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신이 50년간 묵혀온 이야기… 1971년 철책선 부대 경험 소설로
김홍신(76) 작가가 새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바람으로 그린 그림’ 이후 6년 만의 신작 소설이자 그의 138번째 책이다.
이번 소설은 김홍신이 죽음의 위기를 통과한 후 완성한 작품이다. 김홍신은 1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 출간 관련 기자 간담회에서 “2021년 2월 초고를 완성한 후 코로나19로 입원해 한 달간 응급실과 음압실, 일반병동을 오가며 죽음의 공포를 깊게 느꼈다”면서 “죽음의 공포와 절대 고독 속에서 스스로 위로하고 다독일 수 있는 게 읽고 쓰는 것밖에 없어서 이 소설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원고지에 만년필로 글을 쓰기 때문에 몸에 여러 문제가 생겼고 그 때문에 글쓰기에 대한 트라우마도 겪었다고 얘기했다. 그는 “‘대발해’(전 10권·2007년)를 쓸 때 3년 동안 두문불출하면서 만년필로 원고지 1만2000장을 썼는데 손의 마비가 왔다. 햇빛을 안 보고 물을 잘 안 마시고 하루 12시간 이상 앉아있다 보니 요로결석도 왔다. 만년필로 쓰니까 몸이 비틀어지고 입술이 말려올라갔다. 시력도 나빠지고 체중도 빠지고 불면증도 생겼다”면서 “그래서 ‘대발해’ 쓰고 7년간 소설을 못 썼다.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 그런 고통들이 트라우마로 온다”고 했다. 그는 2015년 장편 ‘단 한 번의 사랑’을 겨우 발표했고, 2년 뒤 ‘바람으로 그린 그림’을 쓰면서 비로소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새 소설은 김홍신이 50년간 묵혀온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1971년 육군 소위로 철책선 부대에서 소대장을 하면서 구상한 작품”이라며 “세상이 좋아지기 전에는 출간이 어렵다고 생각해 그동안 발표하지 못했다”고 얘기했다.
소설은 주인공 한서진의 딸 자인이 아버지의 유고를 읽으며 존재도 몰랐던 친아버지의 삶을 이해해 나가는 액자식 구성으로 쓰였다. 1971년 육군 소위 한서진은 휴전선 침투 중 사살된 북한 장교의 시신에 십자가를 꽂고 명복을 빌어준 죄로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을 위반한 빨갱이로 몰린다. 이 일로 고문을 당하고 수감 생활을 한 한서진은 이후 복수만을 생각하는 존재로 변질돼 간다.
김홍신은 “1971년 7월 1일 육군 소위로 철책선에서 대간첩작전을 한 것, 사살된 북한군 장교 시신 옆에 십자가를 꽂아주고 기도한 것, 보안대 조사를 받은 것은 모두 내가 실제 겪은 일이고, 나머지는 모두 픽션이다”라고 설명했다.
김홍신이 애초 생각한 소설 제목은 ‘적인종’이었다. 백인종, 흑인종, 황인종도 아닌 적인종은 빨갱이를 말한다. 소설의 주인공 한서진은 빨갱이로 몰려 고초를 겪는다. 김홍신은 “빨갱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뭔가 하다가 적인종이란 말을 생각했다”며 “요즘 빨갱이는 흔한 말이지만, 우리 젊을 때는 빨갱이라는 말이 가장 잔혹한 형벌 중 하나였다.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제목을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로 바꾼 것은 ‘애도’라는 말을 꼭 쓰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소설을 통해 삶과 가족을 잃어버린 한서진이란 비극적 인물, 그리고 반공주의와 국가보안법의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싶었다는 것일까. 김홍신은 “인류애적 가치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게 애도”라며 “요즘 우리 사회에 애도할 일이 많이 생기는데, 우리가 다른 건 못해도 기도라도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소설에서 주인공이 복수 대신 용서를 선택하게 한 이유에 대해서 “용서가 없다면 인류는 생존할 방법이 없다”면서 “용서를 하지 않으면 결국 자기를 죽이게 된다. 자기 마음을 가볍게 정돈해서 나를 살리는 게 용서다”라고 말했다.
1976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그는 “3년 뒤면 50주년을 맞는다”며 “지금까지 138권의 책을 썼는데, 더 열심히 소설을 써서 140권을 넘겨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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