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 교육에 등장할 유엔사... 그 의미는?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김종성 기자]
▲ 지난 3월 7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육군 제51사단 상록과학화예비군훈련장에서 예비군들이 시가지전술훈련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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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새로운 향토예비군 교육프로그램이 생긴다. 국방부가 북한 인권과 더불어 유엔군사령부(유엔사)에 관한 내용을 2024년부터 예비군 교육의 표준 교안에 넣는다고 지난 9일 언론들이 보도했다. 예비군 규모는 상당하다. 270만 명이다.
한국인 대부분은 유엔군이 곧 미군임을 잘 알고 있다. 유엔군사령부가 한반도 안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모르는 한국인은 드물다. 그럼에도 유엔사 관련 교육내용을 이 시점에 예비군 프로그램에 정식으로 넣는다고 한다. 이 조치는 한일 군사협력 및 유사시 일본군의 한국 진출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 때 "한일 양국은 안보와 경제의 협력 파트너"라고 언급한 뒤 바로 이 유엔사 문제를 언급했다.
"일본이 유엔사령부에 제공하는 7곳 후방기지의 역할은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 최대 억제 요인입니다. 북한이 남침을 하는 경우 유엔사의 자동적이고 즉각적인 개입과 응징이 뒤따르게 돼 있으며, 일본의 유엔사 후방 기지는 그에 필요한 유엔군의 육해공 전력이 충분히 비축돼 있는 곳입니다. 유엔사령부는 하나의 깃발 아래 대한민국의 자유를 굳건히 지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국제연대의 모범입니다."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것은 '주한미군이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 최대 억제 요인'이라는 얘기다. 윤 대통령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고 '일본에 있는 유엔사 후방 기지'가 그 같은 최대 억제 요인이라고 평했다. 이렇게 언급한 것은 당연히 한일 군사협력에 대한 안정적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인 것으로 읽힌다.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로 선포한 지난 2월 22일에도 독도 인근에서 한미 양국과 일본군의 연합군사훈련이 있었다.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8월 18일 한미일 정상회의를 통해 한일 군사협력이 준동맹 단계에 들어섰다는 평가도 나왔다.
한일 군사협력은 이처럼 상당 수준으로 진척돼 있지만, 한국민들에게 그 당위성과 확대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예비군 프로그램에 유엔사 교육을 넣는 것은 유엔사와 일본의 밀접성을 부각시켜 한국 내의 반일 분위기를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유엔사
유엔사 후방기지가 주일미군기지라는 형태로 일본에 존재하고 있으며 이를 매개로 자위대가 한반도 안보와 관련을 갖고 있다는 논리와 이를 교육 프로그램 내용에 포함시키는 것은 한일 안보협력에 대한 대중의 비판적 시각을 누그러트리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유엔사가 한일 군사협력을 매개한다는 점은 2018년까지 유엔군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을 지낸 빈센트 브룩스가 지난 9월 25일 워싱턴에서 발언한 내용에서도 드러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날 그는 한미전략포럼에서 한국과 일본의 군사적 연결고리는 유엔사라고 언급했다. 종합하면 '한국과 미국, 미국과 일본은 각각 동맹관계로 연결돼 있지만, 한국과 일본은 그런 관계가 없어서 유엔사를 매개로 연결돼 있다'는 진단이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유엔사가 없으면 일본군이 한국군과 협력할 명분이 약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 7월 25일 주한미군전우회가 워싱턴D.C.에서 개최한 세미나에 화상으로 참여한 앤드루 해리슨 유엔사 부사령관의 발언은 자위대가 유엔사를 매개로 한반도에 개입할 가능성을 환기시켜줬다. 이 자리에서 그가 개인 의견을 전제로 유엔사와 관련된 일본의 역할을 확대할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이것과 관련된 진전은 유엔사가 제공하는 억제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 발언 내용을 보도한 <한겨레>는 "북한의 위협을 이유로 한-미-일 군사 협력이 강화되는 가운데 유엔사와 관련해서도 일본의 역할 확대를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풀이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일각에서는 한미연합사령부 창설 이후 정전 체제 관리로 주된 역할이 축소된 유엔사를 강화하고 나선 미국이 유엔사 체제를 통해 일본 자위대에 한국 안보 문제 간여의 길을 터주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나타내왔다"고 보도했다.
해리슨 부사령관은 개인 의견이라고 전제했지만, 동일한 내용이 이미 유엔군사령부와 주한미군사령부가 2019년 주한미군 전략 다이제스트로 발간한 <2018: 한반도의 한 해>에도 실렸다. 2019년 7월 11일 발간된 이 책자는 "유엔사는 위기시 필요한 일본과의 지원 및 전력 협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한반도 유사시에 자위대가 유엔사 지원이라는 형식으로 위기 대응에 나서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뒤따랐다.
당시 이 문구가 논란이 되자, 언론보도에 등장한 유엔사 관계자는 한글판 번역이 잘못됐다며 진화에 나섰다. "유엔사는 한반도 위기 시 일본을 통해(thtough Japan) 필요한 지원 및 전력 협력을 지속할 것입니다"가 영어 원문이었다고 해명했다. '일본과의'로 번역되든 '일본을 통해'로 번역되든 한반도 유사시에 일본군이 모종의 역할을 하리라는 의미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한미일 가까워지는 시기, 예비군 유엔사 교육의 의미는?
한반도 유사시에 일본군이 유엔사를 매개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은 한국전쟁 때도 증명됐다. 당시 일본은 유엔사를 고리로 병참기지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병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자위대의 전신인 경찰예비대 창설 법령이 공포된 1950년 8월 10일 이후에 이같은 흐름이 두드러졌다.
2022년에 발행된 <한일군사문화연구> 제34집에 수록된 박종근 합동군사대학교 제2합동교육처장과 방준영 육사 교수의 공동논문인 '주일미군과 유엔사 후방기지의 전략적 가치 고찰'은 일본군이 한국전쟁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일본의 소해 작전은 1950년 10월 2일부터 12월 15일까지 소해정 43척과 순시선 10척 그리고 구(舊)해군 1200명을 투입하였고, 그중 1척은 1951년 4월 6일부터 52년 6월 30일까지 작전을 지속하였다. 소해 활동은 동해안에서는 원산·흥남 및 묵호, 서해안에서는 해주·진남포·인천·군산 등에서 실시되었는데, 이는 327km의 수로와 607km에 달하는 연안의 기뢰 소해 임무를 수행한 것이었다."
일본군이 한국 연안에 접근해서 수행한 소해 활동은 평온한 해상 소제 작업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명 손상을 수반하는 군사작전이었다. 위 논문은 "사망 26명, 부상 208명, 업무상 질병 20명 등 254명의 인명 피해와 소해 4척이 침몰되고 2척이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다"고 설명한다. 이 정도면 사실상의 참전으로 볼 수 있다.
위의 소해 활동이 끝난 뒤에는 경찰예비대원 1000명이 한국전쟁에 투입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1952년 9월 4일자 <조선일보> '일군(日軍) 한국 향발(向發)'은 평양방송이 "일본 예비경찰대원 1천 명이 15명의 미군 장교 및 99명의 미 하사관 그리고 150명의 한국인 하사관의 지휘하에 한국 전선으로 향발했다"고 보도한 일과 더불어, 그달 1일자 소련공산당 기관지인 <프라우다>가 그 보도를 인용한 사실을 전했다.
지금 공식적인 한일동맹이 없는 상태에서는 일본군이 유엔사와 협력하는 형식으로 한반도 유사시에 개입할 수 있지만, 이것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브룩스 전 사령관은 위의 한미전략포럼에서 유엔사를 통해 한국군과 일본군을 연결하는 방법이 아닌,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극동미군으로 통합시켜 한일 양국군을 연결하는 방법을 언급했다. 두 나라에 주둔한 미군을 극동미군으로 통합하고 일본군이 극동미군과 협력하는 형식을 통해 한국군과 함께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이다.
이처럼 한국군과 일본군을 연계시키는 방안이 모색되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권이 예비군 교육에 유엔사를 정식으로 포함시켰다는 보도가 나왔다. 브룩스 전 사령관의 말처럼 동맹관계가 없는 지금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의 군사적 연계를 가능케 하는 것은 유엔사다. 일본은 유엔사 후방기지로서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명분을 갖게 된다. 예비군 교육에 유엔사를 포함시키는 것은 유엔사를 매개로 하는 일본군의 개입에 대한 거부감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 통합되거나 한일 간에 정식 동맹이 체결되면 그런 교육이 불필요해지겠지만, 미군 통합이나 한일동맹은 아직은 여의치 않다. 지금 상황에서 유엔사와 일본의 연계성을 강조하는 프로그램이 예비군 교육에 들어가는 것은 현 단계에서 한일 군사협력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윤 정권의 돌파구 모색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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