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간 두 아이가 예전 집을 찾은 이유

조영준 2023. 10. 1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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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 312]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홈> 외 1편

[조영준 기자]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초면에 발생한 분쟁을 조정하는 세 가지 질문>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1.
<초면에 발생한 분쟁을 조정하는 세 가지 질문>
한국 / 2023 / 15분
감독 : 은고
출연 : 김소월, 이천은

이른 아침 운동장에서 초면인 두 사람이 언쟁을 벌인다. 멀리서 두 사람을 바라보는 이들은 두 남녀의 모습이 헤어진 연인의 다툼이라고 결정짓는다. 영화도 시작부터 이들의 관계나 싸움의 원인에 대해 말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두 사람은 다음 장면에서 바로 '초면 분쟁 조정위원회'라는 존재의 이유에조차 의문이 드는 위원회에 회부되고, 3주간의 분쟁 조정 프로그램에 넘겨지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담당자의 무책임하고 건조한 태도 속에서 사랑과 삶에 대한 세 가지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 <초면에 발생한 분쟁을 조정하는 세 가지 질문>은 제목 그대로 초면에 만난 두 사람의 다툼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따르는 이야기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영화 속에서 어떤 내용이 전개될지 조금도 예측하기 어렵지만, 영화는 의외로 담담하고 관조적인 태도로 두 사람의 삶을 가볍고도 진중하게 들여다본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세 가지 질문, 우리의 삶에 사랑과 애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와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기억은 무엇인지, 또 우리의 인생관에 대한 물음을 통해서다.

영화의 시선이 놓여 있는 가장 중요한 자리는 결국 타인에 대한 정확한 이해나 공감이 없이 그 상태에 대해 판단하고 정의하는 일이다. 영화의 처음에서 등장했던 두 사람이 멀리서 다툼을 벌이는 두 남녀의 관계와 언쟁의 이유를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들끼리 결정짓고 이해했던 장면은 어쩌면 이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요약이자 복선에 해당한다. 그 대상이 되는 두 남녀 역시 자신의 가치관에만 무게를 둔 채 서로의 삶을 판단하면서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너무도 다른 각자의 삶, 그로 인한 인생관의 차이는 타인의 행동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며 영화는 그 틈을 파고든다.

운동장 한가운데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본 남자(이천은 분)의 행동 때문에 여자(김소월 분)의 항의를 받고 갈등을 겪게 되는 영화 속 사건 자체는 모델링을 위해 최대한으로 간략화된 상황 설정에 불과하다. 하지만 영화는 각자가 세 질문에 대한 답을 꺼내는 과정을 통해 서로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지난 삶 속에 존재했음을 보여주며 논의를 확장시킨다. 조금 더 포용하고 사랑하면 세상이 정말 더 나아질 것인가 하는 문제와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편견이나 이기심, 자신의 나쁜 심정과 같은 것들과 홀로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향해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처음보다는 조금 더 서로를 이해하게 된 두 사람이 침묵의 화해를 건네고 헤어진다. 줌 아웃이 되는 화면을 따라 멀 위치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는 또 다른 사람들이 내화면 속으로 들어온다. '저 커플 정말 살벌하게 싸운다.' 영화의 처음에서처럼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라고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그들의 말이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홈>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2.
<홈>
한국 / 2023 / 23분
감독 : 이혜빈
출연 : 이지유, 이천무, 최은율

15살 소민(이지유 분)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갑작스럽게 이사를 하게 되어 심통이 났다. 전학을 해야 할 정도로 먼 곳으로까지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자라온 성장 과정이 모두 남아 있는 정든 집을 떠나려니 마음이 좋지 않다. 물론 앞으로 살게 될 집의 환경이 더 좋지 못한 이유도 있다. 그 속을 알지 못하는 동생 재민(이천무 분)만이 이제 방을 함께 써야 한다며 옆에서 속을 긁는다. 부모님이 이삿짐을 옮기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소민은 재민과 함께 자신들의 집을 향한다. 이제는 아니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 집'이라고 부르던 집으로.

이혜빈 감독의 첫 연출작인 영화 <집>은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2016)이나 이지원 감독의 <아이들은 즐겁다>(2021)와 같은 이야기의 결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아직 익숙하지 못한 이별이라는 감정 앞에서 오래된 추억을 따라 짧은 여행을 떠나는 두 아이의 모습을 아름답지만 조금은 먹먹한 시선으로 뒤따른다. 자신의 감정은 아직 제대로 갈무리하지도 못한 채 천방지축인 동생 재민을 챙겨야 하는 소민의 감정이 조금 더 두드러지는 면이 있지만, 영화가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 기대는 쪽은 오히려 재민이라는 점이 조금 흥미롭게 다가온다.

영화는 두 사람이 예전의 '우리 집' 앞에서 윤서(최은율 분)를 만나도록 하면서 서브 메시지를 담아낸다. 아이들의 현재와 미래가 오롯이 그들의 힘만으로는 그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것이다. 이제 다음 주면 소민과 재민의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는 윤서는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육지로 오게 되었다고 말한다(윤서는 제주도에서 살았다). 부모의 사정에 의해 이사를 하게 된 것은 원래 이 집에 살았던 두 아이도 마찬가지. 갑자기 이사하게 된 것 또한 비슷한 세 아이는 그런 공통점 속에서 마음을 열고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이 영화는 아이들의 대화만으로 부모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 말하고 있는 셈이다.

부모의 사정에 대해 비난하거나 부정적인 접근을 하고자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들 설정은 떠나고 싶지 않지만 떠나야만 하는, 아직 이별에 익숙하지 못한 아이들의 모습과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요소로 작용될 뿐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꼭 영화와 동일한 상황을 겪지 않아도, 매년 학년이 바뀔 때마다 친구들과 이별해야 했던 우리 모두의 어린 시절 그 기억과도 결을 같이한다. 어쩌면 우리는 그래서 더 아이들의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고 큰 감정을 전달받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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