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 극복기가 '대박 웹툰'으로…루나파크 '세입자 호러' 이유있는 흥행
"결국엔 재난을 맞닥뜨린 평범한 사람이 견뎌 나가는 이야기예요. 전세 사기라는 소재만 놓고 보면 특수한 이야기지만 보편적으로 읽히길 바랍니다."
『루나의 전세역전』(세미콜론)은 카피라이터 겸 웹툰 작가 홍인혜(41)가 전세 사기를 당하고 극복하기까지 3년 간의 지난한 경험을 풀어낸 만화 에세이집이다. 전세로 살던 집에 "말로만 듣던 빨간 딱지"가 붙고, 집주인의 세금 체납으로 집이 공매에 넘어가고, 직접 공매를 공부해 집을 낙찰받기까지의 '환난 해결 일지'를 꼼꼼히 담았다. 지난달 단행본을 펴낸 저자를 지난달 말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홍씨는 "나와 같은 일을 겪지 않은 사람에겐 (사기 예방) 정보가 되길, 나와 같은 일을 겪고 있는 사람에겐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직접 겪은 전세 사기 사건의 전말을 만화로 그렸다고 했다. '세입자 필독서'로 입소문을 타며 포털사이트 연재 제안도 들어왔지만 자신의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서 무료로 공개하는 방식을 고수했다. "더 많은 사람이 웹툰을 보고 정보를 얻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총 26편으로 구성된 '루나의 전세역전'은 2021년 6월 공개돼 지금껏 약 500만 뷰를 기록했다.
"등기부 등본과 계약서를 꼼꼼히 챙겼어요. 전입 신고, 확정 일자도 제때 받았고요. 집주인과 중개사가 '정부에서 나오신 분 같다'고 말할 정도였죠." 그는 '허술함'이나 '어리숙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빚이 있긴 하지만 소액이니 괜찮다"거나 "보증금으로 근저당권을 말소하겠다"는 중개인이 있었지만 처음부터 아예 빚이 없는 집을 찾았다. 점심시간 끼니를 거르며 부동산 중개소를 돌았다.
꼼꼼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그였지만, 허술한 전세 제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집주인은 억 단위의 양도세를 내지 않은 악성 체납자였다. 세입자의 권리를 보호해준다는 전입 신고와 확정 일자도 소용없었다. 당시는 집주인이 세금을 체납한 경우 집이 경매로 팔리더라도 그 돈으로 세금부터 변제했다. 세입자의 돈은 우선 순위에서 밀렸다. 집주인이 세금을 체납하면 할수록 가산세가 쌓여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이 줄어든다. 홍씨는 "초고액 택시를 탄 듯 매일 남의 가산세에 전세금이 까이며 무기징역을 사는 기분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상황은 해결될 듯하다가도 나빠졌다. 첫 경매에서 집이 바로 팔렸다. 매수자가 낸 돈으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었지만 집주인이 '헐값에 팔 수 없다'며 공탁금을 걸고 경매를 중단시켰다. 그렇게 2년이 흐르며 가산세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더는 끌려다니지 않겠다. 이 지옥문은 내가 닫겠다'는 심정이었어요. 직접 공매를 공부해 집을 낙찰받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등기를 쳤다. 전세 보증금을 날릴까 전전긍긍했던 시간도 끝이 났다.
그렇게 긴 터널을 빠져나온 게 2018년, '루나의 전세역전' 연재를 시작한 것은 2021년의 일이다. "압류 딱지가 붙고 공매 낙찰을 받기까지 꼬박 3년이 걸렸어요. 그 시간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해결이 된 후에도 바로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어요. 시간이 좀 흐른 뒤에야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됐습니다. 때마침 창작자로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일까' 고민하기도 했고요."
뜻 깊은 변화도 있었다. 집주인의 세금 체납으로 주택이 경매나 공매로 넘어갈 경우 밀린 세금보다 세입자 전세보증금을 우선 변제하도록 법이 바뀌었다. 세입자는 집주인 동의 없이도 집주인의 국세 체납액을 열람할 수 있게 됐다. 법무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홍보하고 싶다며 그에게 웹툰 제작을 의뢰했다. "'이 개정안을 준비하면서 작가님 만화를 봤고 문제 의식에 공감했다'는 내용의 이메일이었어요. 너무 뿌듯했죠."
단행본은 임대차 관련법 전문 변호사가 감수를 맡았다. 전세 사기를 겪으며 학습한 ‘묵시적 갱신’, ‘근저당’, ‘대항력’, ‘당해세’ 같은 어려운 법률 용어도 쉽게 풀어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듯 친근한 톤이지만 확정 일자 효력 발생 시점, 전세 보증금 반환 보증 제도, 경매 매물의 감정 평가액 계산법, 셀프 등기 후기까지 부동산 초보가 알아야 할 A to Z가 밀도 있게 담겼다. 2015년 그에게 지옥을 가져다준 사건은 '대박 웹툰'으로 환생해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말 그대로 '전세 역전'이다.
"한때 공황 장애가 심하게 왔어요. 혼자 있으면 너무 불안해서 집 앞에 있는 종교 단체를 무작정 찾아갈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집주인은 너무 잘살고 있는 거예요. 그걸 생각하니까 너무 화가 나서, '이렇게 일상을 포기하지 말자. 힘내서 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많은 사기 피해자들이 자괴감과 자책감에 힘들어하고 있어요. 그들에게 결코 당신 탓이 아니라는 말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일상을 포기하지 마시라는 말도요."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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