이 없는 중소기업은 중국 제조사에서 수입해 현장에 설치하고 있다. 최근 10년 새 지하철 역사 내 승강기 안전사고는 6건이 발생해 100명가량이 부상했다. 주요 역사 시설 내 중국산 에스컬레이터 설치 비중은 전체의 90% 이상인 6000여 대에 이른다.

위기감을 느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업도 시작되고 있다. 서울경기북부엘리베이터사업협동조합은 핵심 부품인 제어반과 보조 브레이크 등의 국산화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제어반을 중소기업 등에 공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아직은 중국산의 가격 경쟁력에 밀려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반도체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일상의 삶에 필요한 산업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며 “특히 시민 안전과 직결되는 공공 영역에서는 더욱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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