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대의 은퇴일기㊱] 어색한 미용실에 앉아 ‘이발소’와 ‘AI 시대 미용실’을 생각하다

데스크 2023. 10. 10. 15: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 헤어스타일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상투에 단발령과 장발 등. 어릴 때는 동네 이발소에서 까까머리를 했는데 이제는 미용실을 찾아가고 심지어는 파마를 하기도 한다. 이발소가 많이 줄기도 했지만, 자신의 개성을 살리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 과학의 발달로 앞으로의 머리 모양과 미용 기술이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될 것인지 기대된다.

미용실 벽에 붙어있는 헤어스타일 모양

어릴 때 머리가 길면 아버지가 집에서 재래식 이발기로 8형제 머리를 깎아 주셨다. 머리칼을 빡빡 깎는 것이니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이발 기계가 낡아 잘 깎이지 않아 제발 아프게만 하지 말아 달라고 소원했지만, 어김없이 머리칼이 뽑혀 눈물을 찔끔거렸다. 중학교 입학 후 삼색등이 돌아가는 이발관에 가서 이발기에 조금 더 길게 깎는 기구를 끼워 2부로 깎았다. 우리 동네에는 이발소가 없어 오리쯤 떨어진 옆 동네까지 걸어가야 했다. 머리를 깎고 귀 옆과 뒷부분은 솔로 비눗물을 묻혀 바른 다음 가죽 피대에 날을 세운 면도기로 다듬어 주었다. 추울 때는 차가운 비눗물을 목뒤에 바르는 것이 싫어 나도 모르게 거북목처럼 움츠러들었다. 어린아이들은 널빤지를 이발 의자에 걸치고 그 위에 앉혀 머리를 깎았다. 트랜지스터라디오에서는 유행가가 흘러나왔고, 벽에는 추운 겨울에도 비키니만 걸친 여자의 살포시 웃는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저 여자는 얼마나 추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미용실 내부 모습ⓒ

지난겨울에 미국으로 연수를 떠난 딸네 집을 방문했다. 딸은 커트 비용이 많이 든다며 아들 머리를 깎아 주기 위해 충전식 이발 기계를 사 갔었다. 마침 그날도 아들과 남편 머리를 깎는데 그동안 여러 번 해 본 솜씨가 있어 전문가 못지않게 잘한다. 옆에서 신기한 듯 쳐다보는 나에게 딸은 “아빠도 머리칼이 길었네요. 앉으세요” 한다. 미국에 와서 한 달 이상 지내다 보니 이발할 때가 지나서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앉았다. 기대 이상으로 잘 깎은 데다 이발 비용까지 아껴 큰돈을 번 것처럼 흐뭇했었다. 물가가 비싸 생활비를 조금이라고 아끼려고 노력하는 딸네를 보자 대견하기도 하지만, 궁색한 형편을 보고도 보탬을 주지 못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애틋하기만 하다. 어렸을 때 선친께서 머리를 깎아 주던 일이 문득 떠오른다. 딸도 훗날 흰 머리칼이 부쩍 많아지고 듬성듬성해진 아빠의 머리를 손질했던 일이 어떤 느낌으로 추억될는지.

요즈음에는 이발소가 아닌 미용실로 간다. 집 가까운 곳에 부부가 운영하는 ‘헤어뉴스’라는 미용실이 있다. 오전에 가면 파마나 염색하는 여자 손님들이 있어 기다려야 할 때가 많다. 혼자 뻘쭘하게 앉아 있는 것이 쑥스러워 조금 한가한 저녁때 주로 들린다. 오후 5시가 지나 여자 원장이 퇴근하면 여자 손님은 받지 않아 남자들만 한두 명 있든지 아니면 남자 미용사 혼자 있기도 하다. 십여 년 전 미용실에 처음 갈 때는 쑥스럽기도 하고 창피해서 아내의 치맛자락을 잡고 따라갔다. 머리를 단정하게 잘라 달라고 부탁을 하고 다 깎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아내가 옆에 앉아 있으니 어린 시절에 학교나 장날에 엄마 손 잡고 가는 것처럼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다.

미용실 내부 모습ⓒ

그 당시만 해도 나이 든 남자들은 대부분 이발소를 다닐 때였다. 그 후 동네에 있던 이발소가 하나둘 사라져 미용실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이유는 이발소에서는 머리 손질을 한 다음 의자를 뒤로 젖혀놓고 면도를 부드럽게 하려고 얼굴을 뜨거운 물수건으로 감싸는 것이 질식할 것 같기도 하고 답답해서 싫었다. 내 머리칼은 직모라 무스를 바르는 등 관리하기가 쉽지도 않아 얼마 전에는 아내의 권유로 파마를 했다. 주변에서는 “멋있다. 예술가의 분위기가 풍긴다. 열 살은 더 젊어 보인다”라는 등 예상외로 반응이 뜨거워 쑥스럽기도 했지만,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사인볼과 수건이 등이 있는 미용실 입구에 선 작가

미용사는 동네 주민이어서 머리를 손질하는 동안 여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코로나 이후에는 고객들의 수다가 이전보다 줄어든 대신 핸드폰을 많이 본다고 한다. 전에는 연예인이나 화보에 나오는 것과 같은 헤어스타일로 해 달라는 요구를 했는데, 요즈음에는 인터넷에 나오는 스타일을 핸드폰에 저장해 가지고 와서 같은 모양으로 잘라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단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많은 분야에서 AI가 대체하고 있어 미용도 타격이 있지 않겠느냐?”고 하자 “미용은 직접 손님의 머리를 만지며 해야 하므로 그렇게 되기 어려울 것이다”라며 자신만만하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눈부시게 발전하는 기술로 인해 어떤 획기적인 방안이 탄생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미용실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사인볼ⓒ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고객의 머리에 어울리는 스타일을 미리 시뮬레이션해 보는 것이나, 머리 모양을 추천해 주는 서비스는 이미 활용되고 있다. 그동안 헤어스타일이나 미용 기술은 꾸준한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 왔다. 비록 지금은 미용사가 직접 손으로 머리를 자르고 관리를 하지만 AI의 발달로 머지않아 기계 앞에 머리를 맞기고 자동으로 이발하는 시대가 오지 않는다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듯이 ‘미용 분야는 AI가 대신하지 못한다’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예전에는 남자가 미용실에서 이발하고 파마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는데 이제 자연스러워졌다. 나날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준비하고 노력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