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 오른 바이든 "지상군 파병 없다"…하마스 "종이호랑이"

강태화 2023. 10. 1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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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백악관이 현시점까지 지상군을 이스라엘에 파병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다만 이스라엘 인근으로 핵항공모함 전단을 배치한 것에 대해 “이스라엘 방위에 대한 지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하마스의 공격으로 최소 11명의 미국 시민권자가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히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을 공격한 하마스의 배후로 지목된 이란과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 등의 개입 가능성에 대한 강한 경고의 메시지다. 또 일각에선 미국이 이미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이라는 ‘두 개의 전선’에 직면한 상황에서 자칫 대만과 한반도에서의 추가 도발 상황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해석도 나온다.


核항모 배치한 美 “지상군 배치 계획은 없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9일(현지시간) 전화브리핑에서 “미국 지상군을 이스라엘 땅에 배치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대신 세계 최대의 핵추진 항공모함인 ‘제럴드 포드함’ 등 항모전단과 F-35를 비롯한 전투기를 이스라엘 인근에 배치한다는 점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스라엘군의 반격을 받은 가자지구에서 화염을 치솟아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커비 조정관은 “항공모함 전단의 동부 지중해 전진배치 등 미국의 국가 안보 이익을 보호하고 이스라엘을 방어하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할 것”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이 추가 병력의 이동을 지시한 이유는 어떠한 국가나 집단도 현재 상황을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억지의 메시지를 보내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백악관이 억지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1차적 대상은 하마스를 배후 지원한 것으로 지목된 이란이다. 실제 커비 조정관은 “‘스모킹건(smoking gun·확실한 증거)’은 아직 찾지 못했다”면서도 “이란은 하마스를 다년간 지원해왔다”고 말했다.


新중동전쟁 ‘도화선’은 헤즈볼라

하마스와 함께 이란의 지원의 받아온 시아파 무장 정파 헤즈볼라의 참전 여부도 이번 사태가 신(新)중동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는 위협 요인으로 꼽힌다. 레바논에 근거지를 둔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공군 기지와 부병부대를 겨냥할 수 있는 정밀 유도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어, 이스라엘 입장에서 하마스보다 훨씬 위협적인 적으로 평가된다.

9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반격을 받은 가자지구의 모습. 연합뉴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보도에서 “이란은 하마스와 8월부터 이스라엘 공격을 계획했고, 논의 과정엔 이란혁명수비대와 이란이 지원하는 하마스, 헤즈볼라 등 4개 무장단체가 참석했다”며 “지난 주말 미 국무부는 헤즈볼라가 전쟁에 개입하지 않도록 설득할 것을 레바논에 촉구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헤즈볼라가 활동하고 있는 레바논은 1년 가까이 대통령도 공석으로 둘 정도로 헤즈볼라에 대한 영향력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은 항모전단의 전진 배치 계획을 밝히며 직접 헤즈볼라를 향해 “(분쟁 가담 전에)두 번 생각하라”며 별도의 경고를 가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가자지구 진입하겠다”

확전을 경계하는 미국과 달리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본거지인 가자지구로 진공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백악관에서 만나 팔레스타인 문제 등을 논의했다. 연합뉴스


미국 매체 악시오스는 다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가자지구에서 지상 작전을 펼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이어 바이든 대통령이 이러한 주장에 대해 지상 작전을 피해달라는 요청은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지상군을 투입한 대대적 반격은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스라엘은 이 때문에 지난 수십년간 팔레스타인과 충돌을 반복하면서도 지상전을 피해왔다. 특히 이번엔 하마스가 이스라엘인 150여명을 인질로 잡고 살해 협박을 하고 있어 부담이 가중된 상태다. 이 가운데는 미국인도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와 관련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최소 11명의 미국인이 사망했다”며 “하마스가 억류하고 있는 사람 중에 미국 시민들도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국내외 미국 시민의 안전은 대통령으로서 최우선 과제”라고 발표했다.


美, 유럽과 공동성명…사우디 "팔레스타인 지지"

팔레스타인인들이 지난 7일(현지시간) 붙잡힌 이스라엘 민간인을 이스라엘 크파르 아자 키부츠에서 가자지구로 데려가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은 일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서고 있는 유럽 주요국들과의 공동전선을 재확인하며 상황 관리에 주력하고 있다. 백악관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4개국 정상과 하마스의 공격을 “테러 행동”으로 규정하고, “국가와 국민을 만행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노력을 지지할 것”이라는 내용의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중동 수니파의 맹주이자 미국의 우방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이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의 통화에서 “팔레스타인의 편에 서서 갈등을 멈추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이스라엘이 아닌 팔레스타인의 편에 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미국에는 큰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그간 사우디에 원자력 기술을 지원하고, 미국 무기에 대한 접근과 상호방위조약 체결 등을 제공하는 대신 사우디가 이스라엘의 자주권을 인정해줄 것을 요구해왔다. 사우디가 팔레스타인 편에 설 경우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를 통해 중동문제를 해결하려던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정책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이스라엘 종이호랑이"…바이든, 외교력 시험대

이러한 상황과 관련 하마스의 고위급 간부인 알리 바라케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가자지구에 보유한 4만 병력 중 2000만 정도만 동원했는데도 이스라엘이 이렇게 엄청나게 붕괴된 것이 놀랍다”며 “이스라엘군은 종이호랑이였다”고 조롱에 가까운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가자지구가 소멸 위기에 처하면 이란과 헤즈볼라가 참전할 것”이라며 미국이 경계하는 확전 가능성까지 시사하기도 했다.

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백악관은 이스라엘 국기의 색인 파란색과 흰색의 외부 조명을 설치해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 의사를 분명히 했다. 연합뉴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는 “대선을 1년 앞둔 상황에서 스스로 ‘냉전 종식 후 가장 외교능력이 뛰어난 지도자’라고 자평해온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력이 강한 시험 무대에 오른 상황”이라며 “이스라엘과 유대인이 가진 미국 정치권에서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이뤄지겠지만, 공화당이 현재의 상황을 선거의 재료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는 상당 부분 타격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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