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의 경쟁? 한국에서만 쓰는 말 아닌가"
[스포츠저널리즘연구회 기자]
- <학교 체육에서 경쟁을 '악'으로 볼 필요 없다>(https://omn.kr/25y1p) 이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현대 스포츠의 이론과 현실에서 경쟁은 필수적이다. 그것을 부정한다면 스포츠가 성립할 수 없다. 한국 교육이나 사회의 줄 세우기, 입시 올인, 승부 지상주의의 지나친 경쟁 문화의 부작용은 크다. 하지만 그것은 스포츠(경쟁) 때문이 아니다. 스포츠는 규칙과 예측불가능성(평등의 조건)의 바탕 위에서 각자의 노력에 보상하는 민주적인 제도다. 오히려 스포츠의 경쟁을 통해 존중과 협동, 배려의 정신을 키울 수 있다. 공정성과 노력에 대한 평가(시상)를 정교하게 디자인할 수 있을 때 입시에 찌든 아이들은 스포츠가 주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토론자: 장익영 한체대 교수, 오태규 서울대 일본문제연구소 연구원, 김완태 전 엘지 세이커스 단장, 김세훈 경향신문 기자
사회: 김창금 한겨레신문 기자
스포츠의 경쟁을 문제라고 하는 게 문제
사회자(김창금 기자) :한국저널리즘연구회의 첫 모임에 참가해 주셔서 감사하다. 연구회는 스포츠 현상을 비평하고, 대안 담론을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국 스포츠 풍토에서는 민감한 이슈를 놓고 토론하는 일이 많지 않다. 연구회가 스포츠의 과제나 현안을 놓고 다양한 가치와 합리적 비판이 오고 가는 공론장 구실을 하면 좋겠다.
첫 토론은 발제문의 제목처럼 학교 체육에서의 경쟁 문제를 짚어봤다. 올가을부터는 학교스포츠클럽 전국축전에서 등위도 가리고 시상식도 열린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경쟁 부작용에 대한 비판 때문에 학생들은 학교스포츠클럽 전국대회에 원천적으로 나가지 못하거나, 나가더라도 경기 수가 많지 않고 시상식도 제한적으로 열려 '맹숭맹숭'한 대회를 경험했다. 미디어나 학계에서도 이런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토론을 통해 관성적 사고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정책 당국에도 아이디어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오태규 연구원: 통상의 스포츠 기사와 다른 기사(발제문)를 볼 수 있고, 토론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 신문과 방송 등 매체의 스포츠 보도는 경기 결과나 스타의 일상 등에 집중되는 등 제한돼 있다. 연구회에서는 스포츠를 다른 측면에서, 철학적으로, 또 사회의 현상과 얽혀있는 것으로 바라볼 것으로 예상한다. 연구회가 지적 '충격'을 통해 우리 사회를 더 좋게 만드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
장익영 교수: 우리나라 스포츠에서는 독특한 피라미드 구조를 얘기한다. 학교 체육을 바탕으로 생활 체육, 이어 엘리트 체육의 상층부로 올라가는 것이다. 학교가 가장 아래 있다. 이론적으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사실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실제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쟁 문제도 비슷하다. 모든 차원에서 스포츠의 경쟁이 존재한다. 생활체육을 하는 분들은 더 많은 경기를 하고 싶어하고, 학교체육이나 교육과정에서도 경쟁이 존재한다. 엘리트 체육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스포츠의 경쟁을 문제라고 한다. 순위와 결과가 명확한 스포츠의 고유한 특징을 경쟁의 문제와 결부하는 것은 피상적이다.
오태규 연구원: 우리 사회의 성적순과 줄세우기는 문화는 그동안 비판의 대상이 돼 왔다. 그러므로 그것을 극복하는 운동의 차원에서 경쟁의 부작용이 부각됐고, 그것이 스포츠 영역에 과도하게 영향을 미치면서 스포츠의 본질적 속성인 경쟁을 억압하고, 정책에도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 경쟁을 제대로 위치시켜야 할 것 같다.
▲ 11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75회 청룡기 고교야구 선수권대회 결승전 장충고와 광주동성고의 경기에서 장충고 선수들이 우승이 확정되자 환호하고 있다. 2020.8.11 |
ⓒ 연합뉴스 |
만약 스포츠에서 1~3등을 가리지 않는다면, 수학이나 국어에서도 등수를 가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역으로 스포츠에서만 1~3등을 없앤다면 책상머리에서 나온 탁상공론이다. 체육 정책은 경쟁과 신체, 교육, 정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김세훈 기자: 경쟁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요즘 기사 쓰면서도 안 쓰는 표현이 '선의의 경쟁'이다. 이 말은 한국에서만 쓰는 말이 아닌가 싶다. 언어적으로 '선의의'라는 말을 경쟁 앞에 붙이는 것은, 경쟁을 부정시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스키마에 따라 세상을 이해한다. 과거 학교 운동부 선수들에 대해 공부 안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스키마다. 운동부 학생은 사고뭉치이고, 합숙시키면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한다. 교육감이 학교 스포츠의 경쟁을 그렇게 인식하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경쟁은 공정한 룰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다. 경쟁은 투쟁과 다르다. 규칙도 없이 무조건 이겨야 하는 싸움이 아니다. 살면서 치르는 각종 시험에서도 순위를 가리듯이 경쟁은 어디에나 있다. 룰에 의해 이뤄지는 스포츠의 경쟁에는 선의라는 수식어가 들어갈 필요조차 없다.
사회자: 경쟁은 중립적인 언어이지만, 앞에 '선의의'라는 말이 붙는 순간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 것으로 바뀌는 것을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다. 저도 발제문을 작성하면서 '선의의 경쟁'이나 '착한 경쟁'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고민해 볼 대목이다.
다른 한편 경쟁이라는 말이 일상생활에서 부정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기술 탈취 논란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경쟁'은 애초부터 '불공정 경쟁'이기 쉽고, 입시나 취업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느끼는 좌절감도 분명히 존재한다. 스포츠에서는 룰이라는 동등한 조건 속에서 경쟁이 벌어지는데,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더 강조하기 위해서 '선의의'나 '착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 같기도 하다.
경쟁, 체육 교육의 마지막 플랫폼
김완태 전 단장: 국가 간 경쟁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에서 경쟁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데, 체육에서 순위를 무시하고 어떤 결과가 가능하겠는가. 경쟁은 스포츠의 덕목이다. 다만 왜곡된 경쟁을 어떻게 수정하느냐의 문제가 있다. 경쟁의 폐해 때문에, 경쟁이 무서워서 부정한다면 경쟁이 갖고 있는 창조적이며, 선순환적 요소를 포기하는 셈이다.
일본의 고시엔 대회에 수많은 학교가 참가하지만 모든 팀이 우승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참가가 목적인 학교도 있다. 학교에서 다양한 스포츠,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하는 것은 삶을 풍부하게 할 수 있다. 경쟁의 문제가 아니라, 운동할 기회를 제대로 주고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
김세훈 기자: 학생들을 대상으로 배구 클럽대회를 한 적이 있다. 조별리그를 거친 다음에 16강 탈락했다고 보내지 않고, 각 조의 1등-1등, 2등-2등, 3등-3등, 4등-4등끼리 다시 경기를 하도록 했다. 한번 경기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여러 번 경기하니 아이들의 표정이 너무 좋았다. 이렇게 해서 최종 1등이 나오면 아이들이 정말 리스펙트(존중심)를 보낸다. 순위를 가리고도 충분히 교육적 효과를 볼 수 있다.
장익영 교수: 스포츠 경쟁에서는 예측 불가능성, 노력에 대한 보상 때문에 긍정적 의미가 있다. 그런데 보상 체계를 꼭 메달로만 볼 것도 아니다. 아들이 뉴질랜드의 전국 규모 축구대회에 나갔는데, 전국 6개 지역 디비전에서 올라온 32개 팀이 경쟁한다. 그런데 16강 탈락했다고 집에 가지 않는다. 16강에 오른 팀들은 우승컵을 놓고 다시 경쟁하고, 탈락한 16개 팀도 예를 들어 '실버컵'을 놓고 또 경기를 한다. 대회 시작부터 끝나는 날까지 집에 가지 않고 모든 팀들이 남아 있게 된다. 그것이 노력에 대한 진정한 보상이다.
사회자: 운동하는 학생을 위해 정책적으로 시도된 학교스포츠클럽이나 학교스포츠클럽 전국축전이 경쟁 요소를 줄이면서 참여 열기를 떨어뜨리지 않았나하는 점을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나친 경쟁도 잘못된 것이지만, 전국대회에 나가 16강 1~2경기 끝내고 집에 가야 하는 것도 노력에 따른 보상이라는 가치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장익영 교수: 사실 줄세우기나 과열 경쟁은 사회, 정치, 문화적 배경에서 나온다. 이런 맥락에서 경쟁을 나쁘다고 말할 때 학교 교과 중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게 체육이다. 다른 교과에 경쟁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체육이 경쟁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령 국·영·수 성적은 말 안 하면 아무도 모르지만, 달리기 1~3등은 눈에 보여 숨길 수가 없다.
하지만 정작 눈총을 받았던 스포츠 경쟁의 가치는 학교체육에서 매우 중요하다. 지덕체 교육 가운데 하나가 체육이어서가 아니라, 체육 교육 속에서 지덕체 공부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페어플레이, 상대 존중, 전술과 전략이 체육 교육의 내용이라면, 그 체육 교육의 마지막 플랫폼이 경쟁인 것이다.
경쟁의 긍정·부정 요소를 떠나 학생은 교육을 통해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떤 교과를 배워도 경쟁은 필수불가결하다. 누가 말했듯이, 칼이 무슨 죄가 있느냐? 그것을 잘 쓰면 선용이고, 잘 못 쓰면 악용이다.
오태규 연구원: 체육은 교육이라는 큰 틀의 한 부분이다. 그 내용에는 필수적으로 경쟁과 겨룸, 승패가 따른다. 스포츠 교육 전체가 승패는 아니지만, 지덕체의 전인격을 위해서라도 학교 스포츠의 본질적 성격과 체육의 목표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사회자: 오늘 첫 토론회에서 스포츠저널리즘연구회의 창립 취지에 부응한 다양하고 깊이 있는 얘기가 나온 것 같다. 발제의 한계를 넘어 더 풍부한 논의가 전개된 것 같다. 연구회의 목적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포츠나 체육의 담론을 특정 그룹이 독점할 수는 없다. 또 그것의 정치 이데올로기화를 반대해야 한다. 스포츠는 삶의 한 형식이 됐고, 이런 까닭에 스포츠는 삶을 풍성하게 할 때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다. 경쟁이라는 예민한 주제를 과감하게 논제로 삼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앞으로도 고정관념을 벗어난 '충격'과 아이디어 제출, 적극적인 토론 문화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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